서평: '건축은 중요한가?' (Book Review: 'Is Architecture Impor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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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참으로 생경하다.

이것은 한 동안 유행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건축은 무엇인가?'류의 글들('한국건축은 무엇인가?', '해체주의 건축은 무엇인가?', 등)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우리로 하여금 좀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즉 하나의 문장으로서 문법적인 하자는 없지만, 어떤 구체적인 대답을 전제로 하는 실질적인 질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치는 중요한가?', '대중가요는 중요한가?', 독자들은 이런 일견 무의미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답변도 뻔한 것이 아니면 별다른 보편성을 갖지 못한 것이기 쉽다.

그렇다면 왜 저자인 김 진애는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였을까? 스스로도 책 13쪽에서 '별 신통한 답이 없는 애매모호한 의문'이라고 쓰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 해답은 역시 저자 자신이 책 여기저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기 위함에 있다고 본다. 많은 경우에 질문은 그 자체에 해답을 갖고 있다. 논리적인 질문은 논리적인 대답을 유도하며, 선문답은 시종일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로 계속된다. 건축계에 산적한 여러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할 것이고 이를 유도하기 위한 질문은 생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였다고 생각되며, 그리고 이 전략은 일단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범하지 않은 대답을 가능케 하는 여러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그 구조가 생경하다. '건축은 중요한가?'는 모두 10개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뒷부분에 자체 총론까지 딸린 '책 속의 책'이라는 부분이 '도시건축의 옛 단서, 새 단서'라는 제목으로 붙어있다. 구성만으로 보면 2권의 책이 붙어있는 셈인데, 사실상 내용을 보면 대충 책 3-4권 정도가 얽혀있는 것 같다. 게다가 주석이 따로 붙어있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별도의 박스 안에 본문과 간접적으로 관계되는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복합적인 코드가 얽히고 설키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집필 의도에 가장 적절한  글의 형식을 찾아낸 셈이며 이 의도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발산적인 사고를 통해 자꾸 새로운 생각을 유도해 내려고 하는 이 책 고유의 목적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유효하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부적절한 편집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200쪽 남짓한 책이어서 많은 분량의 글이 아닌데, 읽으면서 솔직히 좀 짜증도 나고 하는 것은 저자 말대로 글 자체가 난해한 탓도 있겠지만 이러한 편집방식의 탓이 크리라고 본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훨씬 더 의미 있는 글읽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참으로 시원시원하다. 누구나 학생 시절에, 아니면 사회생활 하면서 가져 보았으나 막상 입 밖으로 내 놓지는 못했던 의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문들과 거기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들이 마치 상처의 고름이 터져 나오듯이 툭툭 내던져진다. 그리고 아마도 저자가 만들어냈으리라고 생각되는 이런저런 감칠 맛 나는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저자가 스스로 종종 이단자, 국외자, 때로는 도전자로 치부되는 상황을 가리켜 '틀에서 벗어난 자유' 덕분에 '틀 속의 자유'를 잃은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 책 어디를 보아도 언어가 팽팽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며, 저자는 나아가 특정 어휘들에 대해 자신이 어떤 의미로 그것들을 사용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솔직함은 아마도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의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저자 특유의 호기심이 덧붙여져서 경우에 따라 독자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힘이 나온다. 솔직함과 호기심의 공개적 표현이라는 것은 참으로 필요한 일이기는 하되, 막상 접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귀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러한 지속적인 글쓰기와 사회적 발언을 통해 저자는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의 삶을 당당하게 선택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저자가 자주 말하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저자 자신이 직접 증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산유곡에서 홀로 도를 닦는 심정으로 일하는 건축인이 아닌, 토론하고 조직하고 관계하고 발언하는 건축인의 살아있는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일단 이 책은 뒤에 찾아보기나 참고도서 목록이 없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참고도서 목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찾아보기가 없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꼭 이 책만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책들이 이와 같은 독자 서비스가 약한 편이며 이것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는 익명성에 대한 문제이다. 이 책은 건축계의 여러 가지 현상들을 매우 예리하게 집어 나가고 있는 반면에, 그 대상이 되는 내용들은 철저하게 개념으로만 제시될 뿐 구체적인 '사람'이 빠져있다. 다루고자 하는 내용의 방대함에 비해 살짝이라도 실제 이름이 거론되는 건축가가 정말 몇 안되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 수근, 김 중업, 승 효상, 조 건영 등이 그것도 에피소드적인 내용으로 나온다) 이렇게 되면 글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의 주체를 밝히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어떤 선배' 대신 '건축가 누구'라고 쓰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솔직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이처럼 사물이나 사람을 막연하게 지칭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익명성의 베일이 궁극적으로 진실을 덮어버리는 장막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과, 잘못하면 글쓰기가 무책임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데 있다. 건축가건 누구건 간에 우리가 적어도 사회생활의 일부로서 한 모든 일들은 이미 공공성을 갖는 역사적인 사실이 된다. 따라서 누구나 근거가 확실하고 사생활에 대한 부적절한 침해만 아니라면 이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글 쓸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이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우리는 이제 보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글쓰기를 지향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지적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저자와의 인터뷰를 원하는 편집자의 요구는 일부러 따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뒤에 그러한 내용이 자세히 나오기 때문이다. 김 진애는 평소에도 집필 의도나 동기 등을 항상 성의 있게 소개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