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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809 통권671) 과밀도 초거대 도시, 한국의 현대건축은 어떻게 피어났나
  

조각가인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자기는 건축가들이 부럽다고. 그 이유가 세 가지였다. 첫째, 작품의 사이즈가 크다. 둘째, 작품이 비싸다. 셋째, 작품이 공공전시(public display)된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가 가장 부럽단다. 자기 같은 조각가들이 가로변이나 공원 등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작품을 설치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결국 이것은 아틀리에나 전시장 등 ‘예술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의 영역 속에 존재하는 창작물인 건축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건축도 때로는 스스로 전시장을 찾아간다. 건축을 경험하는 최선의 방법은 물론 직접 방문하여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가져갈 수는 없다. 그래서 사진과 도면, 모형, 스케치, 동영상 등이 실물을 대체하게 된다. 물론 대체물 또한 그 나름대로의 미학적 속성이 있기 때문에 건축전시회란 의외로 매우 복잡한 성격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스케치처럼 작품의 구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부산물은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된다. 특히 순수 예술가들은 ‘어떻게 최종 결과물이 아닌 것을 전시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는 한다. 그러나 건축가들은 별 문제 삼지 않는다. 건축가의 창작 과정을 관객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로 치면 감독의 메모가 잔뜩 적힌 시나리오 같은 것이다. 물론 이 자체를 독립적인 미적 경험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실물 건축에 대한 부가적 자료로 간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전시회란 아직도 생소한 개념이다. 물량적으로 건축전시회가 빈번하게 열리기는 한다. 각 대학의 졸업전시회는 종종 교내를 벗어나 일반 갤러리나 미술관, 심지어 지하철 역사 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격년마다 건축전시회로 개최되며, 우리나라는 자체 국가전시장을 갖고 있는 운 좋은 경우이기도 하다. 최근의 새로운 경향은 중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의 도시와 건축을 아우르는 전시회가 속속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2007년에 열린 홍콩-셴젠 비엔날레는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러나 이런 건축전시회들이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축을 건설과 구별되는 창작물로 대하는 인식이 낮기도 하지만, 건축전시회를 실물 건축에 대한 부차적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풍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라는 전시회의 이름을 들어본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국내 언론에 자세히 소개가 된 것도 아니고, 소개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몇 사람이나 관심을 가졌을지 알기 어렵다. 나는 이 전시회에 참여한 건축가로서, 또한 이 전시회의 전시디자이너로서 그 실체를 여기에 소개함으로서 건축전시회의 한 예를 삼고자 한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란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의 현대건축을 세계에 소개하는 전시회다. 제목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거대도시(Megacity)면서도 놀랄 정도로 작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는(Network) 서울의 도시적 특성을 담은 문구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도시들의 특성을 그 안에서 일하는 건축가들의 작업을 통해 역으로 드러내 보이고자 했던 의도였다. 그래서 이 전시회는 처음부터 건축과 도시라는 두 주제 간의 역동적인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시회 전체를 총괄하고 학술적인 큐레이팅을 담당했던 사람은 서울 시립대학교의 김성홍 교수였다. 그를 중심으로 몇몇의 선정위원에 의해 16명의 한국 건축가가 선발된 것이 지난 2005년 말, 첫 전시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것이 2007년 말이었으니 준비에만 2년이 걸린 셈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짧은 준비기간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지라 오히려 ‘준비기간이 너무 길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농담이 오고갈 정도였다. 건축계의 혁신과 발전을 위한 소장파 건축가들의 모임인 ‘새로운 건축을 위한 건축사 협의회’가 한국측 주최자로 결정되었고 첫 전시의 개최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독일건축박물관(DAM: Deutsches Architektur Museum)이 현지 주최자였다.
