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황두진 |
 |
서울시나리오(공간사 041130) 서울은 항구다 |
 |
|
|
|
|
|
|
마포나루
구한말 우리나라를 찾았던 많은 외국인들은 마포나루에서 배를 내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고 전해지는 서교동 일대의 너른 채마밭이 그들이 처음 밟아 본 조선 땅이었다.
항구로서의 마포나루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마포나루는 하중도인 여의도를 거쳐 시흥으로 연결되는 길목이었다. 이에 따라 서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새우, 조기 등의 수산물이 마포에 집중되었다. 또한 마포나루는 전국적인 조운(漕運)의 최종 집결지였다. 조세 중에서 현물로 내는 곡식이나 특산물 등을 실어 나르기 위한 방법이 바로 조운이다. 산이 높고 강이 깊은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상 조운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미 통일신라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운영되다가 고려시대에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국가의 중요한 물류 시스템이 되었다.
조운 시스템은 이렇게 구성된다. 일단 각 지역의 수확물을 집결하기 위한 조창(漕倉)이 있었다. 산지에서 조창까지의 운반은 달구지 등을 이용, 육로로 해결하였다. 이 조창들은 주로 서해안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어귀에 있었다. 여기서 조운선을 이용, 수확물을 서해안을 거쳐 한성으로 옮기게 되는데 한성의 용산과 서강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경창이 있었다. 이 경창으로 가는 물품들이 집결되는 곳이 마포나루였다.
경강상인(京江商人)
경강이란 뚝섬에서 양화진에 이르는 한강의 부분을 가리킨다. 문자 그대로 수도의 강에서 활동하는 상인인 이들은 의주의 만상, 개성의 송상등과 더불어 조선후기의 가장 강력한 상인집단이었다. 특히 대동법이 실시되고 국가의 조운 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조선 후기에 이들은 비약적인 약진을 하였다. 우선 이들은 조운에 참여함으로서 국가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였다. 일종의 아웃소싱(out-sourcing)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주로 지방에 농경지를 갖고 있었던 서울 양반들의 소작료를 실어 나르는 역할도 겸했다. 이렇게 수송 및 물류 사업자로 시작한 이들은 점차로 그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그들은 한강을 중심으로 서해안 일대를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운반하고 판매했으며, 나중에는 선박의 건조에까지 손을 뻗었다. 심지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선박을 건조하기도 했다. 일종의 근대적 종합상사로서의 기능을 한 셈이다. 이 경강상인들의 세력은 국가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곡식을 물에 불리거나, 혹은 중간에 착복하거나, 심지어 배를 일부러 침몰시키는 등의 수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 나아가 매점매석 및 담합을 통해 미국의 가격을 폭등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출현은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이 경강상인들의 활동 중심지가 바로 마포나루였던 것이다.
마포나루의 쇠퇴
마포나루가 쇠퇴한 결정적인 계기는 철도의 등장이었다. 경인선이 1899년에 개통되고 이어 경부선이 1900년에 개통되면서, 물류의 중심은 점차로 강이나 바다가 아닌 육지로 옮겨졌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양분되면서 한강을 통한 서해로의 접근이 차단되면서 마포나루는 활기를 잃었다. 나루터로서의 기능도 한강에 새로 걸린 수많은 다리들에 내 주면서 마포나루는 항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한강유람선
한강종합개발이 완료되고 한강에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을 앞둔 1986년부터였다. 한강유람선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왕복코스와,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른 편도 코스가 있다. 편도코스는 잠실과 여의도 사이를 운항하며 소요시간은 한 시간이다. 이것은 어떤 극단적인 상황, 즉 도로상의 극심한 정체가 지속되는 경우 유람선이 잠실과 여의도를 잇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뉴욕의 맨해튼과 뉴저지 사이, 혹은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사이를 오가는 페리처럼 단순 관광용이 아닌 일상적인 도시 운송수단의 하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강의 상하류에는 각각 수위를 조절하는 수중보가 설치되어 현재로서는 그 너머 지역으로의 수상 교통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분명히 이전에는 한강에서 배를 타고 강원도까지, 심지어 남한강을 거쳐 경상도 지역까지도 왕래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항구도시 서울?
한강 하구가 다시 개방된다면 서울은 어떻게 될까. 수중보와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낮은 하상을 파서 수로를 개발한다면? 한강 유람선처럼 평저선이 아닌, 바다에서의 항해가 가능한 배가 마포까지 들어올 수 있다면? 유사 이래 처음으로 항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서울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마포 혹은 여의도 어딘가에 국제항이 건설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세관이 있고 마치 공항처럼 시내 다른 곳의 도심터미널을 통해 미리 출입국 수속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국제항에는 버스 및 택시 정류장은 물론이고 지하철역이 설치된다. 물론 한강을 이용한 크고 작은 수상교통 수단들도 여기에 집결된다.
