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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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한 수많은 정의 중에 '자연과 인간의 매개체'라는 것이 있다. 여러모로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고 해서 여기저기에 종종 등장한다. 이 정의는 특히 우리나라 전통 건축을 이해하는데 아주 유효하기도 하다. 하여간 건축을 가운데 두고 한 쪽에 자연이, 그리고 그 다른 쪽에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건축과 자연, 그리고 건축과 인간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건축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일단 건축과 인간 사이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리 구석구석 잘 된 건물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인간을 그 안에 수용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텅 빈 건축공간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냥 왔다갔다하거나 혹은 명상에 빠지는 것 등이다. 그래서 건축과 인간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추가로 개입되어야 한다. 대충 그 순서를 나열해보면 이렇다: 건축-인테리어-가구-인간. (굳이 더 넣자면 가구와 인간 사이에 '생활소품'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가구다. 가구는 위에서도 보듯이 분명히 인간의 삶의 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건축이나 인테리어와는 구별되는 몇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1. 가구는 싸다

: 오해는 마시라. 세상에는 물론 엄청나게 비싼 가구들이 많이 있다. 명품을 넘어 골동품 정도가 되면 값을 매기기 어려운 가구들도 많다. 그러나 일상적인 삶을 위한 가구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건축이나 인테리어 보다 싸다. 다시 말해서 근사한 집에 살지 않아도, 최신 유행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할 돈은 없어도, 마음에 드는 책상이나의자, 침대 등은 살 수 있는 것이다.

: 당연하게 들리지만 의외로 이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구란 집을 사거나 고칠 때 함께 사는 것으로 되어있다.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부터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좋은 가구를 하나 둘 씩 사서 써 오던 사람은 나중에 새 집에 이사 갈 때도 굳이 가구를 일괄해서 장만할 필요가 없다. 오래된 가구들은 오히려 새로운 환경과 자신을 매개해주는 훌륭한 역할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2. 가구는 공장 생산품이다

: 간혹 수공예 가구가 없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1회성 현장 생산물인 건축이나 인테리어와 달리 가구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며, 현물을 보고 소비자가 고른다. 그래서 가구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동차, 가전제품과도 유사한 속성을 갖는다. 가구의 제작 정밀도는 일반적인 건축이나 인테리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다.

 

3. 가구는 만질 수 있다   

: 의외로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직접 사람의 몸이 닿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매끈하게 백색 도장을 한 벽에는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며, 엘리베이터 주변 벽에 손때가 타는 것을 막기 위해 건축가들은 일부러 넓적한 판에 단추가 박힌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간의 몸과 건축, 인테리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른다.

: 그러나 가구는 경우가 다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가구는 인간의 몸과 직접적인 접촉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책상 서랍 손잡이에는 손때가 타고, 가죽 소파에는 주인의 냄새가 벤다. 오래된 가구는 어떤 의미에서 주인의 몸의 연장, 내지는 분신과도 같다. 가구는 그만큼 개인적이다.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 보다 그 분이 사용하시던 의자가 더 진하게 가슴에 다가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4. 가구 디자이너는 숨어 있다

: 그렇다.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당신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당신과 말이 잘 통하는 기분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반대로 사사건건 의견 대립으로 인해 서로 핏대를 올리는 사이일 수도 있다. 하여간 그들은 살아있으며, 당신 앞을 걸어다닌다. 그러나 아주 유별나게 가구를 주문하는 경우를 빼 놓고는, 가구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것은 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를 갖고 있지만 자동차 디자이너를 만난 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극히 최근까지 국내 가구 디자이너들은 그냥 어느 가구 회사 소속에 소속된 익명의 존재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5. 가구는 움직일 수 있다

: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 또한 가구가 건축이나 인테리어와 다른 점이다. 가구는 어느 한 장소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동이 가능하고, 국경선도 잘 넘는다.콜로니얼 스타일의 미국 주택 거실에 우리나라 반닫이가 놓이고, 한국의 아파트에 영국에서 온 오래된 '뷔로'(뚜껑 달린 작은 책상)이 놓이는 것은 가구의 이러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가구는 'meuble'라고 하고 건물은 'immeuble'라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나타내고 있다.

 

6. 가구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 수 있다.

: 건축에서 골조는 기본적으로 철 아니면 콘크리트이다. 인테리어에서도 벽을 만든다고 하면 그 선택의 범위가 그다지 넓지 않다. 그러나 가구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갖는다. 가구에 사용되는 재료의 양은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으며, 따라서 건축이나 인테리어에서 생각할 수 없는 고가의 재료가 사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티타늄 등은 가구의 재료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 서로 다른 재료는 서로 다른 성질로 인해 특유한 구조와 형태를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가구는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비해서 훨씬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여기까지 써 놓고 잠시 우리나라의 가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유감스럽게도 그다지 다양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가구 디자인이 갖고 있는 엄청난 가능성 중에서 아주 일부만이 시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의 수준은 올라갔지만 디자이너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냥 미니멀한 라인의 비슷비슷한 무늬목 가구가 최신 유행임을 앞세워 팔리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감각적인 디자인은 있으나, 삶의 문화는 빠져 있는 것이다. 주방 가구만 해도 이제 어디가나 비슷한 스타일들만 눈에 들어오는데, 과연 우리나라의 식생할 문화가 이렇게 획일화, 통일화되어 있다는 것인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신조로 했던 퀘이커 교도들은 바퀴 달린 의자와 교묘히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가구를 사랑했다. 그리고 유목생활을 하는 몽고인들은 접이 의자를 만들어 썼다. 과연 21세기 우리 한국인의 삶은 어떤 가구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누가 어디서 만들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