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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높은 집

 

 

2.3미터. 거의 예외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그것이 아파트이건 다세대이건 단독주택이건 대부분 집의 천장은 2.3미터이거나 혹은 이 보다 낮다. 사무실은 어떤가. 역시 아주 고급건물을 제외하고는 거기서 거기이다. 일반적인 문의 높이가 2.1미터라고 볼 때 이는 문틀에서 천장까지 20센티의 거리가 거의 표준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숫자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2.3미터 높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서 천장 높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계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입주자들도 또한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2.3미터라는 숫자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숫자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고착화된 것이다. 이전에 내가 살던 주공 아파트의 경우 1980년대 초에 지어진 것이었는데 천장 높이가 2.2미터였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다른 문보다 정확히 10센티 작았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화장실 바닥은 물처리 등의 이유로 거실이나 방 보다 낮게 마련이며, 또 그 아래에 배수관 등이 설치된다. 이것은 화장실의 천장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며 건물의 층고가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문들에 비해 화장실 문이 작아지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소의 천장 높이가 2.3미터인 것이다.

 

그렇다면 천장을 2.3미터 보다 높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각 층의 천장 높이를 높이면 건축물 전체의 높이가 증가하게 된다. 이것은 그만큼 재료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일단 경제적인 부담이 늘어난다. 게다가 건물의 전체 높이는 법에 의해 제한을 받으므로 심지어 층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도 만들어진다. 이것은 용적률의 감소를 의미하며, 심각한 사업적 손실이 이로 인해 야기된다. 결국 2.3미터는 위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가장 무난한 답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천장 높이 2.3미터, 그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천장 높이 2.3미터면 보통 키의 남자가 손을 뻗으면 천장에 닿을 정도다. 그러니 사람이 오래 머무르는 공간으로서는 충분히 높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 어느 정도 공간의 여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 높이에서는 천장에 매달리는 조명을 설치하기 어렵다. 천장 속으로 매입하던지, 아니면 아주 납작한 디자인으로 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 (물론 사람들의 욕심은 때로 상식을 초월한다. 그래서 종종 아파트 거실에 샹들리에가 달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 그 주변을 조심스럽게 피해 다닐 수밖에 없다.) 요즘 유행하는 간접등을 사용한다고 해도 광원과 천장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부드럽고 은은한 분위기를 내기 어렵다. 간접등의 빛이 충분히 확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장 주변은 밝고 가운데는 어두운 결과가 만들어지곤 한다. 결국 2.3미터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치라고 할 수는 없으되, 그렇다고 충분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당히 어정쩡한 천장 높이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 집은 점차로 고급화되고 있으며 이 ‘고급화’의 개념에는 공간적 여유라는 것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지금까지의 공간적 여유라는 것은 면적에 국한된 수평적, 2차원적 개념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집의 평수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높이라는 수직적 개념까지 포함하는 그야말로 3차원적 관심으로 변해갈 것이다. 집의 규모도 단순히 ‘몇 평’에서 ‘몇 평, 그리고 층고 얼마’로 바뀔 것이다.   많은 건축가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앞으로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면적으로 하지 않고 부피로 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즉 같은 면적이라도 천장이 높은 집은 더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지어지고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경우 천장의 높이를 2.4 미터 정도로 올리고 있는 추세다. 고급 사무실의 경우 2.7미터 내외를 표준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며 그 이상으로 높은 가격을 받는다.

 

천장 높이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그리 단순한 과정은 아니다. 여기에는 상당히 많은 문화적인 변수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장의 높이가 어떠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주택들을 보면 현관의 천장이 아주 낮다. 그래서 미국인의 평균적 신체 사이즈와는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라이트 자신도 육 척이 넘는 거구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뚜렷한 디자인 의도가 있다. 라이트는 ‘공간의 조각가’라고 불릴 정도로 공간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체험을 중요시했다. 그는 현관을 거쳐 거실로 들어갈 때의 공간적 체험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현관 천장을 낮추었다. 라이트의 이러한 생각은 집안 어디에나 같은 천장고가 적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아파트와는 사고의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우리가 얼마나 경직되고 획일화된 환경에 살고 있는지 깨닫게 해 준다.

 

나라, 혹은 문화권에 따라 천장 높이에 대한 기본적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을 여행해보면 서민 주택이라도 천장의 높이가 상당한 것을 볼 수 있다. 북경의 전통적인 도시주거인 사합원의 경우, 단층건물이면서도 그 높이는 우리나라 단층 건물의 거의 1.5배에 해당한다. 중국의 현대식 공동주택들도 상당히 높은 천장을 갖고 있다. 왜 우리나라 보다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나라의 집 천장이 훨씬 높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적어도 나에게는 경제학적 대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중국 사람들은 오랜 문화적 습관에 의해 원래 집의 천장은 저 정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짐작을 할 뿐이다. (아마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아파트를 보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답답한 집에서 살 수 있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도 천장은 그리 낮지 않았다. 평범한 도시형 한옥의 경우도 천장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3미터에 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그 천장은 내부에 대들보, 서까래도 드러나고 높이의 변화도 심한, 그야말로 다채롭게 디자인된 천장이 아니었던가.   

 

근대화란 어떤 측면에서는 획일화를 의미한다. 우리의 삶 뿐 아니라 그 삶을 담는 공간들도 매우 제한적인 기준에 의해서 통일되어 왔다. 그래서 일견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매우 공허하고 무의미한 일련의 등식과 법칙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 ‘천장 높이는 2.3 미터’, ‘문 높이는 2.1미터’, ‘계단 폭은 1.2미터’와 같은 것들이다. 물론 이들 중 어떤 것은 건축법의 적용대상이기도 하지만 심지어 법조차도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며 그 적절함은 항상 의문과 탐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아주 당연하게 보이는 문제들을 뒤집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아주 재미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천장이 아주 높은 화장실에 앉아서 볼 일을 보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반대로 방 한 구석에 천장 낮은 곳이 있다면 우리는 그 아래 벽을 기대고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질 것이다. 문도 그렇다. 겨우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문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위풍당당하게 높고 커다란 문도 생각해 볼만하다. 작은 집에 아주 커다란 문을 달면 어떨까. 어울리지 않아 우습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나름의 생각과 의도가 있다면 이 또한 해 볼만 한 것이다. ‘천장 높이=2.3미터’라는 등식은 이제 잊어버리자. 가장 적당한 천장 높이는 당신의 머리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