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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7 23호 통권151) 걷고 싶은 송도의 거리
  

종종 조선 시대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물건들도 골라보고, 양반집 솟을 대문 앞에서 이 집 인심이 어떤가 살피고도 싶다. 관청 앞에서는 걸음을 재촉하는 편이 좋겠다. 보통 사람들이 관청 앞을 얼씬 거려서 얻을 것이라고는 썩 사라지라는 호통 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때때로 눈을 들어 이 거리와 건물들 너머로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바라볼 것이다. 지금은 건물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길들이 이런저런 산봉우리를 향해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거리를 걷다 보면 산이 자연스럽게 거리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경험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정말 색다른 경험일 수밖에 없다. 아니 이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거리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전쟁으로, 혹은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너무나 많은 건물들이 헐려나갔고 우리는 그것을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불과 백 년전 정도의 거리 분위기도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없다. 역시 비슷하게 전쟁을 많이 겪은 유럽에 이런 거리들이 수도 없이 잘 남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무관심했다’ 이상 그 어떤 변명이 가능할까.
<황진이>를 보면서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송도의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진이는 아주 어렸을 때 노미의 등에 업혀, 그리고 나이가 차서는 남장을 하고는 집을 나서 양반집 규수로서는 접하기 힘든 살아있는 도시를 체험한다. 두 번의 나들이는 모두 파국으로 끝나면서 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험들을 제공한다. 특히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송도 유흥가의 풍경은 매우 인상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돈이 좀 생기면 물건을 사거나 술을 마시거나 혹은 이성을 찾는다.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이 영화의 장면들만 놓고 보면 오히려 이 당시가 지금보다 유흥가의 분위기 자체는 더 매력적이었다. 지금이야 그 풍류라는 것이 얼마나 남아있는가.
진이를 비롯,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도시를 체험하는 또 다른 방식이 있다. 그것은 높은 산에 올라 도시를 굽어보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이 답답하거나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인근의 산에 올라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를 내려다보며 자신을 추스린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강릉 선교장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이 장면 또한 선교장의 실사 이미지와 컴퓨터 그래픽이 합성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은 그 도시 속을 걸어 다니는 것과 함께 도시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매우 중요한 방식이다. 평지에 지어지는 도시라면 높은 탑을 세워서 이런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황룡사 9층탑에 대해서 경주라는 평지 도시를 조망하기 위한 ‘경주 타워’의 성격이 있었다는 몇몇 학자들의 주장은 그런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대부분 도시들의 경우 건물들은 그리 높을 이유가 없고, 그저 산에 올라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진이가 매우 한국적인 방식으로 자기가 살아 온 송도를 굽어보고 있는 장면은 내가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한 가장 아름다운 우리 도시의 옛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시간이 나면 종종 구글 어스(Google Earth)에 들어가 북한의 도시들을 누비고 다닌다. 어느 도시의 어디에 한옥들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평양에는 한옥이 거의 없다. 워낙 전쟁으로 심하게 파괴되었던 도시였으니 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내가 개성 상공을 지나고 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야말로 수백채의 근대 도시형 한옥들이 도시 한 복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의 교동마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항상 머리 속에 그리던 한옥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거기, 서울에서 자동차로 불과 한 시간 거리인 개성에 있었던 것이다! 황진이의 도시 송도, 이렇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린다.
2008-12-02 22: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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