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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6 22호 통권150)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언젠가 들은 이야기다. 한자의 양(陽)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물의 북쪽’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된 예가 많이 있다고 했다. ‘밝다’, ‘양성적이다’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지리적인 의미로까지 확대되었을까? 자세히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므로 물의 북쪽이라면 물 보다 높은 지역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산기슭이 된다. 물보다 북쪽에 있는 산기슭이면 당연히 해가 잘 드는 남향 경사면이다. 결국 ‘양’할 수밖에 없다. 북반구에 위치한 산악 지형의 한반도에 잘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예들을 찾아보았다. 경상도 함양(咸陽)은 남강 수계에 속하는 한 지천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도 ‘센양’으로 불리는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는데 역시 웨이허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광양(光陽)은 섬진강이 남해와 만나는 곳의 북쪽이며,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漢陽)은 한강 이북, 평양(平陽)은 대동강 이북이다. 그리고 영화 ‘밀양’의 배경인 밀양(密陽)은 밀양강의 북쪽에 자리 잡은 고을이다. 결코 우연히 지어진 이름들이 아닌 것이다.
나에게 ‘밀양’은 빛에 대한 영화였다. 여기서 빛은 햇빛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빛에서 시작하여 종교적인 사랑, 인간 사이의 온기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매우 적절하게 영화적 언어와 문학적 언어를 넘나들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실로 다양한 빛의 조건들을 담아내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결국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이자 실재하는 도시의 이름인 ‘밀양’ 또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밀’은 ‘비밀’의 ‘밀’이면서 동시에 ‘밀도’의 ‘밀’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비밀의 빛’이 될 수도 있고 ‘꽉 찬’, 즉 ‘충만한 빛’이 될 수도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Secret Sunshine'인 것으로 보아 감독은 전자의 의미를 취한 듯하다. 그러나 정작 밀양 사람들은 ’충만한 빛‘의 의미에 더 가깝게 이해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의도적인 간극은 이 영화를 보는, 그리고 이해하는 일종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푸른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떠 있는, 도대체 비밀스러울 것이 없는 찬란한 햇빛을 담고서 시작한다. ‘Secret Sunshine'이란 영어 제목을 본 관객으로서는 조금 어리둥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주인공이 자기 스스로 머리를 다듬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하늘은 구름이 껴 있고 다소 침침한 햇빛이 마당 한 구석을 비춘다. 카메라는 별 대단한 것도 없고 심지어 다소 지저분하기까지 한 이 장면을 의미심장에게 오래 보여주며 영화를 끝맺는다. 빛으로 시작해서 빛으로 끝나는 영화다.
남편을 잃고, 심지어 아들까지 유괴되어 살해된 여자 신애(전도연 분)에게 빛은,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다가올까? 일단 신애는 이웃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사랑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통해 사랑을 준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이 피해자나 가해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이것은 교회라는, 제도화된 인간의 조직에 의해 전달되는 복잡한 사랑이다. 그 조직의 구성원들 하나하나는 별로 완전하지도 않고 심지어 약국집 장로처럼 인간적으로 나약한, 그러나 결코 그를 향해 돌을 던질 수는 없는 존재들이다. 수도 없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결코 반기독교적 영화는 아닐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고 모순적인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의 덕이다.
그리고 신애에게는 마치 행성처럼 주변을 맴도는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 분)이 있다. 그는 신애를 따라 교회를 다니고 심지어 주차안내까지 맡아서 하게 된다. 신애는 결코 그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에게는 신애가 마치 태양과도 같다. 언제 어디서나 신애를 위해 뭣이건 할 것 같은 이 남자 또한 은근하고 감춰진 빛으로 신애를 비춘다. 어둡고 괴로운 이야기들의 연속이지만 영화는 끝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추는 빛, 그 온기와 반짝거림을 잃지 않는다. 해서, 영화는 묻는다.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2008-12-02 22: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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