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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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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북촌: 서울 속의 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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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묻는다: 서울에서 가장 자기 나라를 생각나게 하는 장소는? 물어보는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 몇몇 답들을 기대하고 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테헤란로, 혹은 쇼핑의 거리 명동, 트렌디한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한 청담동, 거대한 국제회의장과 전시장, 최고급 호텔이 늘어서 있는 삼성동 등등. 그러나 뜻밖의 대답이 들린다: 북촌. 듣는 사람은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소위 한옥마을로 불리는 북촌, 어떤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이라고나 할 만한 이 동네에서 이들은 자기 나라를 떠올린단다. 특히 유럽 출신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세계의 오래된 도시들, 그중에서도 특히 유럽이나 미국 등의 도시들에서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발달되어 있다. 심지어 현대건축의 전시장이라고나 할 만한 뉴욕 같은 도시에도 잘 보존된 역사적 건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파리 같은 도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프라하 같은 도시에는 너무나 완벽하게 역사적 환경이 보존되어 있어 어떻게 현대도시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장소로 선정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동 국가들도 그렇고 이웃 중국만 해도 작은 도시 하나가 옛 모습 그대로 잘 남아있는 경우는 흔하다. 운남성의 속하고성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라면 서울의 역사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에서 자기가 살던 곳의 분위기를 떠 올릴 만하다. 어차피 현대건축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하다. 어지간히 독특하거나 뛰어나지 않으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낯선 도시에 가면 현대건축을 머리 속에서 지우고 그 나머지들을 보게 된다. 그 나머지가 잘 남아 있다는 것은 그 도시가 역사를 소중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건물의 형태가 다르고 낯설게 느껴지지만, 세월의 무게와 누적된 아름다움에서 사람들은 뭔가 공통점을 찾는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거기에서 자기가 살던 도시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잘 보존된 역사 환경이 갖는 매력과 호소력은 이처럼 어마어마하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이미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북촌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그냥 거기에 사는 정도가 아니다. 한옥을 보존하고 그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누구보다도 열심인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진 사람들만 해도 당장 열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어떤 독일인이 직접 한옥 집짓기를 공부하여 상당히 모범적으로 낡은 한옥을 고쳐낸 경우는 이제 북촌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다.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은 이 곳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골목길을 걸어 오르내리며 주민의 한 사람을 자처하는 프랑스 사람도 있다. 어떤 영국인 기자는 한-중-일의 스타일이 묘하게 절충된 특이한 원서동의 한옥에 산다. 천장이 낮아 집안 어떤 구석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다녀야 한다고 하면서도 한옥에 사는 즐거움을 강조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서로 이웃에 살던 두 외국인 가정 간에 한옥 공사와 관련된 법적투쟁이 발생, 이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한 외국인 가정이 오래된 한옥을 사서 고치고자 했는데, 이 이웃의 다른 외국인 가정이 그 고치는 방법과 활용방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 그 내용이다. 가볍게 생각하면 건축공사와 관련된 흔한 민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옥의 복원과 활용에 대한 진지한 생각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한 쪽은 한옥의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쪽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한옥도 변화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이들 간에는 심지어 출신 국가에 따른 미묘한 문화적 입장의 차이 같은 것도 감지되었다. 한 때 우리가 서울에서 가장 고리타분한 동네로 생각했던 바로 그곳에서 그 동네의 바람직한 가치를 놓고 외국인들끼리 열심히 다투는 그런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북촌은 우리만의 동네가 아닌 셈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북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이제 변화가 필요한 것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북촌은 어떤 고립된 특별한 장소, 더더구나 우리가 독점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 환경이 보존되어야 하는 장소라는 측면에서 북촌은 국내적으로는 전주 교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남원 홈실마을 등과,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전 세계의 수많은 역사보존지역들과 관련하여 생각될 필요가 있다. 이런 지역들과 서로 수평적 연계를 맺고 인적, 문화적 교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에도 한옥이 있고 개성 한옥마을처럼 상당히 잘 보존된 지역이 있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서울시의 한옥보존 정책도 그 세부적 내용과 방향성에 대한 중간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이라는 특수성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나라, 아니 나아가 인류 역사 환경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보편성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북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북촌의 아름다움은 골목길의 아기자기한 패턴, 파도처럼 연속되는 기와지붕의 유장한 흐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웅대한 자연환경 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촌은 그 바로 앞에 서울의 도심지가 자리 잡고 있기에 더 큰 가치가 있다. 똑 같은 환경이 서울 변두리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면 그 가치는 오히려 줄어들었을 것이다. 가회동 31번지 골목길을 올라 뒤를 돌아보면 서울 시내가 손에 잡힐 듯이 한 눈에 들어온다. 넘실거리는 기와지붕 위로 현대 도시가 전개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렇다, 북촌은 서울의 일부다. 여기는 살아있는 마을이며, 도시기능의 일부를 분담하는 지역이고, 서울의 인공과 자연을 연결하는 완충지대이기도 하다. 위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코뮤니티를 지향하는 서울의 미래를 엿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지혜를 시험하고 키워가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가 직면하고 있는, 지극히 흥미로운 현대적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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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7 17:0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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