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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805 통권655) 빛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는가
  

스피드 레이서를 봤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영화를 봤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 글쎄...... ‘한 시간 반 정도 즐거우려고’ 이외에 어떤 다른 대답이 필요할까? 사족이지만 그 기대는 상당 부분 충족되기도 하였다. 잘 만든 오락영화가 주는 가벼운 만족감도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진지한 주제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로얄튼이라는 레이싱계의 재벌에 대항하여 우리의 주인공 스피드 레이서와 그 주변 인물들이 결연하게 맞서는 구도로 진행된다. (물론 같은 편끼리도 서로 속고 속이면서.)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이 영화의 입장은 마징가제트나 황금박쥐에서의 선악구도 수준을 결코 넘지 않는다. 이 대결 상황은 줄거리를 이끌어가기 위한 표면적 장치에 불과하다. 결국 스피드 레이서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오락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영화 만들기, 나아가 요즘의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한 관찰의 창구로 삼는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아톰 만화 자체는 오락물이지만 이를 통해 히로시마, 나가사키 이후의 핵(원자, 즉 아톰)이란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디지털의 위력이다. 이제 사물의 실제적인 물성 보다는 이미지가 더 강력한 표현의 수단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특수효과가 동원된 실사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실사가 곁들여진 만화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카메라적 시선은 불필요해졌다.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중첩되며 화면 위를 도약한다. 그 결과 출연하는 배우들 못지않게 자동차의 연기력이 더 중요한 영화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완전 디지털 영화의 본격적인 도래라는 현상(이미 시작된)과 맞물려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스캔들도 없고, 노조도 없고, 4대 보험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이렇게 스크린에서 인간과 그 흔적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것 또한 발전이라면 발전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전 세계 도시와 건축의 파편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충 기억이 나는 것만 해도 코르도바의 모스크, 베를린의 브란덴부르그 문,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박물관 등이다. 하지만 그 건물들이 각각의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비쥬얼’이 좋은 이미지, 오락 게임의 배경일 뿐이다. 이런 탈-컨텍스트적인 뒤섞임은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비(정지훈)는 여기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모습이 혼재된 인물로 등장한다. 그가 선악구도에서 어디에 속하는지도 갈수록 알기 어렵다. 이것마저 감독의 칸셉이라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뭔가 고삐 풀린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무조건 섞어 놓은 것을 보고 열린 개념, 다양성이라고 해줄 수는 없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 영화에 겹치는 우리 도시의 풍경이다. 묘하게도 스피드 레이서의 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과 닮아있다. 아니, 우리의 도시들이 자꾸 그런 배경을 닮아가려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역시 물성이 아닌 이미지, 특히 빛에 의존하는 정도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전에는 라스베가스나 도시의 유흥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형광색의 현란한 조명은 이제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전면에 나서고 있다. 대형 전광판 사이로 우주선 같은 교통수단이 떠다니던 블레이드 러너의 장면들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한남대교를 건너면서 강남대로를 바라보면 수많은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전광판 밀도가 세계 제일이라나. 그나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업시설에 국한되어 있던 이 빛과 색의 이미지들은 이제 공공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쳤던 시청 앞 광장에서는 대규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울긋불긋한 조명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그 장면은 방금 전에 보고나온 스피드 레이서의 피날레 장면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겨울이면 그 시청 앞 광장은 루체비스타, 혹은 루미나리에라는 이국적인 빛으로 또 가득 찬다. 광화문 근처에 이르자 설치작가 강익중의 광화문 공사장 가림막 역시 다양한 색상을 뽐내며 도시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공공적 화려함과 전혀 성격을 달리 하는 또 다른 아날로그적 빛이 촛불집회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제 우리는 빛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는가.
몇 년 전 열렸던 도시경관조명에 대한 심포지움에서 일본의 한 조명 디자이너는 서울을 가리켜 ‘번쩍번쩍 총천연색’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제 광해(光害), 심지어 색해(色害)를 거론할 상황이 되었다. 어린시절 길거리에서 파는 팥빙수나 아이스케키 등 불량식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야한 색들이 도시의 한복판을 점령한 모습을 보는 느낌은 자못 당황스럽다. 밤이 깊어 이 모든 도시적 특수효과가 사라졌을 때 남아있는 우리 도시의 물성은 과연 어떠한가. 그리고 어느 것이 우리의 모습인가.
2008-12-02 23: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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