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돌담 (The Stone Walls of Changdok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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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덕수궁의 돌담도 아니고 창덕궁의 돌담이라니? 낯선 표현이지만 이 글의 제목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늘 창덕궁 담장을 따라 그 주변지역을 잠시 돌아보려 한다.
The Stone Walls of Changdok Palace? Shouldn't it be 'The Stone Walls of Duksoo Palace' instead, with its many romantic associations? Well, the title is not a mistake; today we will take a short stroll around the area near Changdok Palace, along its stone walls.
서울에 있는 5개의 궁궐 중에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창덕궁일 것이다. 우선 이 궁에는 이야기 거리가 많다. 창덕궁은 태종에 의해 1405년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정궁인 경복궁에 대한 이궁이었으나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왕들은 대부분 창덕궁을 정궁으로 삼았다. 그래서 창덕궁은 경복궁 보다 시대적으로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텔레비전의 사극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상당수의 이야기들이 바로 이 창덕궁을 배경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나라를 잃은 왕 순종이 그가 죽은 해인 1926년까지 머물렀던 곳도 바로 창덕궁이다. 그의 며느리였던 일본인 이방자 여사가 1989년 창덕궁 안의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남으로서 창덕궁은 왕궁으로서의 마지막 역할을 다했다.
Changdok Palace is perhaps the most loved of all the 5 palaces in Seoul. The Palace has a lot of stories to tell to begin with. Built in 1405 by King Taijong, Changdok Palace was officially the No. 2 palace, after the venerable Kyongbok Palace. However, it was promoted to the main palace of the Chosun dynasty, after Kyongbok Palace was burnt to the ground during the Hideyoshi Invasion. Therefore it is closer to us in terms of time and it feels that way. Fans of historical soap-operas on TV would find that much of that they see on screen took place in this palace. The last king of the dynasty, Sunjong, having lost his country to Japan, lived here until his death in 1926. When his daughter-in-law from Japan, Lee Bangja, died in 1989, Changdok Palace had seen its last royal occupant off.
창덕궁은 경복궁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그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일단 규모에 있어 창덕궁은 종묘와 창경궁, 그리고 비원으로 알려져 있는 후원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경복궁을 능가한다. 경복궁은 비교적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비교적 네모반듯한 땅모양에 건물의 배치도 남북축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권위적인 분위기이며, 현재도 경복궁 주변은 실질적인 권력의 중심으로서 경계가 삼엄하다. 반면, 창덕궁은 지세를 따라 자연스러운 배치를 하고 있어서 왕궁이라기 보다는 사람사는 집의 느낌을 더 준다. 그리고 그 인근 지역에는 주로 학교와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서 마치 섬처럼 홀로 떨어져 있는 경복궁에 비해 도시의 일부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Changdok Palace stands in sharp contrast with Kyongbok Palace in many ways. Forming a network of buildings and outdoor complexes with neighboring Changgyong Palace, Chongmyo and the world-famous Secret Garden, its combined area is actually bigger than the main palace of the dynasty, which stands in isolation. Kyongbok Palace is an exercise of authority in architecture; the ground is flat, the outline is a rectangle and the main buildings are on a strong north-south axis. Even these days, the area around the Kyongbok Palace carries an air of tight security, still being THE political center of the country. Changdok Palace on the other hand feels much more relaxed. The buildings are not axially laid-out; instead they follow the contours of gentle hills. Unlike the island-like Kyongbok Palace, Changdok Palace is surrounded by residences and many academic institutions; therefore it is more integrated with the city.
