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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성대신문(04?) 대학, 그리고 대학 캠퍼스
  

두 대학 이야기

서울대학교

원래 관악 컨트리 클럽, 즉 골프장이었던 곳에 국립서울대학교가 옮겨간 것은 1975년이었다. 원래 서울대학교는 동숭동의 문리대를 비롯하여 서울시내 곳곳에 작은 캠퍼스들을 가지고 있었다. 의대는 문리대 건너편의 연건동, 치대는 소공동, 공대는 공릉동, 상대는 종암동, 농대는 아예 경기도 수원에 있었다. 그러나 학교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통합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서울대생들의 끈질긴 독재타도 시위에 시달리던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아예 학교를 먼 곳으로 보내버리고자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관악으로 통합, 이전하면서 서울대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도시형, 분산형, 반개방형 캠퍼스에서 전원형, 집중형, 폐쇄형 캠퍼스로 변화한 것이다. 그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리대가 동숭동, 그러니까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이 있었을 때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교정 뿐 아니라 바로 앞의 도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속칭 세느강과 미라보다리로 불렸던 학교 앞의 하천과 다리를 비롯하여, 학림다방으로 대표되는 길 건너의 대학가는 캠퍼스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당시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봄이면 문리대 교정으로 꽃구경 겸 소풍을 갔다. ‘의외로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이 아이들을 더 예뻐하더라’는 식으로 ‘공부 밖에 모르는’ 서울대 여학생들을 은근히 흉보는 이야기가 오고 가기도 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대학은 모든 자원을 스스로 조달할 수 없었고, 따라서 그것은 학생들이 각자 알아서 해야 할 몫이었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수업만 들었고, 대부분의 생활을 학교 밖에서 했다.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들었고, 헌책방에서 책을 샀으며, 학교 앞의 술집과 밥집을 자주 찾았다. 기숙사가 부족했으므로 대부분 학교 근처에서 하숙이나 자취를 했다. 문리대 앞에는 전차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몇 정거장만 가면 작부집으로 유명한 ‘종삼’, 즉 종로 3가가 있었다. 서울대생이라고 이런 것에 초연했을리는 없고, 따라서 종종 그들의 종삼 나들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은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모두 한 가지 사실을 말한다. 즉 서울대는 이름 그대로 서울이라는 도시, 그리고 캠퍼스 인근 지역과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악으로 오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여전히 서울에 있었지만 도시와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수준으로 단절되었다. 서울대는 더 이상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지하철 역-그 중 하나는 ‘서울대 입구역’이지만 서울대 정문에서 무려 1킬로 밖에 있다-에서 내려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다. 교문에서 학생회관까지 가는 것만 해도 족히 10분은 넘게 걸린다. 교문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공대까지는 그야말로 상당한 거리, 게다가 끝없는 오르막길이다. (우리는 학생회관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중간 중간에 제1, 제2캠프를 설정하며 등교길을 일종의 고산등정으로 여기고 다녔다.) 대학가? 그런 것은 없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신림동, 봉천동 일대에 하숙촌, 고시촌이 생겼지만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만하는 거리에 있다. 게다가 대학가하면 떠오르는 일체의 문화적 흔적이 그곳에는 없다. 학교는 점차로 자족적인 도시가 되어갔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용품 상점을 비롯, 수많은 식당이 생겼고, 최근 서울대 캠퍼스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는 학교 내에 술집을 만드는 문제였다. 지금도 시위는 종종 일어나지만, 경찰들은 교문 근처만 잘 지키는 것으로 효과적인 진압을 할 수 있다. 이제 서울대의 외침은 밖에서 잘 들리지 않게 되었고, 그들을 두려워하던 박정희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학교 캠퍼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아무래도 주위를 둘러싼 수려한 자연경관일 것이다. 관악산 북사면, 게다가 골프장이었던 곳이니 새삼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수많은 건물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드러누울 곳도 많고 찾아다닐 곳도 많다. 학교 안에 계곡도 있고, 댐도 있고, 야외 수영장도 있다. 등하교에 있어서는 가장 불리한 공대가 이런 점에서는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다. 바위와 수풀이 우거진 봉우리들과 같은 눈높이에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초현실적인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조선 시대의 서원에서부터 비롯되어 내려온 우리의 교육적 전통, 즉 교육이란 모름지기 어느 정도 속세와의 절연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상아탑은 이렇게 도시를 떠나 산기슭을 찾아 온 것이다.

