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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3 15호 통권143) 일본 이야기
  

'카페 뤼미에르’를 본 이후 다시 일본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구정 연휴를 해외에서 보냈던, 그래서 언론에서 가벼운 질타의 대상이 되었던, 저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갔던 곳은 혼슈와 시고꾸 사이의 바다, 즉 세또나이까이에 있는 작은 섬인 나오시마였다. 가는 길에 유명한 역사도시인 구라시키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여행의 결과,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세 가지 극단을 보고 온 것 같다. 굳이 거기에 이름을 붙이자면 각각 ‘너저분한 일상’, ‘잘 포장된 역사’, 그리고 ‘비장한 아름다움’ 정도일 듯 하다.

너저분한 일상
내게 ‘일본’, 그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안하지만 바로 이런 이미지다. 일본은 참 너저분하다. 도시가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렇고, 일상 용품들의 모습들이 또한 그렇다. 잡지나 간판, 옷차림 등을 통해 접하는 이들의 취향은 심각할 정도로 유아적이다. 겨울에도 유난히 짧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는 만화가 그려진 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에서 이런 풍경은 완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마치 동전의 양날처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일본의 이런 모습이 가장 편안하고 그래서 덜 위협적이다. 그리고 동양권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본이 모습이 가장 신기하다.
‘카페 뤼미에르’와 같은 영화가 그리고 있는 일본의 모습도 이렇다. 그 시선 그대로 우리나라로 옮겨와도 별로 어색하지 않게 우리의 일상 또한 잘 담아낼 수 있을 듯 하다. 그래서 영화계 안팎에서 종종 들려오는 이야기처럼 우리나라 감독들이 일본 영화를 아주,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많이 보는지도 모른다.

잘 포장된 역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특히 오래된 도시들을 좋아한다. 교또, 나라는 물론, 니꼬, 가나자와, 구마모또 등 여러 도시를 다녀봤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잘 정리되고 포장되어 있는 도시를 하나 꼽으라면 이번에 다녀온 구라시키다.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강변에 수 백 채의 전통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간혹 현대식 건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철저하게 과거의 미학에 순종하며 들어서 있다. 수 백 미터에 걸쳐 완벽하게 남아 있는 구도시의 좁은 거리를 걸으면서 ‘도대체 이런 삶이 가능한 조건이란 어떤 것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나자와 같은 곳은 역사 보존을 위해 ‘조례 폭탄’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제도를 필요로 했다.) 강 한 가운데서 우아하게 깃털을 다듬고 있는 백조가 등장하는 순간 경악했다. 여기서는 동물도 이미지 사업의 동반자였다. 그러고 보니 나라의 공원에는 사슴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모습을 배경으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나비부인’적, ‘라스트 사무라이’적 시선이고, 더 나아가면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본이 가장 ‘일본적’이다. 그리고 일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비장한 아름다움
이번에 갔던 나오시마에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근작인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이 있다. 문자 그대로 산꼭대기를 파서 수 개 층에 달하는 미술관을 땅 속에 지은 것이다. 전시물은 불과 몇 점이 되지 않는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2점, 모네의 그림 몇 점, 그리고 월터 데 마리아의 설치 작품, 이게 전부다. 이들이 전시되고 있는 그 공간은 숭고함과 장엄함이 극단에 이른 나머지 비장감이 감돈다. 여기서 예술은 더 이상 현실의 일부가 아니라 초월적인 그 무엇의 반열에 올라가 있다. 여기서는 오히려 사람이 초라한 존재다. 매 전시실마다 지키고 서 있는 젊은 안내자들에게는 앉아서 쉴 의자조차 주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몇 시간이고 서서 극도의 친절함으로 방문객들을 안내한다. 이런 정신병동적 분위기는 분명히 의도된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초월적 미학은 지긋지긋하게 너저분한 일본의 일상에 대한 일본 예술 엘리트들의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일본만큼 일상적 삶의 모습과 최정상 예술가들의 미학 간의 괴리가 큰 나라도 드문 것 같다. 한 쪽에는 무질서하고 유아적인 삶의 풍경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는 펜이나 붓, 카메라를 칼처럼 사용하는 사무라이 미학의 세계가 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과연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일까.
2007-03-06 09: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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