이 전시회는 각 건축가의 작품성 못지않게 도시와 건축에 대한 일련의 주제들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각각의 건축가,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은 특정한 주제와의 연관 속에서 선정되었다. 16명을 선정하는 과정, 그리고 출품할 작업을 고르는 과정 등에서 잡음이 없었을 수 없다. 선정된 것과는 다른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 하는 건축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특정 경향이나 인맥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현대건축의 지평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으려 했던 선정위원들의 의도는 시종일관 유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간 건축계 내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몇몇 건축가들의 작업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넉넉한 것은 시간과 열정뿐이었다. 건축전시회의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현실 속에서 참여 건축가들이 전시 기획 및 제작에서 홍보, 출판, 심지어 기금조성까지의 전 과정을 직접 해결하는 상황이었다. 참여 건축가였던 나와 조남호가 전시디자인을 맡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리하여 건축가가 건축가를 상대로 디자인을 보여주고 설득해야하는 초유의 상황이 나와 조남호에게 주어졌다. 독일 현지를 방문하고 난 이후 우리는 몇 가지 대전제를 만들었다. 우선 전시디자인 자체에 도시적인 성찰이 반영되어 있을 것. 그리고 전시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개최 도시와 관련을 맺을 것. 순회전시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현지에서의 작업을 최소화할 것. 마지막으로 명쾌하고 간결한 디자인으로 전시의 개념이 명확히 전달되도록 할 것 등이었다. 이리하여 몇 번의 회의와 같은 건축가들끼리의 치열한(?) 토론 끝에 확정된 디자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16인의 건축가들에게 자기의 영역을 주었다. 그 안에서의 배치에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면서 전체적으로는 질서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전시물을 부착하는 패널은 일괄 제작하여 8미리 두께의 알루미늄 및 투명 아크릴 판 6개를 지급하였다. 각 건축가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타공, 채색 등의 가공을 할 수는 있지만 이름, 작품 설명 등 공통정보들은 일정한 위치에 배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전시는 정해진 관람동선 같은 것이 없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죽 늘어선 전시 패널들이 관객을 맞이할 뿐, 어디서부터 보라는 암시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침투성 관람 방식’이라고 불렀다. 즉 관객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원하는 순서대로 알아서 보는 방식이라는 의미였다. 독자들은 여기까지의 설명만으로도 디자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메가시티 네트워크’의 전시디자인은 도시적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건축한계선 및 지정선과 같은 도시계획적 개념들에서 시작하여 재료와 물성, 나아가 싸인 시스템에 이르는 도시의 각종 구성요소들이 등장했다. 한 마디로 우리 도시의 특성들을 전시디자인에 담아보고자 한 것이었다.
전시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영상작업이었다. 우리는 서울의 도시적 변화를 꾸준하게 기록해온 젊은 사진작가 안세권을 초빙하여 이 작업을 의뢰하였다. 폭 22미터, 높이 3.6미터의 거대한 벽면에 서울의 도시적 경관과 각 건축가들의 작품을 투사한다는 것이 우리의 요구조건이었다. 안세권은 1개의 컴퓨터로 4개의 빔 프로젝터를 연동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첫 전시가 열리는 독일 건축박물관 정면의 창 4개를 일부러 개방, 우리의 영상과 프랑크푸르트의 실경이 중첩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아이디어였다. 현지에서도 이런 시도는 처음이라고 했다. 또한 산업사회의 폐기물을 이용하여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재활용 상상 놀이단의 음악이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 몇몇 건축가들은 전시디자인에 의문을 표시했다. 특히 각자의 영역이 구별되어 있다고는 하나 시각적으로 서로 열려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컸다. 작품에 집중하기 어렵고 심지어 서로간의 구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유럽의 도시 구조와는 다른 한국 도시의 시각적 공간적 경험의 속성을 이야기했다. 시각적 관통과 중첩(visual penetration and overlapping)은 오히려 전시의 성격상 의도된 것임을 설명했다. 또 다른 의문은 재질에 대한 것이었다. 매끄러운 알루미늄과 투명한 아크릴 판이 ‘한국적인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섬세하고 정밀한 재질이 비한국적이라 할만한 근거 또한 없으며, 오히려 전시의 형식은 그 콘텐츠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설득하고자 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지만, 지금도 나는 거칠고 투박한 것을 한국적인 것으로 동일시하는 일반적 태도에 쉽게 동의하지 않으려 한다. 매끄러운 그릇에 얼마든지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가 각 패널을 연결하는 연결철물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시장에 나와 있는 기존 제품 중에서 우리의 개념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연결철물은 결과적으로 우리 전시회의 품질을 높였을 뿐 아니라, 드라이버 하나로 조립과 해체를 가능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디자인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현재 특허 출원중이기도 하다. 철물 및 전시 패널의 제작은 국내 최고의 금속가공업체인 최가철물점에서 진행했다. 드디어 전시 3개월 전인 2007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체 전시를 가설치함과 동시에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일종의 출정식을 가졌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전시회의 도록이 독일의 건축전문 출판사인 요비스(Jovis Verlag)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해외 대학의 도서관에 가면 한국 현대건축에 대한 영어로 된 책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국이나 몽고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시회는 한번 지나면 그만이지만 출판물은 지속적으로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도록의 출판은 중요했다. 역시 참여 건축가 중 몇몇이 직접 출판 코디네이터가 되어 자료를 모으고 김성홍 교수는 독일 출판사 측과 지루한 편집 협의를 진행해 나갔다. 전시회와 같은 제목의 이 책은 개막 직전 출판되어 지금도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돈도 모아야 했다. 순수미술과 달라서 전시회가 직접적인 매출(?)과 아무 연관이 없는 건축계의 특성상, 우리 각자는 비용과 노력에 있어서 상당한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각자가 천만원씩 갹출하여 초기자금을 마련하고 건축주와 시공회사 및 자재회사들을 상대로 설득에 들어갔다. 물론 당시의 문광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의 협조도 요청하였다.
