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황두진 |
 |
(0508) 서울성곽 따라 걷기-1 |
 |
|
|
|
|
|
|
여기 한 장의 지도가 있다. 처음 보면 지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림에 가깝다. 이런 것을 소위 회화식 지도라 한다. 요즘 우리가 보는 지도에 비하면 축척도 없고 거리도 정확하지 않아 정확도는 훨씬 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그림 같은 지도가 오히려 여기에 담긴 사람의 생각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음식의 성분에 대한 영양학적 보고서보다 멋들어진 시 한편이 음식의 맛을 더 잘 전달하는 것과도 같다.
이 지도는 19세기 전반에 그려진 서울, 당시 한양 일대의 지도다. 그런데 마치 우리 눈에는 두 개의 도시를 그려놓은 것 같다. 성벽과 산으로 둘러싸인 두 지역이 있고, 그 사이를 또 다른 성벽이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지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 사대문 안이다. 그렇다면 위의 지역은 어디일까? 그 안에 제법 집들이 있고, 사람이 사는 곳처럼 보이는 이 곳은 다름 아닌 북한산성이다. 서울의 주산이면서 삼각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북한산 일대를 마치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그려놓은 것이다. 지금 가 보면 험산 한중인데 이 곳에 정말 이렇게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이 두 지역을 잇는 성벽은 탕춘대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인왕산 동북사면에서 시작하여 홍지문을 지나 북한산성까지 연결되는 성이다. 게다가 이 그림에는 안 나오지만 강을 건너 동남쪽에는 남한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무려 4개의 거대한 산성이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서울이다.
우리나라 성벽의 특징은 산의 능선을 따라 지어진다는 것이다. 평지에 세워진 중국식 성과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성벽을 답사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등산을 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사랑받는 등산로는 북한산성 일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서울의 역사와 경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연 서울성벽 답사를 권하고 싶다. 이 또한 강북의 4개의 산, 즉 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을 다 넘어야 하는 것이니 운동으로서도 만만치 않다. 지적 호기심과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흔치 않은 기회인 것이다.
서울성벽을 답사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성벽 중 어느 구간에서 출발해도 좋다. 총 연장 18킬로의 서울성벽은 원래 한 줄로 이어져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입산금지 구역도 있고 성벽이 끊어져 있는 곳도 많아서 도중에 성벽을 놓칠 수 있으니 지도는 필수적이다. 어디에서 출발하건 가급적 시계 방향으로 돌 것을 권한다. 특히 오전 일찍 동대문 정도에서 출발하여 걸으면 하루 종일 해가 자기를 따라 다니며 도시를 비춰주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시작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동대문에서 남쪽 동네는 광희동으로 여기에는 광희문 일대에 서울 성벽의 흔적이 상당히 남아있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와 주거지역으로 접어들면 성벽은 오간데 없어진다. 사방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서울성벽은 애초에 능선 위에 세워졌음을 기억하자. 게다가 지금도 동과 동, 구와 구 사이의 경계이기도 하다. 지도를 보면서 주변의 높은 지역을 따라 걸으면 곧 다시 나타난다. 심지어 주택의 축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이런 것을 찾아내는 즐거움은 해 보기 전에는 모른다.
광희동을 지나 장충동에 접어들면 성벽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워낙 이 일대는 대형 주택들이 일찍 자리 잡은 곳이다. 그 과정에서 성벽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동호로를 건너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성벽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타워호텔 뒤편까지 장장 1킬로 정도에 걸쳐 서울 성벽은 주거지역과 매우 평화롭게 공존하며 달리고 있다. 특히 이 구간의 성벽에는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 조선시대판 ‘공사 실명제’의 흔적을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구간이기도 한다.
타워호텔 일대에 접어들면 성벽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여기서 다시 성벽을 보기 위해서는 타워호텔 정문으로 나와 장충단 길을 건너 국립극장 왼편에서 시작되는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그러나 잠깐, 순환도로가 시작되고 약 200미터 지점에 이르면 도로 오른쪽에 남산 테니스 클럽으로 오르는 표지가 있다. 이것을 놓치면 남산의 급한 경사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 올라가는 성벽의 장관을 놓치게 된다. 이 구간은 완전히 등산로와 다름없다. 게다가 성벽의 아주 오래된 부분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친 돌로 하부를 쌓아 올린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참을 오르다 남산 테니스 클럽 일대에 다다르면 입산 금지가 되고 여기서 답사객은 우회하여 다시 남산 순환도로로 따라 남산의 정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남산 정상, 남산 타워의 위용을 느끼며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하산을 시작한다. 이 일대의 성벽은 모습이 다소 이상한데 대표적으로 복원 공사가 잘못된 구간으로 꼽힌다. 역사유적이라기 보다는 대충 쌓은 시골 돌담길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남산 반대쪽 서울역이 바라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남산 식물원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 옛 어린이 회관 건물, 백범 광장 등이 있다. 지금은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는 공원이면서 유독 순국선열들의 동상이 많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제 시대에 이 자리에는 악명 놓은 경성 신사(神祠)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남산을 내려와 최근 주변에 공원이 조성된 남대문에 다다르면 서울 성벽의 약 1/3을 돈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산이 3개 더 남았으니 갈 길이 멀다. (계속)
|
|
2006-07-27 16:51:11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