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의 글을 소개하는 게시판입니다. 상업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퍼가실 수는 있으나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황두진에게 있습니다.

  황두진
  ?(04?) 찰나와 영원: 방송과 건축
  

거장 건축가 비디오

건축 관련 자료 중에 세계 거장 건축가 비디오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 시절 몇 개를 구해서 봤는데 별 감동이 없었다.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은 건축가들의 인터뷰였다. 우리 같은 건축학도들이 알고 있던 그들은 현란한 개념과 이론으로 중무장된, 그래서 건축 못지않게 말과 글이 흥미롭던 혁명 투사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일반 공중파 방송을 녹화해서 제작한 듯한 그 비디오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위 4대 거장 중의 한 사람이 나와서 ‘사용자의 편의와......’ 운운했었던 것 같다. 비디오의 나머지 내용들도 대동소이했다. 그가 얼마나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의 소유자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건축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부분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연기파 성격 배우로 알았던 사람이 최루성 멜로에 등장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방송과 건축의 만남에서 상대에게 자기를 열심히 맞춰주고 있던 것은 건축이었다.

건축가는 산타클로스?

그 뒤로도 방송과 건축의 만남을 여러 차례 경험하였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는 간접경험이었지만, 몇 차례 직접적인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거장 건축가 비디오에서의 현상이 아주 보편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마음씨 좋고 모든 것이 넉넉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건축가가 등장하는 여러 프로그램에서는 완전히 낡은 집, 혹은 가게를 고쳐서 주인에게 되돌려준다는 것이 아주 일반화된 진행이었다. 건물 전체를 장막 같은 것으로 덮어 놓았다가 어느 순간에 확 열어서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주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건축가는 뒤에서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사람들이 건축가란 일종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건축과에 진학한 수많은 학생들이 진학의 동기로서 이러한 방송 프로그램과 거기에 출연한 건축가들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들이 정작 현실의 건축과 그 안에서 전개되는 건축가들의 팍팍한 삶을 대했을 때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지 자못 궁금하다.

방송의 속성

그간의 이런저런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된 방송의 속성은 이러하다. 우선 방송은 권력이며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방송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이 논리 위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그들은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이러한 권력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거기에 참여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갖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종 이것은 갈등의 소지가 된다. 방송의 그런 속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협찬이다. 방송은 어떤 제품이나 직업인이 방송에 나가게 되면 상당한 혜택을 입게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의 경험적인 판단에 의하면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따라서 수많은 협찬을 요구할 이유가 된다. 혹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혹은 권력의 논리에 의해서 방송은 상당한 협찬을 전제로 기획된다. 자체적으로 편성하는 제작비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출연자마저도 일종의 협찬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결코 노골적으로 이야기되지는 않는다. 특히 건축가와 같은 개인 전문가에게 방송과 같은 거대 조직이 위의 논리를 강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도 꺼려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직접적인 언급은 가급적 자제하면서 ‘방송을 활용하라’는 것과 같은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건축의 속성

방송을 통해 드러나는 건축의 속성은 무엇인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만들어진 결과물의 성격이 상당히 시각적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통해서 한다는 점에서 건축은 방송과 유사하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건축또한 권력을 갖고 싶어 하며, 그래서 종종 방송과 유사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피디들의 삶은 건축가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그들은 창작인이다. 방송의 제작 환경이 놀라울 정도로 열악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어쩌면 건축가들보다 더 고달프다. 특히 시간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방송이 못 나가는 경우, 즉 ‘펑크’에 대한 공포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의 성격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일 경우, 그들은 종종 자기 자신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쑈양’이라는 단어는 ‘쑈도 아니고 교양 프로도 아닌’이라는 자조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거대 조직 앞에서 그 구성원인 피디들도 사실 무력한 존재다.

그리고 계몽성에 대한 태도가 있다. 건축가는 아마도 가장 계몽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회 집단의 하나일 것이다. 건축가들은 배운다는 입장보다는 가르친다는 입장을 더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속성이 있다. 그러한 건축가들이 방송을 접했을 때 딜레마가 발생한다. 방송은 스스로 또한 계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접해보면 그 입장이 매우 확고하며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보다 더 계몽적이고자 하는 건축가들에 대해서 방송은 종종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차라리 건축가가 드러내 놓고 코메디언이거나 적어도 엔터테이너인 것이 방송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 몇몇 건축가들이 이런 상황에 잘 적응하고 또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 그냥 성격 좋은 산타클로스 정도의 모습밖에는 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방송이 그려낼 수 있는 인물의 모습이 그만큼 제한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드라마 주인공들의 성격이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찰나와 영원?

스쳐가는 이미지를 다루는 방송과 영속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축. 방송과 건축을 이야기하며 종종 등장하는 주제지만 그 실체는 의심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지가 건축 보다 더 영속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물을 찍은 사진이나 영상물이 그 건물 보다 훨씬 오래 후대에 전해지는 경우는 흔하다.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개별 건축물의 운명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영속성의 신화가 제거된 건축은 점차로 무대 디자인이 된다. 잘 짜여진 구성보다는 시각적 특수효과가, 공간의 연결과 흐름보다는 사진빨 잘 받는 오브젝트가, 전체적인 구성 보다는 군데군데의 시각적 특색이, 그리고 무엇보다 건물 자체 보다는 그 건물의 탄생신화들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파편화된 건축이야말로 소위 방송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적합하다. 방송을 통해 경험하는 건축과 실제 건축과의 차이는 방송 쪽이 훨씬 더 시간적, 공간적 통제의 산물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아무리 잘 기획되고 촬영되었다 하더라도 방송은 건축의 총체성을 전달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 결과가 건축을 조각조각 이해하기 쉬운 덩어리들로, 소품 위주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 중심으로 소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건축으로

그 동안 이런저런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지은 경우는 상당히 많다. 물량으로만 보면 하나의 주제가 될 만도 하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건물들이나 그들을 만들어낸 건축가들을 비중 있게 바라보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통상 건축을 평가하고 논할 때 사용되는 개념들은 이들 건물에 대해서는 거의 동원되지 않는다. 관심이 있다고 해도 어떤 방송을 통해 언제 소개되었고, 당시 등장인물이 누구고 등 건축외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방송용 소품이라는 이야기다.

건축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건축은 건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 떨어졌건, 땅에서 솟아올랐건 일단 만들어진 건축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 실체를 갖고 이야기할 때만 가능하다.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사족이 되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뿐이다. 주택이라면 주택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성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할 것이고, 공공시설이라면 역시 공공시설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포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찰을 거쳤을 때 별로 남는 이야기가 없다면 결국 방송 앞에서 건축이 자기 고유의 모습을 포기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방송을 위해서나 건축을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다. 마치 비디오 속의 그 거장 건축가처럼.
2006-07-13 14:09:50


   

관리자로그인~~ 전체 113개 - 현재 8/8 쪽
8
황두진
2006-07-26
1972
7
황두진
2006-07-13
1902
6
황두진
2006-07-13
2905
5
황두진
2006-07-13
5896
4
황두진
2006-07-13
1999
3
황두진
2006-07-13
2523
황두진
2006-07-13
2020
1
황두진
2006-07-13
2415

[맨처음] .. [이전] [2] [3] [4] [5] [6] [7] 8 [다음] ..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