행정구역상 종로구 와룡동 일대인 창덕궁과 그 인근지역을 돌아보기로 한다. 우선 창덕궁의 남쪽을 보자. 지도를 보면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이 동서로 가로지른 율곡로이다. 종묘와 창덕궁을 무참히 단절시키고 있는 이 길은 일제하인 1927년 경성시가도에서 예정도로임을 나타내는 점선으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라의 정기를 끊기 위해 뚫은 이 길에 조선 최고의 유학자 율곡의 이름을 붙였으니 그가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길에 의해 종로구 권농동은 그 일부가 잘려 나갔다. (율곡로의 연장인 사직로에 의해 경복궁 서쪽의 적선동이 두 동강 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여러 채의 민가로 구성된 삼각형 모양의 땅이 창덕궁 바로 옆에 붙어 있다가 지금은 공원이 되어 있다. 율곡로를 덮어 종묘를 창덕궁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종종 발표되었으나, 막대한 교통량 때문에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Let's take a walk around area near Waryong-dong, Chongro-gu, official address of Changdok Palace. The map of the area shows a street running east-west just outside the Palace: Yulgok-ro. This street dates back to only 1927, when it first appeared in a Japanese map in dotted line (meaning 'planned'). The street cuts right through the palace precinct, severing Jongmyo and 'national spirit' along with it, from the palace area. What a shame to name this ill-meaning street after one of the most respected Confucian scholars of all time! (He must be turning and tossing in his grave.) The street also cuts Kwonnong-dong in two, leaving a small triangular piece of land with small houses against the palace wall; this urban 'shipwreck' is now a small park. There have been also many plans to cover Yulgok-ro, thus reconnecting Jongmyo and Changdok Palace; none of them were realized due to massive traffic volume there.
창덕궁을 찾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율곡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종로 3가에서 돈화문에 이르는 길인 돈화문로를 걷는 일이다. 이 길을 걸으면 돈화문이 그 너머의 응봉과 북한산 보현봉을 등에 업고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복궁이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을 배경으로 하듯이 창덕궁도 이렇게 자기의 산을 갖고 있다. 이전에 창덕궁을 드나들었을 사람들이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을 보는 것이다.
Most people get to the Palace via Yulgok-ro, missing an important view. Take Donwhamun-ro, instead, running north-south directly from Donwhamun, the main gate of the Palace. Looking at the main gate, one would get to see the two mountain peaks far behind it; Changdok Palace, just like Kyongbok Palace, has mountains on its own! This is how the Palace was meant to be seen and approached in the old days.
창덕궁의 동쪽은 창경궁, 북쪽은 성균관대학교이니 당연히 우리의 관심은 창덕궁의 서쪽인 원서동 일대에 머물게 된다. 원서동이란 이름은 문자 그대로 창덕궁의 후원 서쪽에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는 이 동네는 관광객의 발길이 자주 머무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창덕궁 돌담과 주택가가 인접하면서 상당히 흥미로운 광경들이 연출되는 곳이다. 궁궐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기피하고 멀리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돌담을 의지하여 동네가 만들어진 느낌을 준다. 물론 이에 대해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기록에도 궁궐 담에 민가가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볼 현상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것도 하나의 역사적인 현상이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창덕궁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궁궐 안이 아니라 이렇게 궁궐 밖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To the east of Changdok Palace is Changgyong Palace; to the north, Songkyunkwan University. The area west of the Palace is called Wonso-dong. The name comes from its location; it means, literally, 'area west of the (secret) garden'. Long and linear, it runs parallel with the palace walls. Not a typical tourist attraction, but one never know how intriguing this area is until one ventures into its heart. This is perhaps where Changdok Palace reveals its most generous mind; small residences are literally built against the palace walls. There is almost an air of mutual agreement; the palace is not to be afraid of, but something to lean on. Critics say that those 'parasites' are to be disposed of, but history tells us that the same thing happened in the old days: then this is a living historical phenomenon! Perhaps we could say that Changdok Palace is gentler on the outside than the inside?
원서동 길을 따라 걸어보자. 영화 '정사'의 무대가 되었던 일식 가옥을 전후하여 돌담주변은 완전히 노상주차장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공영주차장이다가 곧 거주자우선 주차구역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길 건너편 집 담 위에 특이한 팔각정이 눈에 들어오는데 대문에는 원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적혀있다. 거기서 계속 북으로 올라가면 궁궐의 출입문 하나를 만난다. 이 문은 언제 열렸던 적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마침 그 바로 옆에 조성된 놀이터에는 동네 개구쟁이들이 수 백년 역사를 간직한 돌담을 배경 삼아 놀고 있다.
Let's continue to take a walk to the north. The area around a 2-story, Japanese-style house, once featured in the Korean movie 'Affair', is all ground parking, both public and private. A few more steps would take us in front of a peculiar-looking octagonal pavilion perched on a wall across the Palace; a knocker-plate bears a name associated with Won-Buddhism. Further to the north is one of the small gates to the Palace, firmly shut as if it is never meant to be opened. Just next to the gate is a small playground, where a few local children chase one another against the centuries-old stone wall.
