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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5 20호 통권148) 극화와 다큐멘타리의 경계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 13>은 내가 지금까지 가장 여러 번 반복해서 봤던 영화의 하나다. 나는 그만큼 이 영화를 좋아했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즐겼다. 심지어 바로 나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을 정도다. ‘앞으로 언제 또 이런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수 십 년 후에 어떤 감독이 이를 영화로 만들게 되고, 탐 행크스 같은 뛰어난 배우가 주연을 맡을 것인가?’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그만큼 이 영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는 나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전혀 동조하지 않거나, 심지어 영화 전반에 대한 나의 취향이나 이해가 매우 얕다고 무시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세계적 패권국가 미국에 의해 주도된 우주개발이란 테마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꺼이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몇몇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 대체로 ‘그렁저렁 잘 만든 헐리우드 비(B)급 오락영화’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나 또한 여기에 그다지 불만은 없다. 어떤 사람이 지금 중동 두바이에 들어서고 있는 저 수 많은 신기하고 호화로운 건물들을 보고 와서는 그것이 현대 건축의 진수인양 이야기한다면, 건축가인 나도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두바이에 가면 그런 호텔 중 한 곳에 하루 정도는 묵으려 할 것이다. 결국 생산할 때와 소비할 때, 우리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이 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아폴로 13>이 어떤 영화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내렸을 때 나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우리 옆집에 모여 친구들과 그 장면을 보고 난 나는 한 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우주만큼 어린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또 있을 것인가? 그것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꿈 자체였다. 그래서 이러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과 묘하게 겹치면서 이런 류의 영화들이 내게 주는 감흥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타워즈 또한 그런 의미로 다가오는 영화다. 그러나 <아폴로 13>이 특별한 것은 이것이 사실에 바탕을 둔 스토리라는 것이다. 한 때 미국 우주 비행사들의 이름과 그들이 탑승했던 모든 우주선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있었던 나에게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지금도 이 영화가 일종의 매니아 코드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우주 개발에 대해 전혀 시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영화 보는 재미의 상당수가 제거되고 말 것이다. 그만큼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 당시의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감독은 적어도 그 점에서는 흠 잡을 수 없는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영화를 보면서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곤 했던 것도 이러한 제작 과정의 밀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긴 건축에서도 비록 건축적 메시지는 빈약하지만 진정성을 담아 치밀하게 잘 만들면 적어도 키치는 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실로 훌륭한 경쟁자가 있다. 미국의 우주 비행사인 알란 세퍼드와 디크 슬레이튼이 쓴 책 ‘문 샷’(Moon Shot)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같은 이름의 다큐멘타리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아폴로 13>에 등장하는 주요한 장면들이 모두 실제 상황 그대로 담겨 있다. 나는 이 두 영화를 나란히 보면서 극화와 다큐멘타리를 통해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가를 즐겁게 비교해보기도 했다. 역설적이지만 배경 음악도 없고 심지어는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닌 다큐멘타리가 어떤 장면에서는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제임스 로벨이 한 저 유명한 말, ‘휴스턴, 문제가 발생했다’라는 말이 전송되던 당시 나사 통제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이외로 사람들은 담담하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 나오게 마련인 불안한 동요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군 출신인 이 사람들은 거의 항상 위기라는 것을 의식하며 훈련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은 고조된다. 하여간 어떤 의미에서 현실은 드라마나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픽셔널(fictional)하다.
지금은 이 통제실 자체가 미국의 모든 실정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법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역사보전법’(Historic Preservation Act)에 의해 보존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스위치 하나 쉽게 바꿀 수가 없어 아예 새로 하나 더 짓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가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미 현실이 되고 보존해야 하는 역사가 되었다. 어느 부자가 돈 주고 우주에 다녀왔다는 뉴스 다음에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엄청난 국가적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어 ‘양성’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갖는 속는 듯한 기분은 그래서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차라리 <아폴로 13>을 즐겁게 보는 편이 낫다.
2008-12-02 22: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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