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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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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뒤에서 본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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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나 가장 그 도시다운 경관이 있다. 뉴욕이라면 아마도 맨하탄의 최남단, 배터리 파크 부근의 고층빌딩 밀집 지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넓은 강물 위로 우뚝우뚝 솟아오른 빌딩 숲, 그것은 사람이 만든 인공물이면서도 거친 자연의 힘을 담고 있는 도시, 뉴욕의 성격을 매우 잘 보여준다. 프랑스 파리라면 아마도 어느 가난한 화가의 다락방 창문에서 바라본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과 그 위로 솟아 오른 기념비적 건축물들일 것이다. 보통의 건물들과 특별한 건물들이 이루는 확연한 대비는 철저한 통제와 계획의 도시 파리의 성격을 여과 없이 드러내준다. 북경이라면 어떨까. 역시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의 남북을 관통하는 수 킬로의 장대한 도시축이 제국의 수도로서 북경이 갖는 장엄한 느낌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북경은 사람의 기를 죽이기 위해 만든 도시이며, 그 의도는 이러한 과장된 도시축을 통해 명백히 전달되고 있다.
서울이라면 어떨까? 물론 서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선유도 공원에서 바라본 한강과 그 배경의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남산 타워에서 바라본 파노라마적 경관을 꼽을 것이다. 시선을 강남으로 옮기면 선릉의 거대한 녹지 위로 우뚝 솟은 테헤란로의 고층빌딩이 이루어내는 극적인 대비, 혹은 다시 살아난 양재천에서 바라 본 타워 팰리스 일대의 장관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담고 있는 경관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이 질문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외로 그 대답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남산에서 바라 본 서울 강북 사대문의 모습이 가장 자주 등장했던 것 같다. 서울을 소개하는 책자치고 이 경관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없다. 여기에는 서울을 겹겹이 둘러싼 산이라는 자연적 환경, 경복궁이나 종묘 등의 역사적 장소들, 그리고 제법 높이 솟은 고층빌딩이라는 현대 도시의 요소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적인 조건도 좋다. 남쪽의 태양을 등지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쪽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햇살을 가득 받은 도시가 펼쳐지는 장관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관은 그 시각적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맥이 빠지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변에서 중심을 바라본 시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밖에서 안을, 손님이 주인을, 그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서울다운 경관은 무엇일까? 그것은 뒤에서 앞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산의 반대편에서 남산 쪽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주인의 입장에서 자기 도시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상징적으로는 제왕의 시선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이 경관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서울다운 경관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니?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여기에는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다. 즉 이런 시선으로 서울을 보기 위해서는 서울의 북쪽에 있는 산, 즉 북악산을 올라야 하는데, 이 산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입산금지였던 것이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공작원이 북악산 일대에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이후 북악산은 일반인이 오를 수 없는 산이 되었다. 그래서 이 산은 서울을 대표하는 산이면서도 정작 올라 본 사람은 거의 없는 매우 희한한 존재였다. 적어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산이 이제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비록 개방하고 있는 구간이 산 전체가 아니라 숙정문과 촛대바위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그나마 안내원, 심지어 군인들의 호위를 받아야하는 부자유스러운 나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은 나라의 주인인 시민들이 마땅히 보고 즐겨야 할 이 도시의 대표적인 경관을 이제 다시 돌려받았음을 의미한다. 숙정문을 지나 촛대바위에 이르면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있다. 거기서 서울을 내려다보라. 아, 우리 도시에 이렇게 거대한 녹지가 있다니! 그리고 그 녹지의 파도 속에 두둥실 떠오르는 경복궁의 전각들! 광화문 너머로는 도시의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넉넉한 몸집의 남산은 이 모든 것을 그 너른 품에 안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시 눈을 들어 그 너머를 보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띠, 즉 한강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 도시의 매연과 운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타오르는 듯 하늘 위에서 너울거리는 관악산이 보인다. 그렇다, 북악산에서 바라 본 서울의 모습에는 이렇게 산과 물, 자연과 인공,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한 눈에 들어온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거니와 서울에서도 이런 경관은 바로 여기 한 군데 뿐이다. 이 경관이 이제 다시 시민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북악산에서의 바라본 서울의 경관은 매우 커다란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 북악산이 개방되기 몇 달 전, 나는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라는 책을 출판했다. 거기서 이 경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 경관을 볼 수 없음을 비통해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그린 스케치가 그 책의 표지가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책이 나오고 얼마 후에 북악산이 개방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 책의 영향이었다는 주장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하나를 확인했을 뿐이다. 꿈에 그리던 북악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면 지난 5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비로소 주인의 입장에서 내가 사는 도시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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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7 17: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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