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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810 통권675) 도시 데리고 놀기
  

지난 10월 초, 광주와 부산을 연이어 방문했다. 광주에서는 비엔날레가, 부산에서는 영화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은 행사 자체 못지않게 그 행사들이 도시와 맺고 있는 관계였다. 우리는 도시를 어떻게 데리고 놀고 있을까?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가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호남 제일의 도시이면서 ‘이발소에도 수묵화가 걸려있다’는 전통적 예향이라는 점? 아니면 민주화운동의 성지로서 미술을 통해 사회의 다양하고 열린 가치들을 담아낼 수 있는 상징적 장소라는 점? 아니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지역으로서 국제행사를 통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도시라는 점? 그런데 도시와 비엔날레가 맺고 있는 공간적 구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런 모든 설명이 일시에 무의미해진다. 광주비엔날레 행사장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광주라는 도시와 절연되어 있다. 호남고속도로 서광주 톨게이트 바로 옆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지에서 비엔날레를 찾는 사람들은 광주를 전혀 경험할 필요 없이 행사장만 들렀다가 돌아가면 된다. 차라리 역설적으로 도시 반대편에 있는 광주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도시를 가로질러 행사장으로 가는 것이 더 광주를 느낄 수 있는 방식이다. 광주비엔날레가 광주와 별로 상관없는 행사라는 논란이 매년 제기되는데, 그런 성격이 비엔날레가 도시를 대하는 공간적 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셈이다.

광주는 내가 서울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도시의 하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도시의 미래가 매우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문제에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들이 직면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광주는 시내를 가로지르는 광주천과 이와 평행으로 달리는 금남로를 중심으로 구성된 고구마처럼 잘 생긴 아담한 도시였다. 그 금남로의 끝에 전남도청, 광주시청 등 중요한 공공기관이 있었고 사방으로 뻗어나간 길을 통해 조선대, 전남대, 광주교대 등이 무등산 산자락에 안겨 있었다. 그래서 금남로는 광주의 거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광주가 고향인 내 친구들은 ‘주말에 금남로에 나가면 동창회 분위기였다’는 말을 지금도 가끔 한다. 그런데 이런 도시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원래 광주 교외지역이었던 상무대가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광주시청이 새로 청사를 지어 이전했고, 전남도청도 무안으로 옮겨갔다. 결과는? 금남로의 처절한 몰락이었다. 몇 년 전 겨울 세미나 참석차 광주를 찾았을 때 금남로를 따라 들어선 건물들의 상당수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하도 이상해서 부동산에 들러 문의해보니 이 일대의 지가라는 것이 서울 변두리 지역만도 못했다. 광주는 구도심을 잃은 것이다. 이때 나와 동료 건축가들은 차라리 비엔날레를 금남로 주변의 빈 건물들을 이용해서 여는 것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금 정부기관들이 떠난 그 지역에 아시아 문화전당이 들어서고 있지만 그것이 광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사실 이번에 광주를 찾아갔던 것은 금번 비엔날레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광주의 전통시장의 하나인 대인시장에서의 행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대인시장이 금남로에서 멀지 않은 광주 구도심에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몇 년 전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함께 동행 했던 미술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인시장에서의 전시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미국에서 온 미술관 및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도시와 미술의 관계를 흥미롭게 설정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도청도 떠나고 시청도 떠나고 비엔날레마저 외면했던 광주 구도심에서 이런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추이가 자못 기대되는 상황이다.

광주에서 부산은 의외로 멀었다. 고속버스로 무려 3시간 30분. ‘우리나라가 이렇게 거대했나’라는 농담이 차안에서 오고 갔다. 어떤 의미에서 아직도 먼 영호남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도 했다. 노포동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또 다시 한참을 택시로 달려간 곳은 해운대였다. 그런데 잠시 내 머리 속 혼란이 일었다. 아니 피프(PIFF) 광장은 광복동, 남포동 지역에 있는데 왜 해운대로 오라고 하지? 부산영화제를 처음 찾은 탓에 정보가 어두웠던 탓이었다. 나중에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내 의문은 해소되었다. 그 사정은 이랬다.

원래 부산영화제는 부산의 구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광복동, 남포동 일대의 기존 인프라를 이용해서 시작되었다. 부산의 전통적인 영화관들도 이 지역에 몰려있었다. 그런데 점차로 부산영화제의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인 관심이 늘어나면서 해운대 일대의 신개발지가 경쟁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해운대에는 바다와 백사장, 그리고 국내최고 수준의 호텔 등 탄탄한 관광인프라가 이미 조성되어 있었다. 역시 바다에 면한 도시인 칸 영화제 ‘필’을 그럴 듯 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해운대였다. 어차피 영화제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운대에 숙소를 정하는 상황이었다. 지상교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잡하고, 지하철로도 30분 이상 걸리는 구도심은 너무 먼 그곳이었다. 몇 년에 걸쳐 논쟁이 이어지다가 결국 부산영화제의 공간적 중심은 이제 해운대로 옮겨왔다. 외국건축가에게 의뢰하여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자국 영화산업의 보호를 그렇게 절절하게 외쳐대던 영화계가 건축은 그럴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동시에, 그럴 줄 알았다.) 물론 아직도 광복동, 남포동 일대의 영화관에서 행사의 일부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그 열기는 느끼기 어렵다. 결국 구도심이 지고 만 것이다.

광부비엔날레가 이제 7회, 부산영화제는 이제 13회를 맞이했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동안 거대 행사와 도시가 관계를 맺어온 셈이다. 그러면서 광주 외곽에서 시작한 광주비엔날레는 구도심을 다시 발견하고 있고, 반대로 구도심에서 시작한 부산영화제는 신천지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여 자못 그 대비가 흥미롭다. 구도심의 문제는 서울에서 시작하여 지방 도시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 두 거대 행사를 통해서 본 우리의 도시 데리고 놀기는 우리 도시의 미래를 시사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산업구조의 변화, 인구저성장, 노령화 등은 필연적으로 도시불패신화의 시대적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이런 전세계적 현상으로부터 우리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구도심을 벗어나 지나치게 수평적으로만 확산되어 온 우리 도시들의 미래는 어둡다. 짧은 거리로 걸어서 이동하기 어려워 자동차를 타야하며 자연은 자연대로 파괴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구도심은 살아 있는 도시의 심장부가 아닌, 죽어서 도려내야 되는 환부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앞으로 서서히 도시들이 망하고, 파산하고, 사라지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 때 과연 우리는 어떤 방식이 더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2008-12-02 23: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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