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발 담구기

한강에 발 담그기 (Wetting the Feet Out in th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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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도시들이 있다. 베니스 같은 수상도시가 아니더라도, 센느강의 파리나 아르노강의 플로렌스, 암스테르담이나 브루게 같은 운하도시 들이 바로 그렇다. 이런 도시일수록 건물과 물의 거리는 극단적으로 가깝다. 물에서 바로 건물로 들어가게 해 놓은 경우도 많다. 물이 건물, 나아가 도시의 현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체의 흐름을 타고 도시로 들어서는 느낌은 여유롭고, 온화하며 또한 장쾌하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한강과 서울은 이런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처음에는 강북강변도로가, 그 이후에는 올림픽 도로가 각각 남과 북에서 도시와 강의 만남을 근본적으로 봉쇄하였다. 그 배후에 고층 아파트의 벽이 들어서면서 그 단절은 완벽한 것이 되었다. 바로 그 주변을 제외하고는 도시 어디에서도 거대한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행주대교에서 미사리까지의, 수십 킬로에 이르는 강의 양쪽 어디를 보아도, 도시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강폭이 최대 1km가 넘는 한강의 스케일로만 보면, 서울은 항구도시 같은 분위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개발하기에 따라서는 지금처럼 유람선만 한가하게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런던의 템즈강처럼 삶의 활력으로 충만한 그런 강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마포나루가 그랬던 것처럼 서울 곳곳에 선착장이 생기고, 통일이 되어 한강 하구가 열리면 서해와도 바로 연결될 수 있지 않았을까. 물과 도시가 서로 연계되어 만들어질 수 있는 이 엄청난 가능성은 그러나 이제는 상실된 꿈에 불과하다. 서울은 강북과 한강, 강남의 서로 구별되는 뚜렷한 3개의 띠로 구성된 도시가 되었다. 강북과 강남은 문화, 소득수준, 심지어 청소년의 복장에까지 차이가 있으며,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지고 있다. 한강은 그 양안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접근조차 어려운 강이 되어버렸다. 고수부지가 서울 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곳에 출입하는 과정은 또한 얼마나 졸렬한가!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다른 지방도시들이 한강을 마치 따라가야 할 본보기로 생각해 왔다는 사실이다. 진주시 한 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유서 깊은 남강변에도 어김없이 자동차 도로는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유서 깊은 강변의 대나무 숲도 상당 부분 잘려나갔다. 스케일이 작다뿐이지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의 실수가 반복된 것이다. 뒤늦게 이에 대한 반성으로 환경친화적인 개발, 자연하천 방식의 개발 등이 제안되었으나 강둑의 견고한 콘크리트는 그것을 만들어낸 경직된 사고만큼이나 완고하며,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결국 실수는 실수대로 껴안고 가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중가요 가사가 우리의 정서를 대변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하염없이 걸었고, '제3한강교' 밑을 흘러가는 강물에 우리의 꿈을 실어보냈다. 그러나 실제로 영동교는 걸어서 쉽게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며, 우리는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의 상습정체 구간에 갇혀 자동차보다 빠르게 흐르는 강물을 허탈하게 바라본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청계천을 필두로 하는 한강 지류의 대부분을 복개하고, 도시에서 물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빴다. 젊은 시절 한강을 수영해서 건넜다는 나이 드신 분들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처럼 들린다. 강물은 겨울에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얼어붙지도 않는다. 한강을 소재로 한 노래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운다. 한강은 이렇게 도시로부터 단절된 강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강을 건너며 바다가 부럽지 않은 그 장쾌한 스케일에 가슴 탁 트이는 감동을 받는다. 붐비고 복잡한 거대 도시의 한 복판에서 이것은 마치 구원처럼 우리의 숨통을 열어준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조금씩 우리의 도시를 물을 향해 접근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부분적으로 강 양쪽의 도로를 지하로 옮겨야 할지 모른다. 아니면 아예 도로 위를 도시가 덮어버리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앞으로 한강에 다리를 건설할 때면 사람도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게 하고, 또 그럴만한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겠다. 효과적인 수상교통수단의 도입을 통해 배타고 출근하는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강을 통해 강북과 강남이, 상류와 하류가,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가 강물에 발을 담글 때, 이 가능성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