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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6 21호 통권149) 성질 죽이기, 그리고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최근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손목에 차는 염주를 하나 선물 받았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다가 불교도인 이 사람이 ‘염주가 도움이 된다’며 하나 사준 것이다. 화가 나려고 할 때 그 염주를 하나씩 세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지금 그 염주는 내 왼손 손목에서 사용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살다 보면 성질을 죽여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잭 니콜슨 주연의 ‘성질 죽이기’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족이지만 이 제목은 영어의 ‘Anger Management'를 번역한 것인데 누가 했는지 정말 감칠 맛 나게 잘 한 경우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당연히 성격파 잭 니콜슨이 성질을 죽여야 하는 주인공일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그는 이런 사람들을 상담하는 전문가인 라이델 박사로 나온다. 정작 주인공인 데이브(아담 샌들러 분)는 어느 모로 봐도 유순하고 온화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비행기 안에서 아주 엉뚱하게 승무원들과 시비가 붙으면서 상황이 꼬이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하나 있다. 판사의 결정으로 ‘성질 죽이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데이브는 자기처럼 조용하고 순한, ‘죽일 성질도 없는’ 사람에게 왜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거기에 대해 라이델 박사가 한 마디 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밤낮 화를 내고 주변 사람들의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뿐이다.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조용하게 지내다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총을 들고 주변 사람들을 향해 난사한다. 결국 데이브가 후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코믹 영화였지만 정말 가슴에 와서 닿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지 얼마 후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면의 상처를 어디 가서 꺼내 놓는 타입도 아니었다. 결국 속으로 속으로 안고 가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린 것이다. 친구가 좀 더 있었더라면, 가족과 가깝게 살았더라면, 안타까운 가정법은 끝없이 이어진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으로 가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하지만 라이델 박사의 말처럼 분명히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따라서 평소에 조용하고 유순하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나도 내 나름대로 이런 기준에서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이 있기는 하다. 어떤 사람들은 콘크리트와도 같다. 겉으로는 완강하고 우직해 보이지만 여전히 약한 구석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무너지기 전에 수많은 징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치 파괴가 진행 중인 콘크리트 건물에서 균열이 가고,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그러나 이런 사전 경고를 무시하면 마치 삼풍백화점처럼 무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반면 철골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항상 멀쩡하다. 속으로는 심각하게 병들어 있어도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존심이 강하고 야성적인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야생동물들을 해부해보면 속이 멀쩡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생충과 각종 질병, 영양부족,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 항상 시달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위기가 닥쳐오기 때문에 겉으로는 항상 아주 건강한 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골의 붕괴는 그만큼 순식간이고 미처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성수대교를 통해서 그 결정적인 예를 본 적이 있다. 아무 문제없이 멀쩡히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놓는 사람들도 이런 부류다.
우리는 미셸 위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만큼 조승휘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혈통을 모든 것에 앞서 중요시하는 우리들의 시각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자부심과 자괴감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결국 인간의 내면에 대한 것이다. 일단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공격심리를 스스로 인정해야 할 듯하다. 그 다음에는 끊임없이 수양하는 것이다. 굳이 깊은 산 속의 절을 찾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은 이러한 수양의 도장이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 손목의 염주처럼 작은 물건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신문만 펴면 유난히 인간의 공격성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요즘, 우리의 사회적 ‘성질 죽이기’는 그만큼 절실한 필요성으로 다가온다.
2008-12-02 22: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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