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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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누구이고, 또 어떤 생각의 소유자인가에 따라 이 글의 제목은 여러 가지로 다가올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의 사회는 '남자들이 모든 좋은 것을 다 차지해온 사회'라고 믿는다면 이 제목에 대해 당장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름을 통해 필자 역시 남자임을 확인한다면, '남자가 남자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뻔한 글'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현대인의 소외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그 중엔 공간적 소외라는 것이 있으며, 아빠들 대부분이 그 공간적 소외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 제목은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엄마 역시 아빠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겪고 있는 공간적 소외와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평균적 아빠의 삶을 들여다보자. 그에게는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공간이 있다. 직장에서는 그의 지위나 업무의 성격에 따라 그에게 제공되는 공간에 큰 차이가 있다. 그는 책상 하나를 지키고 있을 수도 있고, 직장 내에서 지위가 높다면 밖이 내다보이고 근사하게 인테리어가 된 독립 공간을 제공받고 있을 수도 있다. 겉으로 보면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직장이라는 곳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곳이다.

 

가장 구태의연한 방식은 지위에 따라 뒤에서부터 앉는 것이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자기 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들이고, 자기 뒤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경우 감시-피감시 관계는 일방적인 것 같지만, 역시 상사도 부하들에 의해서 감시당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독립 공간을 갖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물리적인 감시자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는 사실상 더욱 엄격한 제도적인 감시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직장 내에서 지위가 높고 그만큼 회사의 각종 비밀을 다룰 기회가 많다. 그들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인적자원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회사에서 고위직 임원에 대해 개인 사물을 회사에 가급적 두지 않을 것을 권한다. 기밀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들에 대한 해고는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개인 사물이 있다면 그만큼 방을 치우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예 해고 통지서와 함께 다른 직원이 와서 방을 대신 치우게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은 아주 극단적이 예이며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공간을 개인화하는 것이 오히려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이를 허용한다. 이것은 사무실의 공간계획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관점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와 예외가 있다 해도 근본적으로 직장은 공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보상해 줄 개인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평균적인 아빠에게는 이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절대적으로 집이 작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단칸방'에 사는 경우라면 아빠의 개인적공간이 집안에 조성될 확률은 극히 낮다. 문제는 이 보다 상황이 훨씬 좋은 경우에도 좀처럼 아빠의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방이 배분되는 우선 순위가 관련이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경우라면 부모님 방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부부의 방이다. 애들이 있으면 아주 어릴 때라면 모르지만 어느 정도 크면 독립된 방이거나 적어도 형제, 자매들이 함께 쓰는 방이 배정된다. 여기까지 다 되고도 방이 남으면 그 때 아빠의 순서가 돌아오는데, 이러려면 집안에 적어도 방이 4개는 되어야 한다. 아파트를 기준으로 할 때 방 4개는 상당히 큰 규모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보다 작은 집에 산다. 결국 아빠에겐 따로 주어진 방이 없는 것이다. 결국 거실이 아빠의 공간이 되며 아빠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 이외에 이렇다할 대안이 없는 상태로 집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구조상 거실에 앉아 있으면 식구들의 출입이 다 관찰되는데, 아빠는 이렇게 또 원치 않는 감시자가 되기도 한다.       

 

이래서 아빠는 집에 가기가 싫어진다. 하루 종일 공적인 공간인 회사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면 거기에도 자기의 공간은 없다. 안방이 있지만 대부분 엄마의 취향에 따라 꾸며져 있다. 무엇보다 아빠는 공간적 배려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자기 물건이 있고, 자기 책이 있고, 마음놓고 전화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차분하게 밀린 회사 일을 할 수도 있는 그런 공간,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는 분명히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사회를 살고 있다. 결국 아빠들은 집밖에서 공간적 소외를 달래기 위한 곳을 찾는다. 그 첫 번째 대안은 새삼 말 할 필요 없이 단골 술집, 그리고 거기에 가면 있는 '잘 아는 마담'이다. 여기서 아빠는 간절히 필요로 하는 자기의 공간을 확보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품화된 공간을 한시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며, 공간적 소외의 진정한 해결은 되지 못한다.

 

또 다른 대안이 바로 자동차이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운송수단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제한적 의미에서 하나의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빠는 자동차에 돈을 많이 쓴다. 이왕이면 큰 차에 각종 오디오,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싶어한다. 자동차는 식구들과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별다른 반대도 없다. 그러나 이 역시 보조적인 대안은 될지언정 아빠의 공간적 소외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각종 취미활동 등을 통해 집 밖에 어떤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헬스클럽일 수도 있고, 동호회 모임일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공공적인 장소이기는 하되 직장에서와 같은 감시-피감시의 정신적 압박은 없는 곳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동등하게 교류하면서 자기 만족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또 다른 것은 역시 가정이다. 가정은 최소 단위의 사회조직이면서 동시에 매우 개인적인 사회 조직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정의 변화는 사회 전반적 걸쳐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한정된 집안 구조에서 어떻게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우선 아빠에게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식구들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는 돈 버는 기계가 아니며, 어른이지만 애들 못지 않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또 때때로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을 식구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는 과감하게 집안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아빠에게 따로 방을 하나 주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려울 때는 집안의 방을 하나 골라 그것을 근사하게 식구들이 다같이 모여서 책 읽고 공부하는 방으로 만든다. 약간 돈이 들더라도 조명도 편안하게바꾸고 책장을 충분히 확보하여 온 집안의 책을 거기에 다 모아 놓는다. 애들 교과서 옆에 아빠 전문서적이 함께 있으면 어떠랴. 거기에 푹신한 안락의자가 놓이면 이것만으로도 아빠는 집에 오고 싶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컴퓨터도 각자 자기 방에 있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공용의 공간에 있을 경우 사용 행태가 달라진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서 보고되고 있다. 애들은 물론 불만이 있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환경을 만들어놓으면 금방 적응할 것이다. 가정에 따라 이를 '가족실', 혹은 '가족 도서실', 아니면 어떤 다른 멋진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빠에게 방을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 실정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가족의 사랑과 배려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좋은 경험이다. 이렇게 각자의 방을 조금씩 줄이고 그만큼 근사한 공용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히 집안 내부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가 최인훈이 이야기했던 바람직한 삶의 기본적 조건, 즉 광장과 밀실 사이의 적절한 교통을 가능케 해주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아빠의 방은우리 모두의 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