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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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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산의 도시 서울, 물의 도시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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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물으면 나는 ‘산수(山水)의 도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세종로에서 바라보는 광화문과 경복궁, 그리고 그 뒤의 북악산과 북한산의 중첩된 경관은 실로 장엄하다. 게다가 이 맞은 편에는 남산과 한강 너머의 관악산이라는 또 다른 경관이 존재한다. 총 연장 24킬로 정도의 장대한 자연축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하는 북경의 도시축은 장대하지만 결국 시내구간에 한정될 뿐이다. 평지에 세워진 도시라 사방에 이렇다할 자연도 없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건축을 통합하여 중국보다도 훨씬 스케일이 큰 공간적 경험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던가.
서울의 고지도들을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지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결국 산과 물이다.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경락-경혈도처럼 고지도들은 도시를 마치 인체처럼 그리고 있다. 사대문 안의 구도심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당연히 물은 그 가운데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것이 청계천이며, 그 청계천은 지형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흐르다가 동대문 아래 오간수문을 통해 도성을 빠져 나간 후 중랑천과 합수, 한강에 이르러서는 이제 반대로 동에서 서로 흐른다. 이렇게 내수와 외수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흐르는 것 또한 한양의 입지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건이었다. 그것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태극 무늬였다. 한강은 하류로는 서해, 상류로는 북한강과 남한강을 거쳐서 한반도 중앙부의 상당 부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강원도 일대에서 벌목된 소나무가 한강을 따라 떠내려 왔고 겸재 정선을 비롯한 수많은 화가, 시인 묵객들이 한강에서 배를 띄우고 놀며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그렸다. 국가재정의 젖줄이라고 할 만한 조운 또한 한강을 통해 이루어졌고 마포를 비롯, 수많은 포구와 나루터가 한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은 이렇게 산과 물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그 안의 도시와 사람들을 아우르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서울은 점차로 산도 물도 아닌, 그냥 땅의 도시가 되어갔다. 산은 건물로 가려졌고 물은 도로로 덮였다. 한강에 다리가 놓이면서 나루터는 사라졌고 조운 시스템도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러 한강이 본격적으로 정비되면서 각종 댐과 수중보가 생기고, 강변엔 콘크리트로 부어 만든 제방 위를 몇 차선 도로가 겹으로 달리게 되었다. 마포는 더 이상 붐비는 항구가 아니며, ‘신선이 노니는 봉우리’라는 이름의 선유도는 공사용 골재 확보를 위한 수많은 폭발로 아예 납작한 땅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남북이 갈리면서 한강 하구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는 살벌한 곳이 되어 버렸다. 배가 다니지 않으니 밀려드는 퇴적물이 뱃길을 메워버리고, 대대적인 준설을 하지 않으면 한강을 통해 서해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강이 이러할진데 한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들의 운명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도시 구석구석을 실핏줄처럼 흐르던 열린 물길, 즉 개천(開川)들이 복개되어 버린 것이다. 서울의 지도를 다시 그리면 이제 핏줄은 보이지 않고 늘어진 살만 남아 있는 흉악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울에 다시 물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사업의 진행 과정 자체는 유감스러운 점이 많지만, 청계천 복원 사업은 적어도 발상의 전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경복궁 내에서도 궁내의 물길인 어구(御溝)를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며 몇몇 개천들의 복원 또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재천은 자연하천으로 다시 태어났고, 목동 개발 당시만 해도 완전히 썩은 물이었던 안양천 또한 소생의 기미를 보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러온다. 한강은 어떤가. 고수부지를 활용한 한강 시민공원은 접근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공공적인 시민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 하다. ‘행주산성에서 미사리까지’ 자전거나 인라인으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한강이 단순히 거대한 물의 흐름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한때 정수장이 들어섰던 선유도 공원은 건축가 조성룡의 손에 의해 근대의 유적과 자연 생태계가 조화를 이루는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선유도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경관은 특별하다. 전면의 드넓은 한강과 배경을 이루는 북한산의 연봉, 그리고 그 사이의 도시가 중첩된 모습에서 우리는 서울이 산수의 도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가 저지른 온갖 실수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여전히 그런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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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7 16:4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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