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의 글을 소개하는 게시판입니다. 상업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퍼가실 수는 있으나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황두진에게 있습니다.

  황두진
  (0703 16호 통권144) 진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몬도비노(Mondovino)
  

서울 북촌에는 내가 설계한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얼마 전 그곳에 들렸다가 마침 주인으로부터 재미있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함께 보자는 권유를 받았다. 마침 주말 오전의 한가한 시간이어서 레스토랑 한 구석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막연한 호기심에서 건성건성 보다가 점차로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제목은 ‘몬도비노’(Mondovino), 우리말로는 ‘포도주 전쟁’으로 알려져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적어도 나에게는 와인이나 와인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끊임없이 와인을 건축으로,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는 프랑스의 토착 와인을 ‘한국 전통 건축’으로, 로베르토 몬다비로 대변되는 거대 기업형 와인을 그냥 통상적인 의미에서 ‘글로벌 건축’으로 바꿔가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영화를 감상하는 좋지 않은 태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단지 와인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사람들은 ‘떼루와’(terroir)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나는 이전에도 이 레스토랑 주인과 ‘떼루와’를 어떻게 실감나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풍미’(風味)에서 ‘지기’(地氣), 심지어 ‘지덕’(地德)에 이르는 수많은 후보들이 거론되었지만 뚜렷한 결론은 못 내렸다. 물론 ‘떼루와’가 단순히 흙과 관련된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 문화, 습관 등 실로 다양한 요소의 복합체인 것이다. 반면 미국인들로 대변되는 기업형 와인 메이커들은 ‘브랜드’라는 표현을 쓴다. 브랜드에는 이것이 상품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다시 말해서 생산자 보다 소비자가 우선되는, 그래서 대중의 기호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출 패턴을 연구하고,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결과적으로 문화 보다는 상품성을 추구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전통적인 프랑스 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브랜드 와인은 와인도 아니며 와인 그 자체를 부정하는 존재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 일관 이런 구도를 유지하며 객관적으로 보이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누구와 공감하고 있는가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결국 나는 의문에 삐졌다. 과연 이 영화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오로지 프랑스 와인만이 와인이며 미국의 기업형 와인은 정말 완전히 쓰레기 같은 존재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매니아급은 결코 아니지만 와인을 적당히 즐기는 편이어서 그때그때 기분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칠레, 심지어 어떨 때는 순전한 호기심에서 미국 와인도 ‘상대적'으로 즐겁게 마셔온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입장 정리를 할 것인가?
게다가 그 프랑스 와인은 과연 그렇게 순수한가? 즉 보르도와 부르고뉴산 와인이 오늘날과 같이 세계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그 기준, 즉 ’AOC'라는 표준화된 산업적 등급제도가 있지 않았던가? 결국 어떻게 보면 현명한 산업화의 혜택을 가장 입은 사람들이 ‘떼루와’라는 신비화된 개념을 동원하여 또 다른 종류의 와인일 뿐인 다른 것들을 일부러 무시하려는 것은 아닌가? (이 영화에는 “우리는 그냥 미국 와인을 만들어 열심히 팔고 있을 뿐인데 왜 우리를 비난하는가?”라는 항변도 등장한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는 굳이 프랑스인들의 고집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런 미국 와인과 같은 ‘들러리’가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로마네 꽁띠, 뻬트뤼스 같은 프랑스 와인이 지고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승자의 여유로 가볍게 무시하면 될 일을 이렇게 격렬하게 비난하는 이유가 혹시 다른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런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결국 우리나라의 한옥도 이렇게 ‘떼루와’를 고집하다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멸종하다시피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고전 한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 비싸고, 너무 고급이고, 너무 일부의 사람들만을 위한 집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떼루와’를 논하기 이전에 아예 한옥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고, 그 자리에는 브랜드화된 기획 상품인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그래서 나는 아파트를 비난하기 보다는 오히려 'AOC'처럼 적절하게 산업화된 한옥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한옥들이 많아질수록 원래의 오리지날 고전 한옥들의 가치는 오히려 더 올라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시간의 두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 ‘몬도비노’는 내가 건축가로서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다른 소재를 통해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독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과연 진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늘 밤 우리의 ‘떼루와’가 물밀 듯이 밀려오는 소주나 한잔 하면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2007-03-06 09:25:42


   

관리자로그인~~ 전체 113개 - 현재 3/8 쪽
83
황두진
2008-12-02
1263
82
황두진
2008-12-02
1144
81
황두진
2008-12-02
1127
80
황두진
2008-12-02
1193
79
황두진
2007-03-19
2397
황두진
2007-03-06
2171
77
황두진
2007-03-06
1999
76
황두진
2007-03-06
1939
75
황두진
2007-03-06
1948
74
황두진
2006-11-27
3078
73
황두진
2006-11-10
2221
72
황두진
2006-07-27
1700
71
황두진
2007-01-26
1996
70
황두진
2006-12-28
2016
69
황두진
2006-11-27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