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의 글을 소개하는 게시판입니다. 상업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퍼가실 수는 있으나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황두진에게 있습니다.

  황두진
  (0707 24호 통권152) 홍콩 이야기
  

지금까지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던 홍콩을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다녀왔다. 처음에 간 것은 홍콩의 풍수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현대 건축가지만 몇 년 전부터 뜻한 바 있어 한옥과 관련된 설계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요즘도 서울 북촌의 인접한 한옥 두 채를 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집주인이 풍수에 관심이 있어서 함께 홍콩을 찾은 것이다.
왜 한국에 있는 집을 위해 홍콩의 풍수가를 만나야 할까? 그 사연은 대충 이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큰 시각에서 풍수를 본다. 좌청룡, 우백호, 배산임수와 같은 단어는 자연 속의 산과 물이 이루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편의상 이것은 ‘마크로(macro) 풍수’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홍콩은 사정이 좀 다르다. 워낙 개발밀도가 높고 자연 자체가 많이 변형되어 이렇게 거대한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스케일의 풍수에 관심이 많다. 이미 인구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곳이 홍콩이다. 내 집 밖의 사정은 내가 어찌할 수 없으므로 집 안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일종의 ‘마이크로(micro) 풍수’인 셈이다.
그런데 영국 식민지 홍콩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이들의 생각이 영어로 된 책에 담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서구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풍수책의 상당 부분은 홍콩, 혹은 화교 풍수가들이 쓴 것이다. (말레이지아 출신의 릴리안 투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예다.) 이것은 종종 ‘인테리어 풍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동양적인 삶의 태도에 관심이 있는 서구인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홍콩의 풍수가들은 현대인의 삶 속에 풍수를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환경이 사실상 홍콩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등에서 드러나는 자연과 건축의 큰 관계에 대한 관심을 논하기가 이미 어려워졌다. 산등성이까지 아파트가 들어섰고 사실상 거대 시각의 풍수를 그리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다. 우리나라 풍수의 대가인 최창조 선생이 소위 명당론으로 대변되는 땅 자체에 지나친 관심에서 벗어나 현대에 유용한 풍수를 추구하겠다고 말했다는 소식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풍수가는 ‘초이 선생’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풍모는 소박했지만 눈빛이 무척 예리했다. 나는 첫 만남에서 이 사람 또한 나 못지않게 상대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고층 건물을 지을 때도 풍수가들이 동원된다는 홍콩이라지만, 외국 건축가와의 대면이 마음 편할 리 없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비교적 쉽게, 심지어 유쾌하게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내 입장으로 보면 설계에 무슨 한 가지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가능성 중에 서로 맞는 것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화덕(가스레인지)을 북쪽에 놓으면 아버지가 사망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때는 나도 내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지 않을 수 없었으나, 대체로 나는 그가 하는 말에 상당 부분 공감을 느꼈다.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은 그렇게 비교적 유익하게 끝났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나머지 시간에 나는 홍콩의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다.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금융 중심지인 센트럴과 산중턱, 즉 미드레벨(mid‐level)을 연결해주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였다. 보통 건물 안에서나 사용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도시의 경사면에 설치하여 도로, 지하철과 같은 도시 인프라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아이디어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워낙 특이한 명물이었던 탓에 영화 중경산림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엘리베이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광복동과 용두산 공원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그것인데, 도시의 골목길과 엘리베이터가 만나는 부분들이 홍콩 못지않게 재미있다.
한 달 후 두 번째로 홍콩을 찾았을 때 나는 홍콩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그들은 한류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 위에서 한국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고자 나를 초대했다. 특히 현대 건축가인 내가 한옥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흥미를 갖고 들었다. 나에겐 한옥도 현대건축이다. 왜냐하면 21세기 사람을 위해서, 그들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전통의 물리적 흔적이 거의 사라지고 만 상업 도시 홍콩에서 나는 그러한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꼈다. 이렇게 짧은 시간을 통해 나는 홍콩과 많은 것을 주고받았다. 나는 아시아가 재미있다.
2008-12-02 22:59:21


   

관리자로그인~~ 전체 113개 - 현재 2/8 쪽
98
황두진
2007-02-21
1872
97
황두진
2008-12-02
1306
96
황두진
2008-12-02
1189
95
황두진
2008-12-02
1253
94
황두진
2008-12-02
1697
93
황두진
2008-12-02
1264
92
황두진
2008-12-02
1198
91
황두진
2008-12-02
1172
90
황두진
2008-12-02
1359
89
황두진
2008-12-02
1163
88
황두진
2008-12-02
1275
87
황두진
2008-12-02
1223
황두진
2008-12-02
1228
85
황두진
2008-12-02
1337
84
황두진
2008-12-02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