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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5 19호 통권147) 그라운드라는 무대
  

축구라는 경기를 경기장에 가서 봐야하는가, 아니면 티브이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다. 대체적으로 축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경기장에 가서 봐야 한다는 쪽 의견인 듯하다. 왜냐하면 티브이는 결국 공 가진 선수의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축구란 결국 어떤 흐름인데, 그 전체적 흐름을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는 것은 축구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라운드에서는 디테일을 볼 수가 없고 선수들의 열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 흐름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가 그 안에 몰입되는 느낌은 약하다. 그나마 가까이서 보면 낫지만 싼 표를 사서 들어가면 그저 알록달록한 점들의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티브이 지지자들은 여기에 더해서 ‘티브이는 슬로우 모션과 리플레이가 제공 된다’는 또 다른 옹호의 이유를 붙이기도 한다. 물론 경기장에 전광판이 등장함으로서 이 고전적인 논쟁은 명쾌하게 종식되었다.
그라운드란 재미있는 곳이다. 아주 거대하지만 동시에 아주 내밀하기도 하다. 영화 ‘비상’은 그라운드의 이런 공간적 속성을 잘 드러낸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은 야수 같기도 하고, 검투사 같기도 하며 정도는 다르지만 저마다 나름대로 영웅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라운드의 측면에 나 있는 작은 문을 지나 그 이면으로 들어서면 그냥 평범한 젊은이요, 사회인일 뿐이다. 무대에서 보여줄 수 없는 본연의 모습들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곳도 여기다. 경기에서 지고 있을 때, 팀 전체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때 락커룸의 분위기라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하며 어두운 것인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경험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락커룸 블루스’라는 단어가 있음직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큐멘타리로서는 상당한 흥행적 성공을 거둔 이 영화는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축구팀이 장외룡 감독의 지도하에 최하위에서 결승전의 주역이라는 자리로, 문자 그대로 ‘비상’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이 구단의 특성상 영화의 묘미는 잘 몰랐던 선수들 하나하나를 서서히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묵묵하게 주장을 역할을 수행해내는 임중용이라는 선수의 존재에 유난히 관심이 간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국가대표도 아니고 선수로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퇴출의 기억도 갖고 있다.) 그와 그의 팀은 박주영과 이천수 등으로 대표되는 스타 플레이어들 및 이들을 보유하고 있는 구단들과 끊임없이 비교되지만, 그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결국 결승전이라는 대망의 자리에까지 서게 된다. 그렇다고 그 이후에 그가 스타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소한 국가대표 팀에는 여전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면 아쉬운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매우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선수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는 때로 애처로울 정도의 연민의 정이 느껴지고 그들의 좌절은 마치 새의 날개가 꺾어지는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이들은 본질적으로는 아주, 무척, 대단히 잘난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자.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가 일하는 회사나 조직이 어느 한 해 그 분야에서 대한민국 2등을 했으면 이건 상상조차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계 사무실을 하는 나는 만약 우리 회사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광화문 네거리를 소리치며 뛰어다니겠다. 당신이 영화감독이라면 봉준호, 박찬욱 정도 대열에 들었다는 이야기고, 전자제품 회사라면 삼성이나 엘지 정도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런 영화를 보고 가슴이 뭉클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로되, 도대체 왜 뭉클할까라는 문제는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 보다 훨씬 못한 인생 성적표를 갖고 살면서도 이들 대중 스타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감동받으며 심지어 그들을 동정하기조차 한다. 정작 동정 받아야할 사람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스포츠와 매스 미디어가 만나 만들어낸 우리 시대 가장 거대한 대중 의식 조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다 알지만, 심지어 속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꺼이 그 스토리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감정이입을 한다. 박지성의 연봉을 계산해보고 그것을 나의 그것과 일일이 비교한다면 그의 경기를 신나게 구경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이젠 그의 숫자가 하도 높아져서 잘 비교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부상을 당해 누워있는 그에게 팬레터를 보내는 것이 나 스스로의 인간다운 여유와 따스함을 보다 더 느끼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알면서도 속아주고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연기한다. 얀 마르텔이 ‘파이 이야기’에서 한 말처럼 ‘그것이 더 믿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니면 그래야 우리 자신이 인간적으로 ‘비상’할 수 있기 때문에.
2008-12-02 22: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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