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현실의 가면을 쓴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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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건축의 무거움

 

건축의 한계를 절감하는 때가 있다. '참을 수 없는 건축의 무거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 무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창작의 모든 분야 중에서 건축처럼 제어장치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없다. 우선 건축은 법률에 의한 규제를 받는다. 건물이 지어지는 모든 대지에는 보이지 않는 각종 규제선들이 허공을 날아다닌다. 물론 문학이나 영화 등에도 표현의 내용과 정도에 관련된 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가나 시인, 영화감독이 관련 법규에 대한 검토로 작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들은 적어도 창작의 내용에 관해서는 사회로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 받고 있다. 법률적 제약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며, 이것은 종종 창작의 자율성에 대한 침해라는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낸다. (주1) 그러나 건축과 관련되어 이런 논의가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법률의 규제에 대한 도전, 심지어 반대가 다른 창작에서는 기본에 깔려있는 태도일 수 있지만, 건축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자본의 제어장치가 있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자본을 갖고 하는 창작이다. 영화감독들이 제작자를 겸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건축가 자신이 건축주가 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학생 시절부터 소위 프리젠테이션이라는 것을 배운다. 이것은 종종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데 그 하나는 자기의 작품을 설명하는 행위 그 자체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위해 필요한 도면이나 모형, 동영상 등을 말한다. 창작의 과정에서 타인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에 대해 건축가들조차도 의견이 분분하다. 건축주와의 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작가적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투쟁도 불사하는 건축가가 있는가 하면, 건축주와의 대화와 협력이 좋은 작품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건축가들도 있다. 하여간 자본의 인격화로서 건축주는 항상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기능도 여기 한 몫 거든다. 건축은 그 창작의 목표가 어디 있던지 간에 일단 현실의 요구와 필요를 바탕으로 출발한다. 간혹 그런 것이 없이 그냥 추상적인 공간이나 형태로서 존재하는 건축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건축가들 자신도 의문을 갖는다. 이 기능이란 문제는 아주 미묘하다. 이것은 아주 융통성이 있거나, 아니면 아주 경직되어 있다. 뱃속의 내장들이 질서정연하게 들어가 있지 않아도 제 기능을 다 하듯이, 기능은 무한하게 신축이 가능한 고무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자세하게 파고 들어가면 한약방 약장에 달린 수많은 서랍으로도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다 충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기능적인 측면만으로 건축주나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건물은 의외로 드물며,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종종 매우 평범한 건축을 만든다.

 

건축을 무겁게 하는 것들의 명단은 끝이 없다. 비행기와 로케트가 하늘과 우주를 날아다니고,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는 물질의 물질성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건축은 땅에 무겁게 뿌리박힌 채 그 산문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에서의 판타지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바로 판타지인지 모른다.

 

피라미드와 진시황의 병마용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으로 건축이 분명히 판타지의 적극적이며 효과적인 매개체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건축의 기원 자체가 어떤 명백한 판타지적인 요소를 갖는다. 예를들어 서양의 피라미드나 동양의 진시황 병마용 같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수 천년 전에 지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망자의 영생에 대한 신념이 가시화된 결과들이다. 즉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건축은 죽음이라는 한계, 나아가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피라미드에서는 순수기하학적 입체라는 추상성으로, 병마용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테라코타 병정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다는 무시무시한 구상성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바탕에 깔린 생각은 같았다. 현실을 받아들이지않고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죽음의 극복! 건축은 바로 판타지였던 것이다. (그림1)

 

이렇게 보면 건축의 기원은 종교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모두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자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생, 영원 같은 개념들을 만들어낸다. 건축이 상품과 다름없는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에 편입된 요즘도, 우리의 언어감정은 건축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종종 드러낸다. 기둥, 주춧돌, 반석, 동량 같은 것들은 모두 견고함이나 영속성과 관계 있는 단어들인데, 모두 건축물의 이런저런 부분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건축의 기원을 '영속성의 가공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에 둘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 건축은 종교와의 지속적인 밀월 관계를 시작한다. 특히 근대 이전 서양 건축의 역사는 사실 종교건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대중이 성서를 직접 접할 수 없던 시절, 교회건축은 그야말로 '돌에 새긴 성경'이었다. 적어도 교회의 내부는 세속과 구별되는 놀라운 세계여야 했다. 그래서 고도의 상상력과 기술력이 동원되었다. 영화에서의 특수효과가 나오기 훨씬 이전, 건축은 특수효과의 치열한 실험 무대가 되었다.

