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그리고 그 이후 (Architect, and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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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에 대해서 논할 때, 그 건축가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작가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라면 물론 그래야 할 것이다. 그 건축가의 다른 작품은 물론, 성장 배경, 사고방식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건축가의 의도라는 것이 중요해지고 그것이 달성되지 못하였다면 그에 따른 이유가 이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빠지게 되는 일반적인 오류는 건축가의 의도라는 것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상황을 초월하는 건축가, 작품보다 더 위대한 건축가의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건축물을 보았을 때, 그것의 가치를 읽어 낼 수 있는 안목과 마음가짐을 빼앗아 갈 위험 또한 가지고 있다.

반대로 순수하게 작품론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작가에 대해, 그리고 작품의 작업과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 오히려 불필요할 수도 있다. 작가를 넘어 그 뒤에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을 포착하는 데에는 이 방법이 아마도 더 유용할 것이다. 건축가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로서 건축물을 비평하겠다고 하는 태도이므로, 그 배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종합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건축은 무겁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개념적으로도 그렇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몇 개의 산뜻한 건축적 아이디어에 의해 대변되어 세상에 소개되지만, 사실 그 뒤에 온갖 구차한 세상의 이야기와 물질 세계의 번다한 과정이 엄연히 존재한다. 화가나 문필가의 작업은 나름대로 매체(재료, 언어 등)의 속성에서 오는 제약이 없지 않으나 아이디어가 작품이 되는 과정이 매우 직접적인데 반해, 건축가의 작업은 비싸고 복잡하고 혼자서도 되지 않는다. 화가가 문필가들이 호젓한 곳에 가서 작품을 구상하고 매듭짓고 한다는 소리는 자주 듣지만 건축가가 그런 식으로  일한다는 소리는 별로 듣게 되지 않고, 혹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세상을 떠나 살 수는 있겠지만 계속 건축가로 행세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건축물들이 상쾌하게 비상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존재의 필연 조건인 무거움을 이겨내는 것, 이것이 건축가가 세상의 복잡함 안으로 뛰어들어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일을 하는 이유이다. 결국 건축가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 못지 않게 세상이 건축가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건축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역학관계는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작가에 대한 관심을 아예 접어두고 오로지 작품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더 잘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이러한 입장을 갖고 쓴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호암 미술관은 최근 들어 그 앞에 희원이라고 부르는 전통 정원을 조성하였다. 이에 딸린 부대 시설로서 지어진 매표소와 찻집이 이 글의 소재이다. 이 두 건물은 서로 별동으로 되어 있으며 희원의 안과밖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정원이 완전히 전통 한식인데 반해 이 두 건물들은 굳이 재료나 형태에 있어 그 분위기를 고집하지 않은 것이 우선 관심을 끈다. 배경이 되는 호암 미술관의, 전통은 전통으로서만 맞받아 치겠다는 60, 70년대식 직설적 태도와 비교해 보면 뭔가 발상의 전환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건축가 조 성룡에게 이 일을 의뢰했을 때 그가 한식 건물을 지을 리 없는 것을 알았을 것이므로, 결국 이 판단은 건축주가 내린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 희원이라는 곳에는 한식 정자가 몇 개 있는데 모두 출입 금지로서 주변을 빙빙 돌거나 멀리서 바라보게만 되어 있다. 차 한잔이 생각나는 사람들은 굳이 격식에 맞게 지어 놓은 정자를 놔두고, 실내가 흰색 석고보드로 마감된 영판 분위기가 다른 이 찻집을 찾아가야만 한다. 이건 뭔가 좀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전통 정원은 완성되자 마자 유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부대 시설들은 갓 만들어진 유적의 박물관이 되고 말았다. 건축 프로그램의 자기 배반. 발상의 전환이 금새 방향을 읽은 것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일단 먼저 접하게 되는 건물이 매표소이다. 1층에는 매표소, 기념품 판매소 등이 있고 지하에는 관리인들의 숙소가 있다. 진입로에서 보면 벽에 호박돌이 붙어있으나 안으로 들어오면 노출 콘크리트 마감으로 되어 양면성을 갖는다. 노출 콘크리트 벽의 일부에는 흰색으로 페인트칠까지 되어 있어 그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이 건물의 주요 개념의 하나가 재료의 대비를 통한 이중적인 성격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라는 가정을 갖게 한다. 아마도 거친 호박돌의 질감은 어떤 막연한 전통적인 정서에, 노출 콘크리트와 흰색 페인트의 조화는 보다 현대적인 것에 상정되고 있는 것 같다. 유사한 관계가 희원 안쪽 깊숙이 위치하고 있는 찻집의 내외부에 적용되고 있어 이러한 가정을 더욱 설득력 있게 한다. 이러한 관계의 설정이 하나의 건축적 아이디어로서 참신하고 흥미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 통일성과 가독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것이며 이것은 상쾌한 경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관성과 가독성이 여기에서 끝나고 만다는 점이다. 나머지 부분들은 파편, 모호함 등의 개념으로 더 잘 설명이 될 듯하다.