“...... 분당에 사는 사업가 이응진씨. 오늘은 그가 상해로 출장을 떠나는 날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 그러나 이번 여행만큼은 좀 다른 경로를 밟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번 여행은 단순히 비즈니스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 20주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가 하는 사업은 각종 운동기구 제작. 그는 자기 회사에서 개발한 제품들을 그 동안 지속적으로 중국 시장에 공급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품격 헬스클럽 체인이라는 또 다른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가 노린 가장 큰 시장이 바로 중국이었고, 상해는 그 사업의 중심지였다. 그의 중국인 사업 파트너는 마침 그의 결혼 20주년 기념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서울에서 상해로 오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라고 귀띰했던 것이다. 상해에 도착하면 멋진 서프라이즈 파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응진씨 부부는 일단 택시를 타고 삼성동의 도심터미날에 도착했다. 그가 해외여행을 할 때면 항상 들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가 찾아간 카운터는 이전과 달랐다. 항공사 카운터가 아닌 국제유람선 카운터였던 것이다. 거기서 체크인을 마치고 홀가분한 몸차림으로 길을 나선 이들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유람선이 출항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해가 점점 서산을 향해 기울어지는 시간, 그들은 다시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바라본 한강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많은 배들이 그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배들은 모두 일정한 기준에 따라 채색이 되어 보기만 해도 어떤 배인지 알 수 있었다. 푸른색 배들은 청계천과 한강 사이를 운항하는 페리들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대중교통수단이지만 관광 목적으로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특히 청계천에서 중랑천을 거쳐 한강으로 접어드는 성수대교 일대의 광경을 최고로 쳤다. 그 곳에서는 맞은편 압구정동 일대의 툭 튀어나온 부분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였다. 녹색 배들은 한강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며 미사리에서 행주대교 까지를 연결하는 것들이었다. 노란색은 그 보다 더 먼 지역, 특히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까지 연결되는 장거리 노선이었고 붉은색은 장거리이기는 하되 방향이 달라서 한강 하류를 지나 서해안의 항구들과 연결되는 연안여객선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오른 배는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국제여객선이었다. 우리나라 국적의 이 호화유람선은 앞으로 며칠간 이들을 태우고 여의도를 떠나 잠시 인천항에 들렀다가 중국의 대련, 청도를 거쳐 상해까지 갈 예정이었다. 이미 서해안 일대는 수많은 유람선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중국과 한국의 각 항구도시들은 저마다 경쟁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려 애썼다. 이렇게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서해를 안방 삼아 오가고 있는 모습을 바다 건너 일본은 다소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객선은 유장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예인선에 이끌려 항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여의도의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에는 사람들이 창가에 달라붙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이 일대 서울의 풍경은 완전한 항구도시의 모습이었다. 거리에는 마도로스 복장에 파이프를 비껴 문 외국선원들이 활보하기도 했다. 인근 지역의 간판들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심지어 러시아어에 간혹 노르웨이어도 눈이 띄었다. 여의도 공원 일대는 완전한 국제무역지구가 되어 많은 호텔과 컨벤션 센타가 들어섰다. 인천공항에 국제공항으로서의 지위를 내줬던 김포공항마저 다시 일본과 중국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셔틀의 운항 횟수를 늘리고 있었다. 항구도시로서 다시 태어난 서울의 모습을 여기서처럼 잘 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배가 완전히 강 중간에 이르자 뱃머리는 한강 하류를 향했다. 예인선들이 떨어져나가고 배는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응진씨 내외는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도시의 부산함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대기 시간이라고 해도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과 항구에서 보내는 시간은 왠지 느낌이 달랐다. 게다가 여기에는 그 비행기 안의 좁고 답답함 같은 것은 없었다. 이 여행에는 시작부터 낭만과 여유로움이 있었다.
배가 한강 하류를 향해 나아가자 점차로 물살이 변하면서 마치 물이 싸우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마침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이것은 서해안의 밀물이 한강을 타고 역류하는 현상이고 알려주었다. 겸재 정선이 종해청조(宗海聽潮)에서 그렸던 바로 그 자연현상이었다. 마치 그림의 일부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점차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도시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강하구는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그야말로 거친 자연의 풍광을 유지하고 있었다. 배는 밀려드는 조수와 싸우며 서서히 너른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거대도시 서울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은 이런 장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
|
2006-07-13 15:47:08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