 

비잔틴과 고딕

 

우선 그들은 중력을 부정하고 싶어했다. 그래야만 인간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실 세계의 가장 큰 제약 중 하나에 도전을 한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다분히 시각 효과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서기 6세기 경에 세워진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을 보자. 여기서는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건물의 시각적인 무게를 없애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우선 건물의 벽면은 모두 빛을 반사하는 유리 모자이크로 덮혀 있다. 그래서 여기에 빛이 떨어지면 벽체는 중량감을 상실한다. 두께가 없는 반짝이는 도상들의 이미지에 의해 이 육중한 건물이 지탱되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장치는 또 있다. 직경 30 몇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원형 천장은 많은 아치에 의해 지지된다. 서로 이웃하는 아치의 곡선은 이를 받치고 있는 기둥의 모서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다시 말해서 이 거대한 천장이 4개의 날카로운 점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이것은 거의 공포스러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성공한 특수효과인 셈이다. 이러한 공간을 경험한 당대인들의 충격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장치를 추가하였다. 기둥머리는 현실적으로는 견고한 돌덩어리지만, 이것은 깊게 조각하여 마치 육중한 돌이 아니라 하늘하늘한 레이스처럼 보이게 했다. 이처럼 성 소피아 성당은 건축의 물질성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통해 종교적 이상 세계를 구현하려 했던 당대 최고의 판타지 건축이었다. (그림2, 3)    

 

그 다음 이들은 수직적인 높이, 그 자체에 도전했다. 12-13 세기에 지어진 유럽의 대성당들은 높이에 대한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구조공학이라는 것이 없던 그 시절, 계산에 의해 미리 구조물의 안전을 예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하게 경험에 의존했다. 다시 말해서 어느 도시에서 높은 성당을 세우면 다른 도시에서는 그것보다 조금 더 높은 성당을 세웠다. 그러다가 건물이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면 바닥에 십자가를 묻고 다시 시작했다. 현존하는 가장높은 고딕성당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보베(Beauvais) 성당은 결국 이렇게 해서 본체의 일부분만이 완성되었다. (그림4, 5)

 

높이에 대한 정복은 경량화와 투명성이라는 또 다른 과제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고딕 성당의 벽면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우기 위한 거대한 빈 공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다 보니 구조물 그 자체는 지극히 얇은 뼈 같은 것이 되었다. 지극히 섬세하게 만들어진 장미창은 돌이라는 재료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이렇게 해서만들어진 고딕 성당의 공간은 한마디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그림6) 평생 고딕성당을 연구했던 프랑스의 비올레 르 뒥(Viollet-le-Duc) 같은 사람은 처음 고딕 성당에 들어갔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 내부 공간이 매우 어두웠는데 남쪽 익랑의 커다란 장미창을 통해 햇살이 성당 안을 비추었다. 바로 그 때 갑자기 오르간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오르간이 아니라 장미창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로 생각되었다. 유리창에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빛이 실제로 여러 소리를 창조해내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너무나 놀라서 일종의 두려움에 사로 잡혀 유모에 의해 강제로 성당에서 나와야 했었다......'

 

고딕성당의 이러한 강렬한 성격은 판타지 문화의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지금도 우리는 판타지 문화를 논할 때 종종 고딕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비밀스럽고 신비하며 몽환적인 세계이다. 그리고 매우 불안한 세계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건물이면서도 여기저기에 온갖 괴물상들이 동원되고 있는 것은 선에 대해서는 악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여기서는 햇빛조차도 무언가에 의해 희미하게 걸러져 들어오며, 대상의 디테일보다는 그 윤곽이 더 중요하다. 프리드리히(C. D. Friedrich)의 회화에서처럼 하늘의 향해 치솟은 성당의 이미지가 신비로운 자연경관과 결합될 때, 이러한 고딕적 판타지의 배경은 완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 최고의 판타지 상품인 영화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딕은 판타지의 영원한 고향인 것이다. (그림7, 8)  

 

왜곡된 투시도: 가상공간의 판타지

 

투시도법은 르네상스 시대 최대 발명중 하나이다. 건축가인 부르넬레스키(Brunelleschi)가 고대 로마의 유적들을 정확히 묘사하기 위해 고안해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3차원을 2차원에 표현하는 방법이며, 단일 시점을 고집하는 점에서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과의 연관이 종종 이야기된다. 르네상스 초기만 해도 건축가나 화가들은 투시도를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사용했다. 건축가들은 자기가 설계한 건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는데 투시도를 사용했고, 화가들은 자기가 본 광경을 정확히 그림에 옮기기 위해서 투시도를 사용했다. 당시 그들은 예술이 주관적이며 애매한 것으로부터 객관적이며 명확한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투시도는 이러한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했다. (그림9) (주2)

      

