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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신발끈 여행사 화보집(0803) 우리는 왜 유럽에 가고 싶어할까?
  

(홍대 앞 신발끈 여행사 사옥을 고친 인연으로 화보집에 글을 썼다. 원고료는 아마도 푸짐한 술판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인들이 전 세계 어디든지 다 가는 시대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오지를 찾아 갔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만났다는 식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미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 방학 때 어학연수로 파리를 갔는데 에펠탑 앞에서 누가 교련복(!)을 입고 걸어 가길래 가까이 가서 보니 학교 친구였다는, 좀 믿기 어려운 소문이 돌기도 했다. 우리나라 해외여행 자유화의 물결은 그만큼 연륜이 쌓였고 다양성이 증대되었다. 일본과 중국은 그야말로 옆집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무박삼일과 같은 전투적인 여행상품도 등장했다. 가깝게는 동남아에서 멀리는 남미와 아프리카, 심지어 극지에 이르기까지 좁은 한반도에 몰려 살던 사람들이 구석구석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제 점점 여행이 아닌 탐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고, 그 탐험조차 이전보다 훨씬 쉽고 편하게 마치 여행하듯이 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해외여행, 그것도 배낭여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럽을 생각한다. 특히 내 주변의 건축 관련 전공자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유럽 배낭여행은 이제 별로 특이한 이력 축에도 못 들어간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 갔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유럽에는 우리에게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다섯 가지만 골라보자.

1. 유럽에는 역사가 있다.
오해는 마시라. 인간이 살아온 기록으로서의 역사 그 자체는 우리라고 결코 유럽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역사의 흔적, 나아가 역사적 분위기, 그리고 그 역사가 현재의 삶과 맺고 있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유럽만한 곳이 없다. 여러 문명이 명멸하면서 수많은 전쟁과 파괴가 반복되었던 곳이면서도 각 시대의 흔적과 자취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되고 또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곳이 유럽이다. 따지고 보면 유럽의 대도시들은 거의 예외 없이 2차 대전의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난 존재들이다. 그나마 보존이나 복원 보다는 현대화의 길을 택했고, 그래서 유럽에서 가장 미국적인 도시라고 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조차도 우리 기준으로 보면 고색창연한 도시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난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 장소였던 프라하는 길거리의 간판을 좀 정리하는 것으로 즉시 18세기 분위기로 돌아갔다던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촬영 장소를 찾기에도 어려움을 겪는 우리 도시들로서는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유럽에는 다양성이 있다.
유럽 각국 사이에는 국경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여행객에게는 이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나라에 간다는 느낌이 다소 떨어지기도 한다. 유로화로 화폐가 통일된 이후에는 환전의 즐거움(?)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나라들이 별로 크지 않아 다닥다닥 붙어 있고, 또 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체감되는 다양성은 가히 으뜸이다. 동아시아의 다양성도 이에 못지않지만 공간적인 밀도는 훨씬 떨어진다. 한중일이 가깝다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는 바다가 있고 동남아까지는 비행기로도 4시간이 넘게 걸린다. 구소련 지역을 제외한 유럽 전체의 면적은 중국보다도 작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쉽게 접하기 좋다는 점에서 유럽의 매력은 따라올 곳이 별로 없다.

3. 유럽에는 친숙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려서부터 유럽문명의 엄청난 영향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어린이들의 책장에 꽂혀 있는 위인전의 인물들을 보라. 그중 상당수가 유럽인들이다. 미국과 더불어 유럽은 우리에게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지역이다. 남미나 아프리카, 중동, 심지어 같은 아시아권의 문화와 역사, 인물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러나 유럽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유럽에 가면 우리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장소와 쉽게 연결할 수 있다. 바하가 살던 집, 마르크스가 공부하던 도서관, 아니면 소설이나 오페라의 이런저런 장면들. 전공이 무엇이던, 관심사가 무엇이던 유럽에 가면 꼭 자기의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유럽은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다.

4. 유럽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다.
유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맛본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왔고 그것은 오늘날 유럽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맞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을 통해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현재가 그들의 미래인 경우도 있다.

5. 유럽에는 삶의 질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부럽다. 경제력은 일본이나 미국이 유럽 이상일 것이고 전체적으로는 중국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누리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질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유럽만큼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지역은 없다. 길모퉁이 초콜릿 가게를 꾸며 놓은 솜씨가 유명 미술관의 일급 전시 디자인에 비해 결코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 유럽이다. 문화적 깊이와 내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유럽을 따라올 지역은 아직 없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이 ‘구대륙’에 경의를 표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2008-12-02 23: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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