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의 건축가 (I'm an architect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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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서울은 어떤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어디에서 살고 일할 것인가'에 대한 특별한 고민 없이, 그냥 서울을 나의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기 보다 그냥 받아들였다. 내가 만약 어떤 도시를 선택했다면 거기에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을 받아들인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도시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다.

 

서울에서 건축가로 살며 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는 좀 문명적인 차원의 답이 필요하다. 이 나라에서는 한 세대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첨단정보통신사회까지를 모두 경험한 바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 빠른 변화의 중심에 수도인 서울이 있었으니 여기서는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신속하게 소비된다. 서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강남은 불과 20-30년 만에 개발되었다. 신시가지라고 하지만 이미 또 다른 개발의 물결이 밀려와, 지은지 얼마 되지 않는 집들이 헐려 나간다. 온 도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파트 재건축 바람에 대해 후대의 역사가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그들은 어떤 타락한 문명의 징후 같은 것을 여기서 발견할지도 모른다.  

 

건축이 본래 어떤 영속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고 보면, 이러한 서울의 상황은 대단히 반건축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백년, 천년이 가도 끄떡없는 건물'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실제 건물은 백년, 천년을 갈지 몰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 불과 십 몇 년 된 건물이 헐려나가는 곳이 서울이다. 그래서 서울의 건축가는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릴 시간이 별로 없다. 동작이 빨라야 하고, 생각보다는 손이 앞서야 한다. 일을 마치면 보람보다 후회가 많이 남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건축가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북극의 아이스크림 장사 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서울의 건축가다.   

 

이 도시에는 유난히 상처가 많다. 식민지 지배, 전쟁, 군사독재, 외국군의 주둔, 그리고 분단. 게다가 사상 유래 없는 고도 성장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마치 온 몸에 족쇄를 두르고 성장한 아이와도 같다. 이 도시는 여기저기 마비되어 있고, 부분과 전체간에 균형이 결여되어 있다. 지하철은 몇몇 구역을 이상하게 우회해서 지나고, 한강을 건너는 다리는 갑자기 옆으로 방향을 틀며, 보기 좋은 녹지 안에는 종종 군부대가 들어가 있다. 10차선대로 옆에 일방통행 골목길이 붙어 있을 정도로 도시 시스템이라는 것이 어설프기도 하다.

 

지나간 시대의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아 종종 서울의 건축가들을 애먹인다. 토지관련 서류와 실제 상황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는 지금도 흔하다. 종로구의 어떤 동네는 지적도상 도로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딱 필요한 만큼의 도로가 존재한다. 나는 그 원인을 추적하다가, 원래 그곳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용 시설을 위한 부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다. 우리 역사의 가슴 아픈 한 페이지와 섬찟한 대면을 한 것이다. 서울의 건축가는 자기 도시의 이런 과거가 가슴 아프다. 인정하자니 대상의 가치가 너무 척박하고, 부정하자니 결국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도시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남아있는 것들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600년 고도 서울이지만 결코 도시가 어른스럽지 않다. 오히려 철들기를 기다리는 십대 같은 도시가 서울이다.

 

근대에 들어 이런 현상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너무나 많은 건물들이 너무나 빨리, 너무나 값싸게 지어졌다. 겉으로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이 도시의 평균 건축 공사비는 아직도 우스울 정도로 낮다. 세계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축 건물에 난방을 넣지 않는 경우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다. 그 결과 입주자들이 저마다 보일러를 설치하느라고 건물의 외관은 누더기가 된다. 결국 많은 건물들이 그냥 초라한 껍데기일 뿐이다. 건축이 문화유산이라고들 하지만, 이 도시의 건축 대부분은 물려주기 미안하고, 받아서 기쁘지 않은 잡동사니인 셈이다. 박물관이라기 보다 창고 같은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세계적으로도 비싼 술 잘 마시고 먹는 것, 입는 것, 바르는 것에 유난을 떠는 도시가 바로 여기다.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초라한 건물을 들락거리는 모습.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서울의 건축가는 자기 일을 시작한다. (이 역시 선택은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에게 모순과 딜레마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해야 할 가치일 수 있다. 자기 도시의 미성숙은 어쩌면 가능성일 수도 있다. 이것은 진정으로 창의적인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자기가 살고 일하는 이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마치 낯선 도시에 찾아 온 사람처럼 새로운 곳을 찾아가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려 한다. (외국인을 위한 관광 안내서를 들고 서울을 돌아 다녀 보라.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주차난이 심각한 골목길에서 그는 사람들이 산책하며 다닐 수 있고, 작은 가게들이 여기저기 있는 동네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도시의 허리를 자르고 있는 한강에서 오히려 수상도시의 미래를 그려본다. 그리고 종종 이도시의 역사를 뒤적인다. 수 백년 전의 고지도에서 희미하게나마 지금 서울의 모습을 읽어내고, 거기서 자기 작업의 단서를 찾기도 한다. 이런 일은 세계적으로도 역사가 오래된 도시의 건축가들만이 누리는 특권 같은 것이다. 서울의 건축가는 그 특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서울의 건축가는 자기 도시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는 끊임없이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함으로서 오히려 대상을 더 잘 보고자 한다. 애정이나 자부심이 아닌, 호기심으로 자기 도시를 보려 한다. 그리고 상상력으로 도시의 작은 한 구석씩을 채우거나 혹은 비워 나간다. 서울의 건축가는 할 일이 너무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