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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7 25호 통권153) 문자의 힘
  

입체파
아는 화가 한 분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자기의 작업에 적절한 명칭이 붙은 화가와 그렇지 않은 화가는 활동상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초의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명쾌한 타이틀이 백남준에게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이야기다. 또 다른 예로서 피카소의 그림, 그 중에서도 ‘아비뇽의 처녀’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해 보자. ‘대상을 바라보는 다시점적인 시선을 하나의 화면 위에 집약시킨......’ 이런 정도가 그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입체파’하면 그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한 마디의 말이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더 효과적인 경우가 있는 것이다.

블루 오션
요즘 내 머리 속을 계속 간질거리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문자 그대로 푸른 바다에서 혼자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침 같은 제목의 책 표지에 바로 그런 그림이 실려져 있기도 하다. 이와 반대의 개념인 ‘레드 오션’은 또 어떤가.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살육의 현장이 떠오르지 않는가. 경쟁이 일상사인 기업인들에게 이 두 개의 말은 그 어떤 설명 보다 자기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극명한 깨달음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역시 문자의 힘은 강하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와 도스토예프스키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아름다운 도시다. 수많은 운하와 골목길이 있고 화려한 건물들이 있다. 그리고 저 유명한 백야의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 가지고 도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이 드라마틱한 도시에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걸출한 문장가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소설들, 예를 들어 ‘죄와 벌’ 을 읽고 이 도시를 찾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의 도사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오즈 야스히로, 그리고 다다미 샷
언젠가 이 칼럼에서 일본 감독 오즈 야스히로와 그를 유명하게 한 ‘다다미 샷'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기 형식이 있는 예술가는 행복하다‘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자기 형식의 유무야말로 한 예술가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라고까지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형식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문자의 존재 또한 필수적이다. ’다다미 샷‘이라는 형식을 이 일본 감독이 이미 가져가 버려서 같은 좌식문화권에 사는 우리가 이제 아무리 방바닥에 카메라를 놓고 앉은 사람의 눈높이로 촬영을 해도 ’온돌 샷‘으로 불리우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결국 독창성을 위해서는 다른 형식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

문자의 힘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모든 사물의 최종적인 의미는 문자를 통해서 확립된다. 실물이 아무리 근사하고 훌륭해도 문자로서 잘 기록되고 표현되지 않은 것들은 결국 잊혀지게 마련이다. 물론 요즘은 이미지의 시대이며 종종 이미지의 힘이 문자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여전히 문자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개념이나 사상은 역시 문자라는 그릇에 담길 수 밖에 없다. 건축가지만 계속 글을 쓰는 이유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다보면 ‘건축이나 잘해라’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체로 내가 아는 국내외의 건축가들은 다들 글을 열심히 쓰는 편이다. 건축가는 가장 물질적인 세계를 다루는 창작인이지만 결코 문자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인류의 역사를 보라. 철과 콘크리트, 그리고 돌 보다 문자가 더 영속적이지 않은가. 건축이 영속적인 창작이라지만 현실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설계했던 어떤 건물이 없어지던 몇 년 전 그날, 갑자기 찾아 온 깨달음이기도 하다.
2008-12-02 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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