그런데 일단 투시도의 사용에 익숙해지자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떴다. 그것은 투시도에 의한 시각적 경험의 왜곡이었다. 투시도의 세계에서 평행한 두 개의 선은 무한대의 거리에 있는 한 점에서 만난다. 그러나 두 개의 선이 이루는 각도를 조절하면 그 점은 현실의 거리를 갖는 점이 된다. 그들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실제보다 길거나 짧게 보이는 계단, 혹은 실제 길이와 관계없이 무한히 길어 보이는 거리의 풍경을 담은 무대 배경, 아니면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보듯이 현실 공간의 연장으로 보이는 벽화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이것은 절정에 달했다. 무한히 높아 보이는 성당의 천장, 실제 깊이는 얼마 되지 않으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엄청난 양감을 갖는 부조, 거울을 이용한 공간의 수평적 확대 등은 아주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는 20세기에 출현했을지 모르나, 실제로 그것은 이렇게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그림10, 11) (주3, 4)

 

건축, 회화, 연극에 이르기까지 투시도는 예술가들이 마음대로 현실을 재단하는 마술 같은 도구였다. 현실을 정확히 그려내기 위한 방법이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이것은 판타지의 창조에는 종종 고도의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된다는 것을 미리 예견하는 사건이었다. 슈퍼컴퓨터를 동원한 영화의 특수효과 같은 것은 바로그 전통 위에 기초하고 있다.

 

경험의 세계를 넘어

 

과학은 기본적으로 경험에서 출발한다. 고도로 추상적인 과학 이론도 현상의 관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인류가 소위 '양자역학적 도약'(quantum jump)이라고 표현되는 과학의 빠른 발전을 경험하기 이전에는 경험의 세계와  추상적 이론 사이에 큰 괴리가 없었다. 그러나 과학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혼자서 달려나가기 시작하자, 우리의 경험은 이를 따라가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는 빛의 속도나 우주의 크기를 느낄 수 없으며, 분자의 움직임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신체의 연장으로서 고도로 발달된 장비들을 만들어왔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 그 자체만으로 우리가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의 발달은 경험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도 현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투시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과학도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많은 변수들 중에 몇 개를 조작함으로서 아주 쉽게 존재하지 않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구의 중력이 지금의 1/2이라면?'이라는 질문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물체들의 구조적 비례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뼈는 지금보다 훨씬 가늘어도 좋을 것이다. 초고층 빌딩의 제일 아래층도 지금처럼 기둥들이 빽빽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현실을 구성하는 무한히 많은 인자들 중 단 하나를 조작해도 현실은 금방 이렇게 비현실적인 된다. 그러니 현실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몇몇 건축가들이 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이다. 그가 판타지 건축을 추구하였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엔지니어, 과학자였던 그의 작업에는 종종 인간의 경험세계를 뛰어 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가 발표한 공중도시 계획인 'Cloud Nine'을 보자. 이것은 저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다만 유체가 물이 아닌 공기인 것이 다르다. 외기와 차단된 거대한 구를 만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구의반지름이 점차로 커갈수록 그 표면적은 반지름에 제곱해서 증가하지만 체적은 세제곱으로 증가한다. 구의 무게는 기본적으로 표면을 구성하는 재료의 무게이므로, 이것은 결국 구의 무게에 비해 체적이 증가하는 정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적은 결국 밀어낸 공기의 양이므로 내부 공기의 온도가 약간만 상승해도 구는 점점 부력을 얻게 된다. 구의 지름이 1.6 킬로에 이르면 그 안에 수천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도시를 집어넣고도 공중에 뜰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것은 결코 궤변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지만, 그 상상력은 어설픈 판타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림12)

 

사회적 판타지

 

역사적으로 건축은 종종 정치의 도구로 활용되어왔다. 이것은 건축이 화려한 연설 못지 않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은 다른 종류의 예술에 비해 오히려 이런 목적에 더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건축은 그 규모와 존재감으로 인해 현실의 당연한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환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는 환상일 수 있다.

 

건축이 갖는 이런 힘을 가장 잘 이해했던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가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이다. 그는 자기 휘하에 선전을 전담하는 조직을 따로 갖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선전이란 문제에 대해 민감했다. 이런 그가 건축이 갖는 선전도구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무심했을 리가 없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전속 건축가인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의 협력을 받았다. (주5)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의 단상은 매우 높은 곳에 설치되었고, 대중은 현란한 조명과 대형 나찌 깃발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의 모습을 밑에서 우러러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1차 대전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선 독일 국민에게 그가 메시아임과 독일민족이 우수함을 계시하는 온갖 무대장치가 이 건축가의 손에 의해 고안되었다. 36년 베를린 올림픽 폐막식에서의 '빛의 성당'도 또한 그의 작품이었다. 슈페어는 '베를린 재구성 계획'을 통해 전쟁 이후 세계의 수도가 될 베를린을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특히 이 계획의 중심이 되는 '거대한 홀'(Great Hall)은 가톨릭의 총본산인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 3개 들어가는 크기였다. (주6)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로마 제국을 계승한다 하여 자기의 정권을 제 3제국이라 했던 히틀러는 건축을 통해 그 판타지를 구현하려 하였다. (그림13, 14)