매표소는 막연히 ㄷ자형 평면을 갖고 있고 그 가운데 중정으로 인식되는 공간이 있다. 그런데 이 곳을 들어서면 이것을 중정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벽은 막혀있고 고정창만 나 있을 뿐이다. 한 쪽이 개방되어 일종의 지하 중정을 내려다보게 되어있는데 이곳은 알고 보면 지하 관리인 숙소를 위한 광정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바닥에 체력 단련 기구들 및 비치 파라솔이 여기 저기 놓여있다. 이것은 단순한 관리상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건물의 프로그램에 내재되어 있었던, 즉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이 분명히 어떤 건축적 의도이거나, 경우에 따라 사회적인 메시지일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만약 그런 가능성을 인정한다 하여도 그러한 의미의 전달을 가능케 해주는 어떤 배경도 건물 내에 주어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모호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여기서 건축가의 의도를 따로 골라내어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건물이 현재 이렇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며, 그것을 그렇게 된 과정 전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찻집은 반지하 건물이다. 접근하면서 보면 지붕 위에 그대로 조경이 연속되어 덮혀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사실은 콩자갈이 깔려 있어 위에서 봤을 때 주위와 쉽게 구별이 된다. 대지 조건을 활용한 배치가 대단히 절묘하다. 지도를 가지고 그 바로 근처까지 가서도 건물을 찾지 못해 정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로 뒤에 있지 않냐'고 했던, 당황스러우나 매우 즐거웠던 경험을 기억한다. 들어가는 입구가 특이한데 철도에서 쓰이는 침목에 쇄석까지 바닥에 깔려있다.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 진짜를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레일만 있으면 완연히 기차길이다. 특이한 처리인 만큼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갖게 한다. 이것이 무언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것은 그냥 침목과 쇄석이라는 기찻길의 파편적 이미지로서 도입된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기차길 옆 찻집이라는 낭만적 분위기?) 이 건물을 기차와 관련하여 생각할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콘텍스트적인 소재를 택하려면 미술관 너머의 에버랜드 자동차 경주장에서 요란하게 돌고 있는 최신 스포츠카들의 이미지가 더 쉽게 납득 가는 대상일 뻔했다. '그 자체로서 보기 좋고 재미있으면 된 것 아니냐'는 반응도 가능하겠지만 그렇다면 건축에서 의미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두 건물 모두 실내의 분위기가 깔끔하며 매우 고급스런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장소에 흔히 나타나기 마련인 어설픈 전원풍이 아닌, 도시적인 세련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물은 건축 설계 뿐 아니라 건물을 사용하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안목과 노력을 요구한다. 재료 선택, 디테일, 조명 등 일반적으로 건축가들이 하는 일은 물론이고, 사용되는 집기, 각종 물건들의 수납, 배치 등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건물이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건물주가 국내 최고 수준의 사립미술관이니 만큼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주어진 건물을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매표소 건물에 있는 기념품 판매소의 경우를 보자. 인테리어의 집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 디자인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건축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놀랄 만큼 무관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건물이라면 건축물의 개구부와 전시대가 서로 호응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일 것인데, 현재의 배치에서는 그런 고려를 전혀 읽을 수가 없다. 새로운 의미의 창출을 위해 그 상식을 일부러 파괴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건물 외부로 나아가서 진입구 바로 옆에 버젓이 놓여있는 자판기와 냉각기에서 이러한 둔감증은 그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이런 문제는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상당히 불행하고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건축 설계를 하는 능력보다도 건축물의 성격을 알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사회는 훨씬 더 늦게 깨우치는 것임에 틀림없다.

찻집에서도 이런 문제는 계속 발견된다. 카운터를 예로 들어보자. 계산기와 전화기 등이 카운터 위로 볼품없이 올라 와있고 아래에 놓인 휴지통은 애처로울 만큼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 흰색 플라스틱 받침에 놓여있는 화분도 차라리 없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 정도로 건물 사용의 디테일에 무관심하다면 건물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다. 비행기 날개같이 생긴 날렵한 천장의 조명기구도 부착하는 각도가 좋지 않아 이미 부착용 하드웨어가 천장과의 틈을 보이고 있다. 비행기는 작은 핀의 결함이나 승무원의 사소한 점검 소홀로 추락할 수 있다. 건축은 그렇지 않은가?

실재로 이 매표소와 찻집은 산뜻하고 날렵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쾌적한 느낌을 갖게 하는, 기분 좋은 건물이다. 희원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져 유일무이한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을 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매우 치밀한 설계를 읽어낼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찻집 내부 천장의 배기 그릴의 경우, 투박한 기성재의 알루미늄 제품을 사용하기 싫어 나무로 다시 디자인한 것으로 짐작되며, 깨끗한 디테일 처리에 성공하고 있다. (국내 금속 제품의 질이 좋지 않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부딪혀 본 건축가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찻집 바닥도 전통적 우물 마루에 색깔만 다르게 하여 매우 색다른 느낌을 주며, 놓여 있는 가구들도 대부분 그 자체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개념상의 모호함, 부분들간의 부조화와 파편화, 그리고 건축을 둘러싼 둔감한 상황 등이 누적되어 결국 이 건물은 날아오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건축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 이번에도 이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