예일대학교

예일대학교는 미국 동북부의 뉴헤이븐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 이 도시에 가서 ‘예일 대학교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예일 대학교에는 교문이 없다. 학교를 둘러쌓고 있는 담도 없다. 학교 건물의 주소는 ‘York Street 180번지’(참고: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의 주소), 이런 식이다. 도시와 학교는 완벽하게 서로 섞여 있다. 적어도 보기에는 그렇다.

실제로 학교와 도시와의 구분은 뚜렷하게 존재한다. 학부학생들 전원을 수용하는 각 기숙사-여기서는 기숙사를 ‘college’라고 부른다-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일종의 해자(moat)를 건너야 한다. 중세 건축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이 해자가 대학 기숙사에 왜 필요한 것인지? 이것은 이 대학과 도시의 역사를 조금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일은 전통적으로 선택받은 백인남자를 교육하기 위한 대학이었다. 지금은 소수민족이 늘어나고, 심지어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아졌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실상 60년대 이후부터나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학교가 자리 잡은 도시인 뉴헤이븐이 원래 공업도시였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은 아주 다른 집단이었다. 시민들은 학교 시설에 출입이 금지되었고, 학생들은 일반 술집에 잘못 들어갔다가 몰매를 맞고 나오기 일쑤였다. 지금 ‘Town & Gown'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이름으로 기억되는 이 대립은 한 때 시민들이 대포를 가져와 학교를 날려버리려 했을 정도로 극단적인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어진 학교였으니 어느 정도 방어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학교, 그것도 소위 명문 학교가 일반 도시와 공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를 도시의 일부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려 했던 노력은 새삼스럽다. 그들은 학교를 도시로부터 절연시킬 수 있었을 것이나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 예일과 뉴헤이븐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학교의 모든 문화행사에 시민들은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다.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은 무료이고, 유명한 연사의 공개강좌라도 있는 날이면 강의실은 만원이 된다. 건축대학은 일년에 하나씩 뉴헤이븐 지역에 학생들이 직접 건물을 지어 기부하는 ‘Building Project'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뉴헤이븐은 전통적으로 연극이 유명한 곳인데, 많은 극단들이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이 도시에서 공연을 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크고 작은 수많은 극장들은 대부분 학교와는 관계가 없는 시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학교의 일부나 다름없다. 예일은 뉴 헤이븐의 가장 큰 투자자이며, 수많은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다. 뉴 헤이븐 입장에서 예일은 교육기관으로서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시의 재정수입에 직접 기여하는 것은 많지 않다. 작은 도시로서 이것은 상당한 부담일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일을 그 도시의 떨어질 수 없는 일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적어도 지금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Town & Gown'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예일은 그 나름대로의 절묘한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 오래된 조직은 대체로 그러한 특성이 있지만, 예일 대학도 마치 양파처럼 보이지 않는 수많은 레이어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은 캠퍼스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원 도서관의 모델이 되었다는 중앙 도서관의 경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개가식 서가의 입구를 찾기 어렵다. 복도 구석에 보잘 것 없는 작은 문이 몇 개 있을 뿐이다. 운 좋게 그 중 하나를 열면 위 아래로 여러 층이 뚫려있는 엄청난 규모의 서가가 그 안에 숨어있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들어가려 하는 공간의 규모에 맞는 문을 설계한다는 상식은 여기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건축대학의 경우 3층에 행정 사무실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용 기능이 들어가 있다. 세미나실도 여기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건물의 가장 구석지고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다. 세미나실의 기능상 외부인의 출입도 잦은 편이었으므로 이러한 배치에는 다소 의도적인 면이 있었다. 학생 시절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Welcome to Yale!'이라고 의미 있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이어진 설명에 의하면 이 학교에는 엄청난 자원이 존재하지만 외부인에게 쉽게 그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심지어 학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찾으면 열리고, 열리면 너의 것이지만, 찾지 않으면 영원히 그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채 학교를 떠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너는 이제 그 사실을 알았으니 앞으로 다르게 행동하라‘는 것이 말씀의 요지였다. 심지어 학생도 ’외부인‘일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섬뜩한 말이지만, 그 만큼 학생의 자발적인 태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맹자 어머니의 선택

