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태수 건축의 '항성': 금호 미술관과 국민생명 연수원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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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소개된 필자의 글 '김 태수와 한국적 전통'은 지금부터 2년 반 전쯤에 쓰여진 것이다. 그 사이 시간이 흘렀고 김 태수는 자신의 작품 연보에 몇 개의 건물을 더 추가하였다. 윗 글에서 다루어진 내용과 김 태수의 최근작을 연결시켜 이야기하면 본 전시회의 주제인 '항성'이 보다 의미 있게 전달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본 전시회의 주제에 대해 좀 더 채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항성'이란 개념 자체는 일반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작가에게 적용시키는 경우 그 방식의 효용이 문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대별해서 이야기하면 작품 하나하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항성'이란 논의가 가능하고, 또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여럿 될 때 그것들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의미에서의 '항성'이 또 가능하다고 본다. 이 두 경우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일치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작품 하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는 초기의 생각을 완성에 이르기까지 유지시켜 나가면서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 여럿을 놓고 보면 도대체 어떤 방향성을 읽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반대로 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는 파행을 거듭하지만 작품을 모아놓고 보면 작가로서의 일관성이 여실히 보여지는 경우가 또 있을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거나 양쪽 다인 경우가 물론 가능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항성'을 논의하면서 전자의 '항성'은 후자의 '항성'에 비해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는 그것이 실제로 작가의 작업과정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지켜보지 않으면 잘 알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김 태수는 금호 미술관과 국민 생명 연수원의 두 작품을 한국에 완성하였다. 규모, 용도, 위치 등이 서로 상당히 다른 건물이지만 함께 소개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되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김 태수의 건축에 대한 논의가 되리라고 본다. 우선 이 두 건물의 초기 스케치를 여기 소개한다. 이 스케치들은 김 태수의 스케치북에서 발췌한, 그야말로 가장 최초의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것들로서, 건물이 완성된 이후 출판용으로 그린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이들이 실제로 지어진 건물들의 성격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렇게 초기의 아이디어를 스케치로서 정리하고 난 이후의 작업과정에서 김 태수가 보여주는 태도는 거의 집념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단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직접 대지를 보고 난 이후에 자신에게 떠오르는 발상이야말로 작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이 소중한 것이라는 신념이 그에게는 있다. 그 이후의 작업은 이 기본적인 골격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구조와 디테일로 아이디어를 강화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과정은 때때로 아슬아슬한 국면이 없지 않으나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와도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건축주의 선택욕을 충족 시켜주기 위해서 일부러 다양한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던가 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서비스 정신'이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건축주에게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건축주에게 나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의 태도가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고집, 혹은 심지어 '일을 쉽게 하려 한다'는 등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사족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그의 '항성'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간단한 소개로서 충분하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연속된 일련의 작품들간의 '항성'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사실 이 문제가 건축적으로 더 중요한 논의일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가 작가에게 있어서 일종의 작업태도, 혹은 심지어 습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반해, 후자는 그야 말로 작가의 건축관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것이며 또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방향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이를 통하여 시대, 사회 및 역사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앞의 글 '김 태수와 한국적 전통'에서 썼던 것처럼 김 태수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이 한국인임을 창작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아 왔다. 그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으나 어떻게 보면 일부러 그것을 피해왔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건축언어로서 정면으로 승부를 걸고 싶어서였다고 이해하기로 하자. 그러면서도 그를 낳아주고 청년이 될 때까지 키워준 한국에 대한 기억이 작품의 여기저기에 보이곤 했다는 것 또한 먼저 글에서 썼던 바가 있다. 이러한 그에게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있다면, 작업의 과정에서 한국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매우 편안해졌다는 점이다. 