삼청동, 가회동, 계동 일대와 더불어 이 지역은 소위 북촌이라 하여 최근 많은 관심이 대상이 되고 있다. 급속하게 사라져 가는 전통가옥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이미 시기는 놓쳐도 한참 놓친 것으로 보인다. 창덕궁 돌담을 따라 원서동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서쪽 언덕 위에 마치 군대가 사열하듯이 늘어선 다세대, 다가구 주택들을 볼 수 있다. 지대가 높아 창덕궁 안에서도 잘 보이는 건물들이니 만큼 여기서 바라보는 창덕궁의 모습 또한 각별하다. 평지이며 고도제한이 엄격한 경복궁 일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 여기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늦었다'고 탄식할 일이기는 해도 지금부터라도 할 일은 있을 것이다. 원서동 깊숙한 안쪽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이미 동네 여기저기가 헐려 나갔고 겉모습은 근사하지만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한옥도 있다. 궁중음식전수관 등 이 동네에 있음직한 기능들이 들어와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우연히 만난 동네 아주머니는 아주 살기 좋은 동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The area generally called 'Bukchon', including Samchong-dong, Kahoe-dong, Kye-dong and also Wonso-dong, is a subject of recent interest in historic preservation. One would get a feeling of 'lateness', however, upon looking at the area in unavoidable reality. On a small hill to the west of Changdok Palace lie a row of new 4-5 story apartments; they look like Roman soldiers in phalanx ready to take a helpless city. Overlooking the Palace at a vantage point, they can also be seen quite easily from inside the Palace. One would hardly expect to see something like this around Kyongbok Palace, where the ground is flat and height regulation is stringent. All hopes are not lost, however, and there must be something to be done from now. Changes are to be seen deep inside Wonso-dong; many buildings are already torn down to make place for new apartments, there are even a few unlived houses, full of grandeur but devoid of occupants....... There are also some hopeful signs: Institute of Royal Cuisine for example. A local woman was heard to say that she was very proud of living in this area.
원서동이 창덕궁과 맺고 있는 이 이상한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신중한 평가를 내릴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분명 문화재는 보존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꼭 주변 지역의 살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덕궁 돌담길은 덕수궁 돌담길 같은 낭만적인 산책로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길은 살아 있는 길이다. 여기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궁궐도 이것을 그다지 꺼리는 것 같지 않다. 시각적인 도시정화가 아닌, 역사현상의 보존이라는 측면이 필요한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지역은 아직도 근처에 가면 긴장감이 감도는 경복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경복궁은 아직도 우리에게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언덕 너머에는 유장한 세월 속에 터득한 여유랄까, 길게 몸을 누이고 나른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궁궐이 있다. 옆에 작은 집들이 달라붙어 있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은, 마음 좋은 이웃 같은 궁궐. 창덕궁은 바로 그런 곳이다.
We should be careful in looking at this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Changdok Palace and its surrounding area. To preserve and protect a historical place is one thing, but to totally 'sanitize' the area next to it is another. The street and alleys around Changdok Palace are not as romantic as those around Duksoo Palace, but they constitute a living tissue of the city. This is where people have been living for centuries and even the Palace doesn't seem to be bothered. Preservation of historical phenomenon, instead of visual beautification, is what is really needed. The area around Changdok Palace, as we have seen, is different from the area around Kyongbok Palace. Kyongbok Palace still seems to tell us who rules this country; on the other side of a hill, there is yet another royal residence with a completely different manner. Relaxed in deep, pleasant slumber, this palace lies happily with small residences, never minding their presence. A good neighbor, this is. Welcome to Changdok Palace.
(사진설명)
사진 1. 동궐도 (Dongkwol-do, a historic map of Changdok Palace)
사진 2. 1927년 일제시대 지도에 나타난 현재의 율곡로 (Yulgok-ro, as depicted in a 1927 Japanese map (in dotted lines))
사진 3. 창덕궁 인정전 (Injong-jon, Changdok Palace)
사진 4. 원서동 일대 항공사진 (aerial photograph of Changdok Palace and Wonso-dong area)
사진 5. 창덕궁 돌담길의 이런저런 표정 (many faces of the stone walls of Changdok Palace)
사진 6. 궁중음식 전수관 전경 (Institute of Royal Cuisine)
사진 7. 원서동의 팔각정 (Octogonal pavilion at Wonso-dong)
사진 8. 아파트에서 바라본 창덕궁 (Changdok Palace seen from new apart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