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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806 통권659) 시간의 두께가 사라지지 않기를
  

서울에서 가장 변화가 빠른 지역은 어디일까? 아마도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의식 중에 강남, 아니면 신도시 인근지역을 생각할 것이다. 새로운 지역일수록 변화가 빠를 것이라는 아주 자연스러운 추측 덕분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오래된 지역의 변화가 오히려 더 빠른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강북의 한복판 종로 일대는 향후 몇 년간 가장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역의 하나가 될 전망이다. 종로구와 중구 일대, 즉 서울 구도심의 간선도로변은 사실상 거의 예외 없이 오래전부터 도심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과정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종로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앞으로 몇 년간 종로 일대, 특히 북쪽 지역의 기존 시가지는 상당 부분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고층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이었던 저 유명한 피맛길 또한 다른 그 무엇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이미 종로 한일관은 물론, 이 지역의 수많은 해장국집, 고갈비집, 김치찌게집 등이 문을 닫았거나 그럴 예정으로 있다. 이 일대의 가게와 거리에 점차로 불이 꺼져가고 있다. 좁은 골목들 사이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런 기존의 도시구조는 이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앞으로 몇 년 후 종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지역이 더 이상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도시구조를 개선하고 토지 이용의 효율을 높이는 발전으로? 아니면 도시에서 역사의 흔적과 시민들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파괴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해묵은 논쟁이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져만 간다. 그냥 의견만 내놓는 것이라면 어떤 이야기건 가능하지 않으랴. 그러나 막상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건축가들에게 이러한 질문은 사실상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걸린 첨예한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선택이 있다. 그 첫 번째는 기존 구조를 그대로 두고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세계 역사도시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간의 두께와 현대도시의 기능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를 힘들게 병행해온 결과다. 당연히 이런 주장은 적어도 명분과 정당성을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인 설득력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도시들은 너무 빨리 성장해왔다. 역사가 600백년이 넘는다는 서울에서조차 한옥으로 유명한 북촌 정도가 이런 논리에 의해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는 정도다. 그나마 막대한 시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그러니 소위 지속 내지는 반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두 번째 방식은 철저하게 개발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최대 규모에 의한 최대 수익이라는 시장의 논리 앞에서 모든 다른 가치들은 빛을 잃는다. 원래 무엇이 그 자리에 있었던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시민들의 기억‘, ’기존 주민 재입주‘ 같은 추상적인 가치는 우선순위 한참 밖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가장 명분이 약하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 돌파력을 갖는 방식이기도 하다. 시장이라는 욕망의 거래처가 갖는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우리가 실행에 옮긴 거의 유일한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같은 모양, 같은 성격이 된다. 좀 달라 보인다 해도 표피적 스타일의 변화일 뿐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워할지 몰라도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로부터는 도대체 시큰둥한 반응밖에 못 끌어내는 강남 테헤란로 일대지역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이런 방식을 택한다면 그 결과도 미리 예측하고 책임질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선택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어렵다. 그것은 해당 지역의 특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 개발과 구별되며, 개발행위 자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입장과도 다르다. 그만큼 ‘명분’과 ‘실용’ 양쪽으로부터 공격당할 확률도 높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유효한 대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크다. 예를 들어 새로 들어서는 건물일지라도 그 지역에 원래 존재했던 도시의 구조 및 스케일, 기능 등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종로의 피맛길이라면 종로 일대의 도시 기능과 보행자 시설들을 연계하여 지상과 지하를 수직적으로 네트워크화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도시가 수직적으로 구성되고 연계되는 것은 이미 싱가포르나 홍콩, 동경 등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수많은 논의와 연구,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길고도 복잡한 과정의 산물이다. 이를 위한 현대건축의 기술은 이미 성숙되어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여건이다. 그래서 어지간히 성숙한 사회가 아니면 이런 방식을 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종로는 그 어려운 실험의 무대가 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2008-12-02 2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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