일종의 화해랄까, 이제 더 이상 어떤 의미에서의 강박관념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작년에 환갑을 맞았는데 한국사람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된 미국 사무실의 직원들이 조촐하나마 환갑잔치를 예고 없이 열어준 바가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최근에 지어진 금호 미술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설계 초기부터 이 건물이 경복궁 돌담을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래된 돌담과의 대화'(a dialogue with an old wall)라는 표현을 누군가가 사무실에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건물의 입면은 그 재료, 마감, 수직적 구성에 이르기까지 경복궁 돌담과 묶어서 생각하면 재미가 있다. 정다듬한 황등석의 벽면 위에 파라펫의 두께가 거의 보이지 않는 커튼 월로 된 4층이 올라가 있는데 그 멀리언을 모두 납동판으로 감쌈으로서 재료적인 효과에 있어서 경복궁 돌담의 기와 지붕을 연상케하고 있다. 흙으로 된 검은 기와와 금속의 납동판의 재질감이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벽면의 경우는 옛 돌담처럼 조적으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고 건식으로 갖다 붙인 것이기 때문에, 줄눈을 약화하고 거기에 인장력을 느끼게 하는 띠를 둘렀다. 이렇게 하여 돌벽의 중량감을 제거한 것이  어디까지나 현대 건축의 구법을 구사하는 그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상쾌하다. 어느 모로 보나 현대식 건물이고, '상자의 건축가'로 알려져 온 김 태수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상자 같은 건물이지만, 직설적이지 않으면서 분명히 고건축과의 친화력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이 건물의 입면에 있어서 김 태수 건축의 '항성'과 한국 고전 건축의 전통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생명 연수원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김 태수가 직선으로 된 상자의 세계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얼마전 이 건물의 설계 개념에 대한 설명을 청 받고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 땅의 외곽을 돌면서 주위 산들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하였고 서쪽과 북쪽에 있는 산이 대지를 병풍과 같이 품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남쪽에 있는 호수의 둑에 와서 대지를 올려다보니 호수, 경사진 대지, 그 뒤의 산들로부터 건물의 아이디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때 둑 위에서 간단한 스케치를 한 기억이 난다. 경사진 땅을 여러 개의 단으로 정리한다. 그 위에 높이가 다른 여러 개의 담을 동서로 놓는다. 담 위에 뒤의 산세와 조화가 되는 활력 있는 곡선의 지붕을 올려놓는다. 이러한 것이 건축의 기본 아이디어로 떠올랐다......"

이 말은 그대로 놓고 보면 거의 낭만적이기 조차하다. '상자가 지닌 공간적 효용 뿐 아니라 그 개념의 경제를 좋아한다'했던 김 태수가 자기의 건축적 아이디어를 이렇게 편안한 어휘로서 설명한 것을 이전에 들은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김 태수는 건축 언어의 엄정한 구사라는 것 이외에 주위 환경과의 친화라는 것을 또 다른 건축적 과제로 삼아왔다. 그래서 그는 천안의 교육보험 연수원에서 보듯이 건축적 판단이 허락하면 산의 지형을 좇아서 건물 전체를 곡선으로 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국립현대 미술관에서는 절토를 최소한으로 하여 건물이 산세를 가뿐히 타고 앉아 있는 것같이 보이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국민생명 연수원은 진입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위계감, 공간적 연계, 수평적 구성 등에서 현대 미술관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건물이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면 이 건물에서 그의 상자가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대 미술관이 산세를 강하게 의식하면서도 그 당시 어떤 비평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끝까지 상자의 논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플라토닉 솔리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는데 반해, 국민생명의 상자는 구부러지고, 열리고, 옆이 터지고, 뼈가 드러나고, 등이 갈라지고, 서로 밀려나는 등 이전의 김 태수의 건물에서 찾기 힘들었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작의 하나인 미국 그로튼 시의 노인 회관에서 일부 곡면 벽을 써 보았다가 '후회한다'는 표현을 했던 김 태수가 이제 상자 밖의 세계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적 거리가 별로 없는 현 시점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필자가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더더구나 그렇다. 그러나 작가의 '항성'이란 것이 절대 변화하지 않는다는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방향이 있는 여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면 김 태수가 보여주고 있는 변화는 일단 그의 앞으로의 행보를 짐작케 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단 우리는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 그를 강제할 수도 없고, 우리의 짐작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그를 비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비평의 폭력일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고유한 몫이기 때문이다. 한국적 전통에 대한 포용이나 상자의 해체가 지속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개개 상황의 특수성에서 온 일시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으려면 우리는 시간을 좀 더 필요로 할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김 태수가 보여왔던 일관성 있는 태도로 미루어 보아 그가 파도를 따라 그때그때 파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항로를 변경하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따라서 '항성'이라는 주제가 김 태수에게 짐이 될 필요는 전혀 없으며, 앞으로도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판단과 식견을 나침판 삼아 건축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