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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12 33호 통권162) 아름다움의 해부
  

치명적 아름다움이란 주제를 다룬 영화는 많다. 그대로 영역하면 ‘Fatal Attraction' 정도일 것인데 이미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기도 하다. 아름다움이란 종종 그 안에 가시를 품고 있어서 겉으로는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알고 보면 매우 위험하기조차 하다는 생각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예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면장면이 아찔하도록 아름다우면서도 결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림이나 사진에서도 예쁜 그림, 예쁜 사진은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은 종종 표피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아름다움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미학을 이해할 수 없다.
<색계>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色, Lust)과 그에 수반되는 위험(戒, Caution)에 대해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여기에는 남녀의 애정, 정치적 상황, 그리고 도시적 특성들이 마치 올림픽 깃발의 원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중년남성과 그를 유혹하는 꽃처럼 젊은 여인이 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우선 불륜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슬픔에 잠긴 듯한 눈빛과 마른 것 같지만 단단한 체격, 그리고 우아하게 잘 맞는 양복을 입고 다니는 남자는 그러나 조국을 배신하고 일제에 협력하는 친일파다. 그가 누리고 있는 권력이라는 것이 마치 허깨비 같아서 그는 그가 배신한 조국을 위해 싸우는 동포를 배신하는 것으로 그 권력을 획득한다. 도시는 또한 어떤가. 상하이와 홍콩 등을 오가며 전개되는 당시 도시의 모습은 그야말로 극과 극을 달린다. 여기에는 더럽고 지저분한 뒷골목과 화려한 상점들이 가득하고 잘 차려입는 사람들이 오가는 서양식 거리가 공존한다. 동양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서양식 도시의 모습은 적어도 겉으로는 달콤하기 그지없다.
식민도시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남자주인공 양조위가 이전에 출연했던 <화양연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양조위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고, 조금 더 우아해졌으며, 더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화양연화>가 아름다움에 대한 탐미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면 <색계>는 탐미 자체를 구조적으로 해부하는 냉정함을 드러낸다. 애인이었던, 그러나 동시에 자객이었던 여인을 사형대로 보내기 위해 서류에 서명을 하는 순간, 남자는 약간의 동요를 보이지만 그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는 배신의 세계, 그 한복판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그의 부하는 또 어떤가. 자기의 상사에게 접근하는 여인의 배후에 대해 이미 알았으면서도 이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유는? ‘상사가 이미 포섭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한 마디로 그들은 고수 중의 고수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세상에는 옳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은 것들이 그렇게 완고하게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들은 냉정하다.
순수하지만 그만큼 어리숙하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유치한 존재는 바로 여자와 그 주변의 민족주의적 학생 조직이다. 이들은 테러를 통한 조국의 해방이라는 거창한 대의에 스스로 투신했지만 정작 총도 잘 쏠 줄 모르고 사람을 죽이는 문제에 근본적으로 서툴다. 그들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살인은 어찌나 볼품없고 지저분하게 진행되는지 다른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색’은 있지만 이를 얻기 위한 필수적으로 필요한 냉정함, 즉 ‘계’는 부족하다. 그런 그들이 ‘색’에 빠지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계’를 놓지 않는 상대와 싸웠을 때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들은 초라하고 분열된 모습으로 차가운 채석장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들을 배신한 주인공 여자의 운명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비난의 시선을 교환하면서 함께 저 세상으로 간다.
그들은 아름다운가. 심지어 옳은가. 이 영화를 보고나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색’을 누르는 ‘계’의 차가움과 ‘계’를 증발시키는 ‘색’의 뜨거움이 서로 교차하면서 이 영화는 미학이 얼마나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포르노적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결코 포르노는 아닌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남자가 여자를 해부하듯이 지긋이 바라보면서 마치 자위하듯 섹스하는 그런 포르노를 본 적이 있는가.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듯한 강렬하게 타오르는 ‘색’과 이를 묵직하게 잡고 놓지 않는 ‘계’가 공존하면서 마치 섹스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듯하다. 영화의 주제는 영화 그 자체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2008-12-02 23: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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