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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804 통권651) 노동자들이 명품주택에 사는 까닭은?
  

베를린 동남쪽의 브리츠(Britz) 지역은 서울로 치면 과천 정도 되는 곳이다. 베를린 중심지역에서 지하철로 약 20분 거리인 이곳은 수많은 나무들과 널찍한 도로, 그리고 다양한 저층 건물들이 자리 잡은 쾌적한 전원형 주거지역이다. 베를린 자체가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전혀 과밀 도시가 아니지만, 이 지역의 밀도는 그것보다 더 떨어진다. 한 마디로 채워진 부분보다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은 곳이다. 도시로의 출퇴근이 전혀 불편하지 않으면서 높은 환경의 질을 유지하고 있는 곳. 그러나 이곳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주거들은 작은 규모다. 한 마디로 노동자들의 거주지역이라는 뜻이다.
지난 4월 중순 나는 동료 건축가 조남호와 베를린을 방문했다. 우리는 올 6월 한국현대건축전을 베를린에서 개최하기 위해 독일건축가센터(DAZ)와 협의하러 온 참이었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이 전시회는 원래 2007년 말 프랑크푸르크에서 열렸었는데 다행히 그 평가가 좋아 베를린의 초대를 받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전시가 이루어질 공간을 살펴보고 전시에 필요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그쪽 사람들과 협의했다. 다 같은 건축가들인지라 그들은 우리가 출장을 마치고 나면 어떤 곳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지 물어왔다. 우리의 대답은 그들에게도 조금 예외였던 듯싶다. 우리는 브리츠에 있는 ‘말발굽’ 공동주거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가 1925년에 설계한, 당시로서 매우 획기적인 노동자 공동주거였다. 마침 우리 전시회 기간 중 심포지움이 열릴 강당의 이름이 브루노 타우트 홀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선택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우리는 가는 길에는 택시를,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마침 날씨도 갑자기 좋아져 우중충한 베를린을 벗어나 소풍가는 기분이 났다. 나무 줄기가 굵고 키가 큰 것으로 보아 어제오늘에 조성된 지역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건물들이 너무 깨끗했다. 물론 독일은 세계에서도 가장 건물을 잘 짓고 또 잘 유지하는 나라이기는 하다. 말발굽 단지는 문자 그대로 단지의 배치가 말발굽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독일어로는 ‘Hufeisensiedlung'이라 한다. 우리가 지도를 들고 찾아간 길은 이 단지의 남쪽 측면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작은 규모의 콜로세움에 들어서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단지 측면에는 여러 개의 공동 출입구들이 뚫려 있었다. 이 출입구들은 단지 중앙의 거대한 타원형 녹지로 연결되는데 그 가운데에는 연못이 있어 주변의 물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녹지 주변을 건물이 감싸고 있는 모양이어서 어느 집에서 보더라도 녹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있었다. 건물과 녹지 사이에는 낮은 생울타리로 구획된 작은 녹지들이 있어서 여기에 어린이 놀이터 등이 조성되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각 주호의 출입은 단지 안쪽이 아닌 외곽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1층의 주호조차도 중앙의 녹지로 직접 연결되는 출입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이 중앙 녹지는 철저하게 공용의 공간이며, 또한 산책과 명상을 위한 장소로서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가는 동선으로 활용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말발굽의 뭉툭한 면에는 식료품 상점, 미장원 등이 있었다. 여기에 서서 바라보면 한 눈에 연못과 경사진 녹지,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단지를 감싸는 건물을 바라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건물 여기저기가 아주 선명한 청색으로 도색되어 있는데 개인별 주호에서 이를 자기 마음대로 변경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축가이면서 화가이기도 했던 브루노 타우트가 직접 색채 계획을 한 것이라고 한다. 수 십년 전 설계자의 생각을 단지의 성격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규약으로 오랜 세월 동안 성실하게 지켜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공공성을 위해 개인은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 말발굽형 단지이므로 당연히 향이 좋지 않은 주거가 나오게 마련이다. 말발굽 전체가 대체적으로는 동향을 향하고 있으니 그 중에는 심지어 북향집도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각 개별 주호가 우리처럼 모두 남향을 고집하는 경우 이런 근사한 배치는 아예 꿈도 꿀 수 없다.
중앙의 녹지를 거닐다 보니 작은 돌 하나가 땅에 박혀 있다. 건축가인 브루노 타우트를 기리는 작은 기념물이었다. 그렇다, 기껏해야 주호 하나의 면적이 100제곱미터도 안되는 이 단지의 거주자들이 개별적으로 이 당대의 건축가에게 자기가 살 집을 의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회적 제도에 의해 지금 이들 모두는 쾌적할 뿐 아니라 심지어 유명하기조차 한 ‘명품’ 주거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공 프로젝트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몇 년 전 바로 이 씨네21 지면을 통해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민간 부분 뿐 아니라 공공 부분에 좋은 건축가들이 많이 진출해야 할 필요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해마다 수많은 건물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지지만, 이들이 나름대로의 철학과 소신을 갖는 진지한 건축가에 의해서 설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공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익명 속에 감춰져 있었고 따라서 그 질이 높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베를린의 이 ‘말발굽’ 공동주거는 바로 우리 사회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참신한 대안이다. 건축가를 사회가 향유하게 하라!
2008-12-02 23: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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