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의 글을 소개하는 게시판입니다. 상업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퍼가실 수는 있으나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황두진에게 있습니다.

  황두진
  (0703 17호 통권145) 궁극의 유목민적 공간, 노름판: 영화 ‘타짜’의 공간
  

‘타짜’를 봤다. 그것도 개봉관에서가 아니고 동네 가게에서 빌린 디브이디로 집에서 봤다. 영화의 성패가 지나치게 개봉관 흥행에 집중되어 있다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고려하면, 관객으로서 나는 비교적 권장할만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영화를 보면 도중에 좀 떠들어도 되고, 영화 보면서 팝콘과 콜라가 아닌 다양한 메뉴, 심지어 풀코스 저녁 식사를 즐길 수도 있고, 또 중요한 부분은 다시 볼 수도 있다. 도끼로 손목을 자르거나 ‘고함마’(건축 현장 용어다!)로 손을 내려치는 소위 ‘빨래질’을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 이 영화에는 유달리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 많았다. 굳이 김혜수의 전라신이 아니더라도.
그러나 ‘타짜’는 적어도 나를 위한 영화는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도박이나 노름 종류와는 담을 쌓고 산다. ‘섯다’와 ‘고스톱’의 차이를 모르며, 각각의 화투장이 어떤 숫자를 의미하는지도 거의 알지 못한다. 저 유명한 학원 노름의 대명사 ‘마이티’를 만들어낸 모 대학 공대 출신이면서도 그 소중한 문화유산을 접할 기회도 없었다. (물론 친구 중에는 등록금을 날렸던 녀석들이 몇몇 있다. 지금은 다 멀쩡한 사회인이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사행성 행위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심심풀이로 치던 민화투가 전부였다. 그러니 프로페셔녈 노름꾼이 대거 등장하는 이 영화가 나에게 감칠 맛나게 다가왔을 턱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뽀찌’라는, 인도주의적이며 매력적인 단어를 접했으며, ‘호구’가 내가 알고 있던 그런 의미로 다른 분야에서도 널리 통용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재미있어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 노름판의 풍경이었다. 대충 세 가지 정도의 공간 내지는 장소가 등장하는 듯 했다. 그 하나는 고정시설이다. 여주인공 정마담이나, 왠지 모르게 어리숙하더니 결국 좀 황당한 죽음을 맞이하는 앤티 히어로 곽철용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소위 그 부류다. 운영주체에 따라 꽤 근사한 인테리어를 과시하거나, 아니면 군내 풀풀 나는 다락방 같은 분위기이기는 해도, 하여간 한 장소에서 운영하는 정착형 시설이 그 첫째다. 그 다음은 임시로 설치하는 일종의 떳다방식 공간이다. 정마담 등이 원정 기지로 ‘공사’하여 조성하는 임시 노름판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공사’라는 단어는 영화계에서는 통상 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사업의 특성상 비상시 탈출 경로 등이 매우 명확하게 설계되고 있는 일종의 ‘프로젝트 공간’이다. 마지막은 그야말로 게릴라성, 침투성 노름 공간인데, 가구공장에서 트럭의 짐칸, 심지어 항구에 정박 중인 배까지 실로 다양하게 우리 사회의 공간 자원을 남김없이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공간은 나름대로의 활용방식과 규칙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도박이나 노름이 (서로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얼마나 유서 깊은, 그 나름대로 전통적인 행위들인지 잘 보여준다. 이들은 각각의 상황에 맞는 공간적 형식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즐거운 일은 또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그 어떤 경우에 ‘남원’이나 ‘군산’ 같은 지명이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서울이 아닌 이런 도시들이 훨씬 더 중요한 지역인 모양이다. 화가에게 파리가, 성악가에게 베로나나 나폴리가, 재즈 매니아에게 뉴 올리언즈가 있다면 ‘꽃으로 싸우는’(화투) 사람들에게는 이런 도시들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글을 썼던 ‘라디오 스타’와는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를 대하는 입장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이 영화다. 서울의 서울적 거룩함이 통쾌하게 무시되는 영화가 바로 ‘타짜’인 것이다. 우리의 도시들이 갖는 저마다의 흥미로운 상황, 그것이 꼭 전문 노름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새삼 간절하다
2007-03-19 01:14:04


   

관리자로그인~~ 전체 113개 - 현재 3/8 쪽
83
황두진
2008-12-02
1263
82
황두진
2008-12-02
1144
81
황두진
2008-12-02
1127
80
황두진
2008-12-02
1193
황두진
2007-03-19
2397
78
황두진
2007-03-06
2170
77
황두진
2007-03-06
1999
76
황두진
2007-03-06
1939
75
황두진
2007-03-06
1948
74
황두진
2006-11-27
3078
73
황두진
2006-11-10
2221
72
황두진
2006-07-27
1699
71
황두진
2007-01-26
1995
70
황두진
2006-12-28
2016
69
황두진
2006-11-27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