기금 조성 과정에서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기는 어려우나, ‘왜 건축가들이 전시회를 하느냐’는 이유로 해외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된 어떤 단체의 지원금 신청서류를 접수조차 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는 정도는 밝히고자 한다. 한 마디로 건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와 무관심을 뼈저리게 경험한 기회였다. ‘한국현대건축을 해외에 소개한다’는 명분은 거의 설득력이 없었다. 오히려 이 전시회를 도와주려 했던 분들은 국가기관을 빼고는 작은 기업들이었다. 중소규모 시공업체들과 자재업체들, 그리고 몇몇 건축주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작업 현장에서 우리 건축가들과 끈끈한 관계를 구성했던 사람들이 역시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해주었다. 결국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심정으로 작은 정성들을 모아 나갔다. 이 과정에서 좀 엉뚱하지만 유쾌한 사건도 있었다. 전시회의 개념을 설명하는 도면이 일간지에 소개되었는데, 이것이 중학교 수학교과서에 실린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건축과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항상 즐겁다. ‘메가시티 네트워크’는 희로애락이 중첩된 경험이었다.
여기까지가 준비 과정이고 이제 남은 것은 독일 현지에서의 개막이었다. 2007년 12월, 개막 일주일 전에 설치 팀이 독일로 날아갔다. 거기서 현지 작업자들과 합류하여 20개가 넘는 모형과 96개의 패널, 그리고 영상물 등의 설치에 들어갔다. 이미 준비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 밖에서 기웃거리곤 했다. 그리고 개막 당일,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시회를 찾았다. 전 세계에서 박물관, 미술관에 가장 자주 가는 사람들이 독일인이라더니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및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 등을 비롯한 현지 언론에 전시평이 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론의 전반적인 호평에 대해 안도하기도 했지만 관점이 예리하고 정확한 것에 놀랐다. 예를 들어 그들은 전시의 내용과 전시의 형식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정밀하게 읽고 있었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 첫 인상은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평이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건축전시회의 개념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라는 평가도 받았다. 전반적으로 그들은 한국의 건축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후 40여개의 현지 언론에 우리 전시회에 대한 기사가 나갔다.
우리보다 더 유쾌해했던 것은 독일건축박물관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시립기관으로서 시민들의 세금을 써서 건축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한국의 건축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은 그들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에 이어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을 가진 나라로 한국을 주목했고, 그 기회를 선점하고자 했다. (‘우리도 당신들이 필요하다’라는 박물관장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효과는 처음에 우리가 의도했던 것처럼 ‘메가시티 네트워크’의 순회전시로 가시화되었다. 몇몇 도시에서 전시 제의가 들어왔다. 이리하여 반 년 후인 2008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에 이은 첫 순회전시가 열렸다. 이번에는 독일건축센터(DAZ: Deutsches Architektur Zentrum)의 초청이었다. 베를린 전시의 특별한 점은 작은 규모였지만 영화계와의 협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도시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3개의 영화를 선정하여 이를 전시회 기간 중에 상영한 것이다. ‘괴물’, ‘달콤한 인생’, 그리고 ‘사랑니’ 등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준 각 제작사 및 관계자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지금 이 ‘메가시티 네트워크’ 전은 베를린 전시를 끝내고 독일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2009년 3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또 다른 순회전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또 어떤 순서가 우리를 기다릴지 아직 모른다. 어쩌면 미국이나 동아시아를 순회하는 것도 거론되고 있다. 그 때마다 우리는 현지를 방문해서 전시디자인을 상황에 맞게 수정하고 개막일에 맞춰 설치를 하러 가야 할 듯하다. 지금도 나와 조남호는 ‘우리의 40대 후반을 메가시티 네트워크와 함께’라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모든 해외 일정을 마치고 나면 언젠가 국내에서 귀국전을 가질 것이다. 그 때면 이미 이 전시회의 내용이나 형식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건축을 가장 큰 규모로, 한국 건축가들의 기획과 디자인에 의해, 정식의 출판물을 곁들여서 성공적으로 해외에 소개한 최초의 전시회로서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회화, 조각과 같은 순수예술이나 영화 등에 비해서 미적 경험의 대상으로 쉽게 인식되지 않는 건축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한국 건축가들, 이렇게 발견되고 있다.
2008-12-02 23: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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