 

하틀러는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정치가와 정권들이 자기들의 전달하고자 하는 사회적 판타지의 구체적 현시로서 건축을 이용해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권의 정당성에 스스로 의문이 있었던 정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전통적 건축양식을 강요했다. 콩크리트로 지었을망정  동양 최대의 기와집으로 일컬어졌던 독립기념관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경복궁 안의 구 국립박물관은 아예 건축이 무대장치로 전락되었다. 이런저런 역사적 건물의 부분들을 조합한 이 건물에서 실제의 기능은 모두 기단부에 들어있고 나머지는 빈 껍데기이다. 전통건축 양식을 통한 정권의 정당성 표현은 남북한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던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들은 전통 문화의 계승이라는 이름아래 불행하게도 사회의 이상을 미래가 아닌 과거의 어떤 시점에 고착시켰다. 이것을 우리는 퇴행적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림15)          

 

판타지를 넘어

 

건축은 참으로 일상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우리 현실세계의 배경을 구성하며, 좀처럼 무대의 전면에 나오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감동은 서서히 전달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땅이 갈라지고, 하늘로 불기등이 오르며, 수많은 비행체들이 날아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이 갖는 철저한 시간적 통제의 효과를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제나름의 방법으로 건축을 경험하며,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 땅에 뿌리박고 있는 이러한 일상성은 건축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다. 건축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그 영향은 오히려 더 비일상적이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흐르는 깊고 어두운 강 같은 것이다. (때로 건축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아쉬워하다가도, 오히려 이것을 즐기기도 하는 모순된 상황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뭔가 스텔스(stealth)적인 것이 있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는 그것이 판타지임을 알면서 읽고 본다. 속는 것을 알고 속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의 판타지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현실의 가면을 쓴 판타지, 그것이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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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가수 서태지, 영화감독 장선우, 소설가 마광수와 장정일, 만화가 이현세 등이 이러한 투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이다.

주2: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의 문을 연 건축가로 일컬어진다. 투시도법의 발명은 인문주의라는 르네상스의 가치와 직결되는 것으로, 서양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사건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단일시점적인 태도이며, 20세기에 들어 입체파 등에 의해 이러한 시각은 비판받게 된다.   

주3: 이렇게 투시도법을 왜곡하거나 다른 장치를 사용하여 만들어내는 눈속임효과를 불어로 'trompe-l'oeil'라 하며, 영어에서도 그대로 사용한다.

주4: 한편 이 글에서 소개하지 않지만 소위 매너리즘 건축에 해당하는 작가들, 특히 쥴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같은 건축가의 작품은 판타지 건축이라 할만하다. '테' 궁(Pallazzo del Te)에서 그는 마치 붕괴하는 것 같이 보이는 건물을 설계하였다. 영속적이며 견고한 이미지의 구현이라는 건축의 가치를 부정한 것이다. 이것은 종교개혁 이후의 유럽의 심리적 불안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5: 슈페어는 건축가로서의 활동 못지않게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군수상(Minister of Armament) 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탁월한 조직력하에 독일은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정도의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연합군 고위장교들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하던 적이었다. 대전 후 전범으로 장기복역하였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조직가(organizer)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주6: 소위 과대망상증(megalomaniac) 건축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전례가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불레(E. L. Boullee)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뉴튼 기념비' 등 그의 계획안은 당시의 기술력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다.  

 

그림1: 피라미드의 단면도. 엄정한 비례를 갖는 단순 사각뿔이다. (챨스 임즈의 'Power of Ten'에서 발췌)

그림2: 성 소피아 성당의 내부

그림3: 성 소피아 성당의 기둥머리

그림4: 쾰른(Cologne) 성당의 내부

그림5: 보베 성당의 내부단면

그림6: 파리 노트르담(Notre Dame) 성당의 장미창

그림7: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괴물상

그림8: 프리드리히의 '산중의 십자가와 성당'(The Cross and Cathedral in the Mountains), 1812년 경

그림9: 브루넬레스키에 의한 투시도법의 도해

그림10: 무한히 높아 보이는 천장

그림11: 실제보다 깊어 보이는 부조효과

그림12: 버크민스터 풀러의 'Cloud Nine'

그림13: 슈페어의 베를린 재구성 계획 (모형)

그림14: 슈페어의 '빛의 성당'

그림15: 경복궁 소재 구 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