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앞마당

건물의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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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길과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것은 공공성이란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유재산권의 행사, 최소 기준으로서의 법률이 가지는 한계, 모여 살기의 지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건축이나 도시의 문제만은 아니다. 결국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사회야 어찌되었던 건물주인으로서의 내 권리는 행사하고 말겠다는 생각은 종종 아주 기형적인 건물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건물들은 보통 길에서 멀찌감치 뒤로 물러서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전면의 여유공지를 다름 아닌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대부분 좌우 대칭이며 권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대칭축의 한 가운데 나 있는 정문을 통해 자동차가 들락거리고, 보이는 것이라곤 빈약한 화단 너머의 주차장뿐이다. 중요한 손님은 꼭 건물 정면의 현관에서 차를 내린다. 게다가 외부인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은 수위가 눈을 부릅뜨고 정문을 지키고 있다. 이런 건물 앞을 걸어가는 것은 고역이다. 이 건물이 들어섬으로서 그 앞길은 이전 보다 더 나빠졌다. 시민은 길을 뺏긴 것이다.

문제는 이런 건물이 별로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도시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이런 건물을 워낙 많이 지어왔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관공서 건물들이 대표적으로 이런 모습들을 하고 있고, 기업체 사옥들도 별 다르지 않다. 자세히 보면 담 위에 철조망을 치거나 깨진 유리병을 올려놓은 주택가의 모습도 놀랄 만큼 유사하다. 큰 빌딩에서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한치의 양보 없이 자기 땅에 담을 치고 버티고 있는 모습은 마치 중세시대의 고립된 성들을 보는 것 같다. 외부와의 연결을 극도로 꺼리는, 소위 '군부대형 배치'라고나 할만한 건물들이 전국의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80년대 초에 지어진 강북의 교보생명 본사이다. 건물 주위에 담을 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던 시기에 이 건물은 정면의 공지를 파격적으로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자동차 진입로는 겸손하게 한쪽으로 비껴나 있다. 그래서 이 건물에서는 건물의 주인이건, 입주해 있는 수많은 외국 대사관의 외교관들이건 차에서 내리는 곳은 건물의 후면 출입구이다. 이렇게 건물의 전면을 개방하여 시민들이 오고 가기 쉽게 해 놓았으니 지하의 대형 서점에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사업적으로도 현명한 판단이었던 셈이다.

강남의 새 명물로 떠오른 포스코 사옥은 교보생명 본사와는 10년 이상의 세월을 격한다. 이 건물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건물의 앞마당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었다. 2동으로 된 건물 배치는 좋은 옥외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널찍한 공지는 그대로 거대한 실내의 로비와 연결된다. 건물 전면의 유리벽을 아주 투명하게 만든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곳에 서 있는 가로등 하나, 보도 블록 하나까지 일일이 디자인하여 정성스럽게 만든 흔적이 엿보인다. 얼마 전 그곳에 서 있는 조각 '아마벨'은 그 과격한 예술성으로 인해 격렬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도시 문제하면 밤낮 교통, 상하수도 이런 것들만 이야기되던 상황에서 공공 예술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만 해도 사회적으로는 큰 발전이었다. 우리 도시에 마당의 이야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마당은 다름 아닌 시민들을 대접하는 공간이다.

그 뿐 아니다. 대구에서는 시청이 앞장서서 각종 관공서 건물의 담 허물기를 시작했다. 이에 시민들이 호응, 수많은 주택들이 담을 헐고 앞마당을 이웃에게 공개하고 있다. 보수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대구에서의 이런 움직임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운동이 확산될 때 그것이 우리의 도시에 가져올 변화는 자못 기대된다.

같은 마당이라 하더라도 앞마당이 아닌, 가운데 마당이나 혹은 뒷마당이 근사하게 조성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건물은 길에 바짝 붙어 서로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마당은 길의 소음이나 혼잡에서 약간 비껴날 수 있기 때문에 혼잡한 도시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유럽의 전통적인 도시 건축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지어졌으며, ㅁ자, ㄷ자의 구성을 갖는 우리의 전통 주거들도 이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의 골목길에 대해서 갖는 향수는 이렇게 집과 길이 재미나게 잘 소통되는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도시는 길과 건물, 그리고 광장(혹은 마당)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그 동안 건물 담 너머의 세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결과적으로 건물이나 도시 모두 고립되고 분절된 상황을 초래하였다. 열린 세상은 열린 환경을 필요로 하며, 반대로 열린 환경은 사회를 더욱 열릴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이다. 사회를 향해 열려있는 건물의 마당은 바로 그 구체적인 출발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