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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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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알프(06하반기) 음악이 고마울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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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관련해서 많은 복을 받아왔다. 그 시작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열렬한 클래식 음악 팬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는 열심히 음반을 모으셨고 당시로서는 꽤 좋은 오디오도 장만하고 계셨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등산을 가시거나 책을 읽으시거나 아니면 오디오를 가지고 혼자 노셨다. 아버지의 가장 즐거운 소일거리는 엘피판에 담긴 음악을 릴 녹음기로 녹음하는 것이었다. 짐작에 엘피판은 자꾸 들으면 닳으니까 테이프에 옮겨놓고 들으려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타자기로 열심히 녹음 리스트를 만드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동요보다 바하나 모차르트를 더 일찍 접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기만 하면 온 집안에 음악이 울려 펴지고 있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바하 칸타타의 선율을 휘파람 불며 친구들과 제기를 차고 놀았다.
우리 삼형제는 모두 악기를 배웠다. 누나와 형은 피아노를 배웠고 나는 바이얼린을 배웠다. 누나는 결국 음악을 전공으로 택했는데 한 동안 피아니스트였다가 지금은 아예 관심을 종족음악학(ethno-musicology)으로 돌려서 절반은 학자가 되었다. 누나는 지금 생각해도 음악성이 참 좋았다. 내가 라디오에서 어떤 노래 같은 것을 듣고 따라 부르고 싶으면 즉석해서 반주를 해줬다. 내 목소리와 키가 잘 안 맞으면 위로 아래로 쉽게 조를 바꿔주기도 했다. 기타도 잘 쳤고 노래도 잘 불렀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치는 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나름대로 타고 난 재능이라는 것을 알았다.
형은 음악을 한다기보다는 체조하듯이 음표를 정확히 치는 것에 주로 관심이 있었고 나는 몸보다는 마음이 항상 앞섰던 듯 하다. 다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악기를 끈질기게 손에 잡기는 했다. 결국 유학 시절 한 동안 레슨을 받다가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 그분에게 누가 될까봐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대학의 작은 강의실을 빌려 ‘미국 데뷔 콘서트’를 갖고는 그 길로 ‘은퇴’해 버렸다. 지금도 악기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써 오던 악기라 지금도 가끔 꺼내보면 그 당시의 냄새가 난다. 악기라기보다는 일종의 타임캡슐이 된 셈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주로 듣는다. 그리고 종종 음악회에 간다. 음악회에 관해서도 나는 큰 복을 받아왔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나에게 계속 음악회 표를 사주셨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의 음악회는 이대강당에서 있었던 정경화와 암스테르담 콘서트 헤보우 오케스트라의 협연,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공연에서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의 무대였다. 대학 시절에는 주변에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단체로 음악회에 많이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좋지 않은 관행이었지만 그 당시는 왜 그리 공짜표가 많았는지 ‘과연 누가 돈 내고 음악회에 갈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지금은 내가 회개를 했는지, 돈을 내지 않으면 왠지 음악이 재미없다. 아니 만사가 공짜는 다 그런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클래식 음악, 즉 서양의 고전음악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그래서 다른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다. 아주 자유로운 태도로 장르나 국적 구별 없이 그리 심각하게 따지지 않고 들었다. 솔직히 음악이란 타이틀이 붙은 것치고 싫은 것은 없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거의 절대적인 음악이었던 서양의 고전음악이 여러 다양한 음악 중의 하나로 내 마음 속에 다시 자리 잡았다. 나중에 들었지만 우리 누나는 이런 고민을 한참 하다가 결국 종족음악학자가 되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절대성을 상실한 서양 고전 음악이 훨씬 더 친밀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크, 심지어 그 이전의 르네상스 음악을 통해 종류가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고, 가끔 들어보면 현대 음악에도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면서 점차로 선호하는 음악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곡을 듣지 않게 된지 이제 한참 되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실내악이 좋아졌다는 말인데 그것도 사중주 보다는 이중주, 이중주 보다는 독주, 그것도 무반주 독주로 아주 좁게 줄어들었다. 어떤 악기든지 혼자 연주하는 것에는 말로는 설명 못할 의지 같은 것이 느껴져서 좋다. 아마 연주자는 외롭겠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다가온다.
지금 내게 음악이 가장 고마울 때는 유난히 바쁘고 골치 아픈 어느 날, 문득 켠 라디오에서 어떤 독주 악기의 음악이 진하게 흘러나올 때다. 이럴 때면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나는 잠시 일을 멈추고 그 앞에 서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 이야기는 당시 나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음악에 관한 한, 나는 여전히 복 받은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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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7 10:2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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