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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인테리어와 조명

 

‘사물의 색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물을 비추는 빛에 의해 변한다.’ 이것은 색채 이론의 기본이면서 우리 대부분이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다. 나트륨 등이 달려있는 터널 안을 지날 때면 건강한 사람의 얼굴도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하며, 음식을 디스플레이 할 때 형광등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연인과의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촛불이 밝혀진 레스토랑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빛이 연출하는 색채의 효과에 대해서 우리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빛의 위치와 방향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즉 조명 효과는 광원이 무엇이냐에 못지않게 광원이 어디 있으며 어디를 비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종종 간과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일을 할 때 필요한 조명은 위에서 아래로 오는 것이 좋다. 이것은 사람이 보통 일하는 낮 시간에 태양이 하늘에 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런 조명은 보통 천장에 달리며 아래를 비춘다. 흔히 말하는 직부등이라고 하는 것이 다 이런 방식에 속한다. 이 경우 천장 자체는 빛을 별로 받지 않으며 대부분의 빛은 아래를 비춘다.

 

그러나 일이 아닌 휴식을 위한 조명은 광원의 위치가 낮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바닥으로부터 빛이 은은하게 올라오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아래에서 위로 조명을 비춘다. 이렇게 되면 천장이 조명을 받아 밝아지는데, 직접광이 아닌 반사광이기 때문에 눈부심이 없이 실내를 포근하게 빛으로 감쌀 수 있다. 간단하게 집에서 스탠드를 갖고 실험을 해 보면, 조명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얼마나 실내 분위기가 변하는지 알 수 있다.

 

간단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아쉽게도 많은 경우 우리나라의 조명 디자인 현실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고가의 조명기구를 동원해도 뭔가 편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을 때, 이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실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1. 형광등은 최고의 광원이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다 보면 마치 건물 전체가 푸르스름한 어항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나하나 보면 꽤 공들여 인테리어를 한 집들도 많은데, 전반적으로는 아주 싸늘한 느낌을 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쉬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적절하다. 이런 경우 일차적으로는 형광등이 그 주범이다. 형광등은 절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광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빛은 사물을 차갑게 보이게 한다. 사무실의 조명으로는 적절하지만, 가정에서는 적어도 직접광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행히 요즘은 백열등과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 전력소모가 적은 등기구가 많이 보급되고 있기는 하다. 


2. 빛은 무조건 위에서 온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의 일반적 환경에서는 직부등 이외의 다른 조명 방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밤에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거실에서도 얼굴의 그림자가 아래로 드리워지며, 밝고 편안한 분위기의 연출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직부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을까? 이것은 형광등과 마찬가지로 직부등이 적은 전력으로도 쉽게 조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요즘, 이것은 결코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실내의 인공 태양이라고나 할 직부등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눈부심이 심하다. 그래서 조도는 높아지지만 눈의 피로가 심해진다. 휴식을 위한 조명환경으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나아가 시력 저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유난히 어린이 안경잡이가 많은 이유는 이렇게 좋지 않는 조명환경의 탓이 크다.


조명의 역사를 보면 직부등은 최근에야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가 보급되기 이전 대부분의 조명기구는 가스나 양초, 심지어 장작불처럼 직접 불을 태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전의 조명 방식은 대부분 펜단트이거나 벽부, 혹은 스탠드형이었지 직부는 아니었다. 천장에 붙어서 아래를 비추는 조명은 전기적인 조명이 가능한 이후에야 출현한 것인데, 이것이 마치 유일한 조명방식처럼 된 것은 심각히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요즘 대형상업시설의 경우 무조건 조도를 높이고 보자는 생각으로 입구 주변에 엄청난 양의 빛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쏘는데, 이것은 결코 고객에게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눈부심으로 인해 주변지역의 교통안전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3. 조도 확보는 전반조명만으로?

천장에 형광등을 직부로 설치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원하는 조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거실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직부등을 더 설치하면 물론 문제는 해결되지만, 더 효과적인 방법은 국부조명을 사용하는 것이다. 플로어 스탠드 같은 것이 좋은 예인데, 이렇게 전반조명으로 어느 정도의 조도를 확보하고 거기에 국부조명을 더하는 것이 사실상 조명설계의 기본이다. 오로지 천장의 조명만으로 집안을 환하게 하겠다고 하는 노력은 오히려 전력의 낭비이며 바람직한 조명환경과도 거리가 멀다. 문제는 가정이건 사무실이건 국부조명의 중요성이 별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각종 편의점들처럼 천장을 완전히 형광등으로 도배를 하는 무지막지한 조명방식까지 나오게 되었다.

 

우리가 옛날부터 이렇게 격조 없는 조명환경에서 살아온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조명의 문화가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에 있어서의 조명방식은 그 자체로는 퍽이나 소박했다. 가늘게 떨리는 호롱불이 사실상 사용 가능한 광원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건축과 결합될 때, 그 효과는 자못 극적인 데가 있었다. 우선 광원이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천장의 서까래며 대들보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빛을 받는다. 그래서 집은 오히려 밝은 대낮 보다 훨씬 더 가벼워 보인다. 게다가 창에는 종이가 발라져 있었다. 한지는 그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으로 빛을 걸러내며 또 확산시킨다. 그래서 온 집안이 작은 호롱불 하나로 화사하게 피어오른다. 한옥은 집 자체가 커다란 조명기구였던 셈이다. 호롱불빛이 흔들리면 집도 덩달아 가볍게 춤을 췄다. 집은 오히려 밤이 되면서 살아나기 시작한다. 작은 불빛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 놓는 것이다.     

 

이전의 어떤 건축주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든 디자인 중에 조명 디자인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그 건축주는 본능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조명 디자인은 다른 디자인과 별도로 독립해서 존재하기 어려우며, 매우 다양한 요소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자재상에 가서 한번이라도 수입조명기구의 가격을 물어보고 나면 ‘조명 디자인은 비싸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좋은 조명 디자인은 결코 비싼 조명기구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치 좋은 디자인이 꼭 비싼 재료의 사용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좋은 디자이너는 심지어 ‘알다마’에 ‘알형광등’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좋은 조명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문제는 조명 기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조명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