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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808 통권667)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 간단한 질문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우선 어디서 살거나 일하고 있다고 해서 그곳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조사해야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런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그 다음으로는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이 역시 세계의 많은 도시들을 가서 보고 왔노라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현상의 이면에 감춰져 있는 수많은 객관적 사실들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좀 맥 풀리지만 통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 건조한 숫자에 불과한 통계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우리 도시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지 한번 보기로 하자. 당신은 얼마나 우리의 도시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우리 도시에는 녹지가 부족하다?
대중가요 가사에서 우리 도시들은 항상 ‘콘크리트 빌딩 숲’과 같은 잿빛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우리는 우리 도시들이 나무 한 그루 없는 무미건조한 곳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통계 하나가 등장한다. 현재 계획 중인 소위 ‘명품 신도시’인 광교의 경우 41.4%의 경이로운 녹지비율이 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녹지 비율 높기로 소문난 과천이나 판교가 30%를 조금 넘는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믿기 어렵지만 산이 많은 부산은 심지어 51.4%에 이른다. 런던이 32.8%, 베를린이 29.3%, 프라하가 24%인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숫자로 본 우리 도시들의 녹지비율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문제는 그게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의 경우를 보자. 녹지비율 26%로서 숫자 자체가 그리 높은 편도 아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이 녹지라는 것이 북한산, 남산과 같은 산지거나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역사유적지다. 일상적인 생활영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심지어 돈을 내야 접근할 수 있는 녹지인 셈이다. 집이나 회사 근처에 있어 쉽게 접근이 가능한 ‘생활녹지’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녹지문제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은 고밀도 도시다?
여기서 밀도라는 것이 인구밀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맞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가히 살인적이다. 세계적인 고밀도 도시인 홍콩과 도쿄가 1평방킬로미터 당 각각 6,311인, 5,628인이고 심지어 상하이는 2,403인에 불과한데 서울은 무려 17,131인이다. 도쿄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고밀도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정어리 통조림 신세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불쌍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한 서울시민이여!
그런데 만약 인구의 밀도가 아닌 건물의 밀도를 보면 어떨까? 여전히 우리는 서울을 고층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숨 막히는 도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의 평균 건물 층수는 놀랍게도 아직 2.5에 불과하다. ‘아니, 63빌딩도 있고 코엑스 건물도 있는데?’라고 할 사람들이 물론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고층 건물의 이면에 존재하는 절대다수의 건물들을 보라. 강남 한 복판에도 2층짜리 건물들은 수두룩하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괴물’의 야경 씬에서 이러한 서울의 도시적 특징을 매우 정확히 그려내고 있다.) 파리의 평균 건물 층수가 5층 이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니 서울은 파리보다 인구밀도는 훨씬 높으면서 건물의 밀도는 훨씬 떨어지는 도시인 셈이다. 그러니 그 체감밀도란 과연 어떻겠는가?

‘사장님’들의 도시
우리 도시들은 유난히 자영업 비율이 높다. 미국 인구의 93.2%가 소위 ‘월급장이’고 불과 1.3%가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데 반해서 우리나라는 직장인이 66.4%, 자영업 종사자가 무려 14.6%에 달한다. 그만큼 자본의 집중이 덜 이루어진, 다시 말해서 오종종한 ‘사장님’들이 많은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특성은 우리의 도시들에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길거리의 수많은 간판들 하나하나마다 사장님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도시가 아기자기하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되지 않는 극도의 혼란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한 외국인들은 의외로 이러한 우리 도시들의 특성을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집이나 직장 근처에 작은 가게들이 많아 생활하기에 편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 한국인들의 독립심과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 경제위기 당시 수많은 정보통신 회사들의 창업 러시를 가리켜 ‘용꼬리 보다는 닭대가리가 되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기질’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곤 했다. 우리의 도시는 결국 숨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걸어 다니기 어려운 우리 도시
인도가 좁고 그나마 그 위에 온갖 물건들이 나와 있고 심지어 자동차까지 주차되어 있는 것이 우리 도시의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좀 다른 것이다. 우리 도시들은 너무나 수평적으로만 확장되어 있다. 용적률을 일종의 특혜로 보는 사회적 풍조 때문에 충분한 밀도를 갖추지도 못한 채 옆으로만 넓어진 것이다.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가보면 이미 몇 백 년 전부터 도시 중심부에 5, 6층 이상의 건물을 지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걸어서 이동하기가 좋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들을 가보라. 국도가 지나가는 도시 중심부라도 2층 내외가 고작이다. 이러다보니 도시가 길게, 혹은 넓게 형상된다. 상식적으로 보행자는 15분, 즉 1킬로 이상은 잘 걸으려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도시의 시설들은 가급적 좁은 지역 안에 충분한 밀도를 가지고 들어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저밀도를 택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자동차 의존도를 현저하게 높이는 예상치 못한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한국인들은 큰 집에 산다
위에서 인구밀도는 높고 건물의 밀도는 높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그나마 높지 않은 건물 밀도 중에 주거가 차지하는 비율은 또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백남준 선생은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이 큰 집에 사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그런 집에 살려고 하면 ‘여우둔갑’을 몇 번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주거를 뺀 나머지, 그러니까 정말 쪼그라들어 있는 부분은 결국 무엇인가? 업무와 공공부분이라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 위에 서류더미가 높이 쌓여져 있는 고루한 사무실 풍경의 이면에는 이렇게 냉정한 통계숫자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평균적인 한국인의 삶의 질을 놓여주기 위해서는 이제 주거가 아닌 업무공간과 공공시설에 더욱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건축가인 나의 믿음이기도 하다. 집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도시불패?
신도시에서 시작된 도시 만들기의 열풍은 행복도시를 거쳐 기업도시, 혁신도시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기존의 도시들도 항상 새로운 발전상을 제시하는데 열심이다. 그런데 도시란 과연 이렇게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가장 노령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가장 낮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도시의 미래란 과연 어떤 것일까? 어떤 성자의 유골을 다 모으면 몇 사람 분이 된다는 농담이 있지만, 우리 도시들이 저마다 자랑하는 예상 인구를 다 모으면 대한민국이 몇 개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문제는 도시가 점점 축소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으로서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소개되었던 ‘축소되는 도시'(Shrinking Cities)란 제목의 전시를 통해 충격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조선업으로 유명했던 영국의 맨체스터, 철강업으로 유명했던 미국 피츠버그 일대에 불어 닥쳤던 도시구조조정의 파도로부터 우리라고 예외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심지어 기존 도시를 버리면서까지 새로운 도시를 자꾸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

*참고로 이 글에서 제시된 내용의 일부는 2008년 9월 출간(현암사) 예정인 서울 시립대 김성홍 교수의 책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가제)연구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2008-12-02 23: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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