위에서 이야기한 두 대학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전통이 있고, 또 그것이 캠퍼스 계획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어느 것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다. 하지만 만약 맹자의 어머니가 다시 살아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게 되었다면 과연 두 대학 중 과연 어디를 선택했을까. 이것은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교육기관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된 질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맹자 어머니는 주저함 없이 구름 속의 신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서울대 캠퍼스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이미 무덤 주변과 시장을 멀리한 맹자 어머니가 아닌가. 교육이란 어떤 의미에서 도를 닦는 것과 같으므로, 수려한 자연 환경 속에서 세속의 번다함을 잊고 고고한 인격과 학문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도시 속에 학교가 자리 잡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운동장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장들이 적어도 수업 시간 동안이라도 젊은 맹자들을 세속의 때로부터 보호해주었으면 할 것이다.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 남아있는 우아한 옛 서원들은 물론이고, 복잡한 현대 도시 속에서 그나마 우리의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환경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은 이렇게 수많은 맹자 어머니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학교란 결국 건물과 담으로 인식된다. 학교는 마치 단독주택처럼, 관공서처럼, 기업체의 사옥처럼, 그리고 군대의 병영처럼 자신을 그 주변과 확연하게 단절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리의 맹자 어머니는 자기의 귀한 맹자 못지않게 순수하고 진지한 미국 맹자들이 예일 대학처럼 길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것 같은 학교에도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이 미국 맹자들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일상적 생활과 학업을 잘 조화롭게 영위할 줄도 알고,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갖고 기여하는 삶을 산다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대학 캠퍼스는 그리도 청정한데, 왜 교문 밖만 나가면 소위 대학가라는 곳에 유독 온갖 세속의 유혹들이 집약되어 있는지 또한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학문이나 수양이 모두 신선이 노니는 자연 못지않게 공해와 소음에 시달리는 도시의 일상에서도 가능하며, 오히려 더 절실하다는 것 또한 잊지 않아야 하는 사실이다. 상아탑의 정의는 이렇게 항상 변화하고 또 수정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

인구분산과 교육정책을 항상 맞물려 생각해온 우리나라의 딜레마는 크다. 지금 대학들은 하고 싶어도 도심에 자리 잡기가 어렵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정부의 정책이 이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이나 디자인 등 사회와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의 경우, 깊은 산속의 절간 같은 학교에서의 교육은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유독 우리나라 학생들의 건축에 대한 접근이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것이 학교의 교육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할 정도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도시에서 너무 멀어서 훌륭한 외부 강사를 수시로 모셔오기 어려운 경영학과는 기업 경영의 현실과 관련된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게다가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는 수많은 귀중한 자원과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주변과 쉽게 공유가 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그 누구도 교문을 통제하지는 않지만 학교 주변의 담장은 예외 없이 높으며, 사람들은 그 주변을 멀리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학교가 마치 중세의 성처럼 우리 도시의 여기저기를 점거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교육기관이 추구하는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부분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보편적인 폐쇄형 캠퍼스의 장점은 담장 안에서는 자유로운 학교만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단점은 학교의 성장이 담장 내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위 내폭발(im-plode)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지상에 대지가 부족할 경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면서 지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고려대에서 이미 진행되었고, 이화여대에서는 현재 진행중인 캠퍼스 지중화작업은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 예들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담장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드디어 대학들은 담장 밖으로의 진출을 시도한다. 소위 외폭발(ex-plode)이다. 이것은 기존 담장 내 캠퍼스 면적이 처음부터 작았던 대학들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인데, 서울의 경기대와 숭실대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경기대의 경우 건축전문 대학원을 신설하면서 캠퍼스 너머의 일반 건물 및 주택들을 매입, 혹은 임대하여 교육시설로 사용해 오고 있다. 물리적 환경의 질은 좋지 않으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도시적 환경과 교육이 서로 맞물리는 측면도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대 학생들이 캠퍼스 주변의 도시 환경을 소재로 흥미로운 작업을 많이 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러한 환경은 오히려 경기대의 장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숭실대의 경우 일종의 사회교육시설을 도로 건너편의 신축건물에 수용하고 있다. 앞으로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유기적 연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러한 현상은 주목할만하다. 특기할 것으로는 최근에 문제 되었던 몇몇 대학들의 도심형 캠퍼스 설치에 관한 것이다. 홍익대, 덕성여대 등이 주로 디자인 관련 분야의 교육시설들을 대학로에 설치하고자 했고, 명지대, 상명여대 등 또한 강남에 시설을 마련했는데 정부의 시책은 이에 반대되는 것이라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결국 대학 캠퍼스의 바람직한 장래는 어느 정도 담장 너머 세계와의 교류와 소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일 대학의 경우에서처럼 학교와 도시 간에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예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오직 담장을 두른 폐쇄형 캠퍼스만이 존재하는 우리나라는 사실 세계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아무리 학교가 자원이 풍부하고 의지가 있어도 결국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학교는 도시를 향해 열려야 하며, 도시는 학교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학생이나 교수는 결국 시민이며 인간이다. 그리고 학교는 사회의 일부다.
2006-07-13 14: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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