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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801 35호 통권163) 영화 사랑은 영화인 사랑, 건축 사랑은 건축인 사랑
  

나는 이번 12월 초를 몇 명의 다른 건축가들과 함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독일건축박물관(Deutsches Architektur Museum)에서 보냈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라는 제목의 한국 현대건축 전시회를 설치하러 간 참이었다. 일주일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우리는 100쪽이 넘는 전시 패널에서 시작하여 각종 모형, 가로 22미터 세로 3미터의 초대형 영상, 그리고 전시회의 각종 정보를 담은 텍스트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 양의 전시물들을 사전 계획에 따라 설치해 나갔다.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체험이었다.
일반적으로 건축가들은 직접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다. 도면을 들고 현장에 나가는 경우는 많지만 직접 공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비록 건축물은 아니지만 정교한 작업을 요하는 전시물의 설치를 직접 하는 것에는 설계를 하고 도면을 그리는 것으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순수한 노동의 기쁨 같은 것이 있었다. 남을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므로 절대 변병은 있을 수 없다. 내가 못하면 못한 것이다. 다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 쾌감은 아주 컸다. 우리는 천장에 달린 4개의 빔프로젝터의 연결 케이블을 어떻게든 관람객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했다. 이런 일을 남에게 하라고 시키기는 어렵지만, 직접 하는 것은 오히려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일을 직접 하는 화가와 조각가의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한참 일에 몰두하던 우리에게 그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재미있는 제안을 해 왔다. 자기들의 자료 보관소, 즉 아카이브(Archive)를 가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별로 싫지 않은 제안이어서 우리는 옷을 주어입고는 쌀쌀하고 눅눅한 겨울의 독일 거리로 나섰다. 아카이브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평범한 장소였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가 문자 그대로 건축의 보물창고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방의 선반 속에 가득 찬 저 수 많은 모형들! 그 중 상당수는 이런저런 건축책에서 익히 봐 오던 것들이었다. 우리가 모형을 보며 놀라고 있는 동안 큐레이터는 서랍들을 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건축가들이 직접 그린 드로잉, 심지어 그들이 평소 갖고 다니던 스케치북까지 보관되어 있었다. 알도 로시, 고트프리트 뵘, 에리히 멘델존, 피터 쿡...... 다른 분야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건축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 사람들의 작품이 이곳에 귀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이 때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이 아카이브야 말로 건축에 대한 서구 사회의 유서 깊은 사랑을 증거 하는 곳이다. 그 사랑의 실체는 공허한 수사학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 아카이브가 자리 잡고 있는 장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이 바로 그 사랑의 참모습이요 본질이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건축가들이었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어떤 건축가의 삶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지고, 알면 더 사랑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으로 영화인들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나 필르모그래피를 모르면서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건물에 대해서는 흥미가 있지만 건축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일 뿐이다. 독일 건축 박물관의 아카이브는 건축에 대한 사랑이 결국 건축가에 대한 사랑임을 보여주는 웅변과도 같은 예다. 그것은 나아가 결국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한 표현이며 인간성(humanity)이란 주제에 대한 긍정적 호기심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이 서 있다. 그 평범한 진리는 그러나 왜 이리 실천하기 어려운 것일까.
2008-12-02 23: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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