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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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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이찌닌마에'와 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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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에 ‘이찌닌마에’(一人前)라는 것이 있다. ‘한 사람 앞에’라는 뜻으로 일본인들의 개인주의를 설명하는데 종종 쓰인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가 바로 식탁을 차리는 방식이다. 일본 식당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음식에서 식기에 이르기까지 남과 나누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몇 년 전 일본 여행 도중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탕을 끓이거나 고기를 굽는 작은 화로까지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놓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냥 단순하게 ‘놀랐다’고 하면 될 것에 대해 ‘기겁’이라는 단어까지 쓰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식사습관 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양보할 수 없는 철학 같은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찌닌마에’는 단순한 식사습관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찬은 물론, 심지어 국이나 탕 까지도 한 군데 담긴 것을 서로 나눠가며 먹는 것을 보면, 확실히 두 나라가 다르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 자신을 ‘개인’, ‘자립’, 이런 것 보다는 ‘전체’, 협력’ 등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야말로 정(情)으로 똘똘 뭉친 한 가족 같은 나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식사습관이야말로 이런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종종 소개되기도 한다. 심지어 매우 뛰어난 미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확실히 이렇게 밥을 먹으면 식탁 위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음식을 덜 낭비하게 되는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그러나 과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까?
‘우리의 식사습관은 중국사람 보다는 일본사람에 더 가깝다. 다른 사람의 젓가락은 절대로 사용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각자 자기의 밥상과 밥그릇, 국그릇을 따로 가지고 있다...... 중국사람은 공동접시에 음식을 담아 여럿이 나눠 먹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중국사람 보다 병에 훨씬 덜 걸리는 이유이다......우리가 중국사람 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다......모든 식사시중은 따로 받는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나라의 식사습관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사실은 바로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기록한 ‘아리랑’에서 발췌한, 김산 자신의 구술이다. 김산이 이 기록을 남긴 것은 지금부터 약 70-80년 정도 이전이다. 지금 생존해 계신 노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각종 그림들, 특히 각종 계회도 같은 것을 보면 밥과 국그릇, 반찬그릇, 숟가락, 젓가락, 심지어 술병에 술잔까지 모두 한 사람씩 따로따로다. 아예 밥상부터 각자 하나씩 따로 받는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은 또 어떤가. 이 소설에는 수많은 식사장면이 나오는데, 아버지와 아들, 혹은 주인과 손님이 겸상하는 것을 특별한 경우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나머지 경우 겸상이란 없다. 철저하게 독상이 원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밥상마저도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는 이 철저한 개인주의적 사고를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김산의 조선과 우리의 한국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실제로는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러한 왜곡은 누군가에 의해 매우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이 분명 그러했을 것이요, 해방 이후의 독재정권들 또한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우리의 본성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전체를 위해 협력하고, 서로 정을 나누는 사회의 모습을 과장되게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정치와 역사가 무서운 것은 이렇게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노는 모습까지도 바꿔버린다는데 있다. 심지어 이렇게 바뀐 사실 조차도 모르고 ‘이것이 원래 우리의 모습이겠거니’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두려운 현상이다.
홍명희와 김산의 글, 그리고 조선 시대의 여러 회화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전통적 식사습관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일단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식사습관이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이며, 이것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서 보다 확실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식사습관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면, 우리의 식생활은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랐을 것이다. 나 같은 건축가들이 무의식적으로 커다란 식탁만을 그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주방의 배치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체의 한 부분’이 아닌, ‘온전한 전체로서의 개인’임을 실생활 속에서 더욱 실감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를 잘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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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7 18:5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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