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건축, 외부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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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탈장르와 퓨전, 크로스오버의 시대다.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든 변호사, 요식업을 하는 클래식 음악가, 만화비평서를 낸 건축가, 경영 컨설턴트가 된 인류학자 등등. 재미있는 것은 당사자들이 이것을 별로 일탈적인 행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서로 다른 직업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에서 발생되는 시너지나 새로운 가능성 등에 대해 더 흥미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단순한 부업이나 취미를 넘어 이제 점점 생존방식의 문제가 되고 있다. 유사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영역으로 되어 있던 것들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다.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이 그러하고, 건축과 인테리어 또한 그런 예의 하나이다.    

 

나는 건축가다. 학교에서 건축을 배웠고, 나라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 단독주택에서 고층빌딩까지, 내가 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건물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내 자격증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인테리어 설계를 하는 경우인데,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테리어 설계는 적어도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누구나 해도 된다. 그래서 몇 천평 짜리 설계를 하면서도 도장 한번 찍지 않은 기억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은 건축가들도 인테리어 설계를 많이 한다. 반대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건축사 도장을 빌려서’ (원칙적으로는 도장을 빌려준 건축사가 불법행위를 하는 것임) 건축설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도 엄격한 의미에서 탈장르일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하여간 이렇게 서로 넘나 들다보면 종종 재미있는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말도 많아졌다. ‘건축가가 한 인테리어는 무미건조하다’에서 시작하여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설계한 건물은 구축술이나 스케일에 대한 감각이 없다’ 등 주로 자기 영역을 침범한 상대방을 싸잡아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좀 웃기는 이야기다. 궁극적으로는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름지기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최근에 내가 본 잘된 인테리어의 상당수가 건축가의 작품이었고, 흥미롭게 생각했던 건물들의 몇몇은 알고 보니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한 것이었다. 

 

물론 두 분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많다. 건축이 시대정신의 총화로서 누대에 걸쳐 문명의 위대함을 증거하는 기념비로 남겨지는 그런 시대는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아니다. 오히려 건축은 점점 소비재의 성격을 띠어 가고 있다. 심지어 내구연한을 정하고 설계되는 건축물도 있다. 사람들은 말버릇처럼 ‘수백년 가도 무너지지 않을 건물’을 이야기하지만, 10년 후면 기능상 쓸모 없어질 건물을 철옹성처럼 짓자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는가? 건축이 처해있는 이러한 시대상황은 종종 많은 건축가들을 자괴감으로 몰고 간다. 반면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이런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소유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서 인테리어가 갖는 속성이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만들어 놓은 것이 10년, 20년 갈 걱정도 필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설계자의 예술가적 고집 보다 유행이 결과물의 성격을 좌우한다. 자본주의의 파도를 타고 넘는 이 집단적 서핑에서 종종 건축가들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더 경쾌하고 화려한 몸놀림을 보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리하여 ‘실내건축’과 ‘외부인테리어’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되었다. 건축가들은 이제 더 이상 외관만 적당히 해 놓고 도망가는 존재가 아니다. 시방서만 대충 작성하면 현장소장이 자재를 골라오던 시대는 지났다. 오늘날의 건축가들은 종종 논현동과 을지로 일대를 뒤진다. 조명에서 문손잡이, 심지어 도어스톱까지 직접 보고 고른다. 차라리 직접 시공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이것은 골치 아픈 과정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건축주와 건축가들이 별도의 인테리어 용역 없이 질 높은 건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큰 교훈이다. 아울러 놀랍도록 성장한 인테리어 산업의 덕택에 고를 것이 많아진 것은 또 다른 축복이 아닐 수없다.

 

반면에 이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도 도시환경, 그리고 그것이 갖는 공공성이라는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건물이야 어찌되었던 내가 한 부분만 돋보이면 된다는 생각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건물의 내외부 영역을 다 고려하여 설계된 인테리어가 도시 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인테리어도 이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도시환경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자각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두 분야 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존재한다. 건축가의 교육과 자격에 대한 기준이 국제적으로 통일되면서, 지금 한국의 건축계는 교육에서 실무에 이르는 심각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건축가의 업무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넓어지는 동시에, 더 많은 법률적 구속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작은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겪은 일이다. 그 주에서는 내력이건 비내력이건 벽을 털거나 배관을 바꾸면 무조건 건축가의 도장을 첨부하여 건축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곳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그야말로 마감재나 조명, 가구 정도를 다루는 것이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잡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인테리어 잡지에 실리는 외국의 예들, 특히 개보수 프로젝트의 설계자가 종종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닌 건축가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웬만한 건물의 개보수까지 척척 해내는 한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앞으로는 심지어 건축가들도 자격증이 없으면 스스로를 건축가라 칭할 수도 없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물론 중요한 문제는 다른데 있다. 앞으로도 두 분야는 엄연히 분리되어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고유한 영역에서 그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지금 성장하는 추세로 보면, 오히려 건축보다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먼저 나올지도 모른다. 분야간의 통합이 이루어지거나 할 가능성도 없고, 또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어디선가 서로 만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분야든지 자기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은 또한 고착화의 위험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타개하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분야간의 교류다. 우리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릴리 라이히의 오랜 시간에 걸친 성공적인 협력관계를 알고 있다. 나아가 윈톤 마살리스와 키스 자렛이 음악에서 그러하듯이, 건축과 인테리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는 사람들도 더 늘어날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는 건축가와 밖을 내다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 너무도 당연한 명제가 보편화되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