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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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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서울성곽 따라 걷기-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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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제법 숨이 차오른다. 정상 부분에 이르면 워낙 자연 지형이 험해서 서울 성곽의 자취 또한 사라지고 만다. 자연을 성의 일부로 삼은 것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서울성곽으로부터 탕춘대성이 갈리는 길목이 나타난다. 그 탕춘대성을 계속 따라가면 서울의 또 다른 성곽인 북한산성에 이르는 것이니, 여기야말로 성곽도시 한양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의 하나라고 하겠다. 하산을 계속하면 등산로가 서울성곽 밖으로 빠져나오는 곳이 있다. 서울성곽이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부분이 바로 여기 있다. 임진왜란을 겪고 숙종 당시에 재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부분의 성곽은 칼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다. 거친 돌을 대강 쌓아올린 다른 부분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것이다.
맞은편 북악산의 탐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창의문, 즉 자하문에 이르면 서울성곽 답사자는 이제 먼 길을 우회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북악산 일대를 거쳐 응봉을 지나 혜화동에 이르기까지의 구간은 청와대 배후지역으로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이 있는 구간도 바로 여기다. 다행히 최근 발표에 의하면 혜화동에서 숙정문에 이르는 북악산의 동사면을 곧 개방한다고 하니 아쉬움 속에서도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서울 성곽 답사의 최종적인 묘미는 결국 북악산 정상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때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주인의 입장에서 자기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인데, 이 멋진 경관을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아쉬움을 달래며 답사자는 북악산 기슭을 따라 청와대 앞을 거쳐 삼청동으로 넘어간다. 거기서 감사원 옆으로 난 길, 즉 계동산길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르면 왼쪽에서부터 달려 내려오는 서울성곽을 다시 만난다. 이 길은 서울성곽 하부를 관통하여 성북동으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경신고등학교까지의 구간을 일반적으로 이 일대의 지명을 따라 혜화동 성곽이라고 부른다. 혜화동 성곽은 그야말로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이다. 아마도 서울 성곽 전체 구간 중에서 이렇게 주변지역과 잘 연계되어 있는 구간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성북동 일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개발이 많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숲과 나무가 많은 이 지역을 거대한 돌의 흐름인 서울성곽이 구불구불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운 공생관계는 혜화동 성곽이 끝나고 경신고등학교 뒷길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바뀌고야 만다. 여기서부터 혜화문까지의 구간은 그야말로 남아있는 성곽의 자취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과 같다. 우선 경신고등학교가 성곽을 타고 앉았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혹은 교회의 담장이, 혹은 고급 빌라 단지가, 그리고 공관을 포함한 많은 주택들이 서울 성곽위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광희동 일대에서 발견되는 것과 흡사한 상태인 것이다. 만약 서울성곽 전체 구간 중에서 가장 시급하게 복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을 꼽는다면 단연 이 혜화문 일대가 아닐 수 없다. 도심에서 가깝고 주변에 주거지가 밀집해 있어서 그만큼 효과도 클 것이다.
혜화문을 지나 일단 끊어진 성곽은 혜화동 고갯길을 건너 맞은편 동숭동에서 다시 이어진다. 우리가 보통 대학로 뒷산이라고 부르는 이 능선은 비록 그 높지는 않지만 엄연히 서울을 둘러싼 4개의 산중 하나인 낙산이다. 오랫동안 판자촌이 밀집해있던 지역이었으나 서울성곽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모드 정비하여 지금은 낙산공원으로 되어 있다. 낙산의 등허리를 타고 서울성곽이 달리고 있는데 이를 경계로 하여 구와 구, 혹은 동과 동의 행정구역이 나뉜다. 낙산 전체는 거대한 공원으로서 인왕산과 마찬가지로 서울 구도심을 내려다보는 근사한 전망대와 다름없다. 특히 해질 무렵 이곳에 오르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밤을 맞이하는 서울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것은 여기까지지 수고스럽게 올라온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서울의 특별한 경관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악산과 응봉에서 시작되어 성균관 대학교와 창덕궁을 거쳐 종묘에 이르는 거대한 녹지의 흐름은 장관이다. 그 끝에서 조금만 더 연장되면 바로 남산과 닿을 듯이 보이기도 한다. 세운상가 일대가 다시 재개발되면서 그 끊어진 녹지의 흐름이 다시 연결되는 것 또한 그리 요원한 일은 아니게 되었다.
낙산 등허리의 게으른 흐름을 타고 다시 도시로 내려오면 바로 거기에 동대문이 서 있다. 구도심에서 가장 낮은 지역, 그래서 서울의 물줄기는 청계천을 따라 이 동대문 일대로 모여 도성을 빠져나간다. 동대문의 원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지세가 약해서 용의 형상을 한 갈지(之)자를 하나 더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거기에 서울의 성문 중에서 유일하게 옹성을 추가하여 방어 기능을 강화하고자했다. 그러나 나라에 난리가 있을 때마다 침략자는 이 동대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오곤 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동대문 운동장이 있다. 이 일대는 거의 평지이기 때문에 성곽이 의지할 능선 같은 것이 없다. 동대문 운동장 한 가운데로 서울성곽이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정도로 충분하다. 여기서 길을 건너면 처음 출발했던 광희동 일대이니 답사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총 연장 18킬로의 서울 성곽,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아직 많은 부분이 남아 세계적 대도시 서울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세월이 흘렀고 시대도 변했지만 서울은 여전히 성곽도시의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성(城)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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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7 16:5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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