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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8 26호 통권154) 홍콩, 두 번째 이야기
  

지지난 호에 이어서 또 다시 홍콩 이야기를 쓴다. 불과 며칠간이었지만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해 준 여행이었다. 한 마디로 나는 홍콩 여행 이후 건축가로서의 나의 미래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홍콩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동석했던 그 대학의 교수들은 나의 발표 내용에 대해서 매우 신기해했다. 그들은 내게 ‘한국에 당신 같은 건축가들이 많은가?’라는 질문을 해왔다. 어떤 의미인가 물으니, ‘중소 규모의 건물을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다루는 건축가가 많은가?’라고 다시 물어왔다. 그제야 나는 질문의 뜻을 알아차렸다.
영화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나는 일종의 독립영화감독이다. 블록버스터급 감독은 절대 아니다. 거대 자본을 상대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건축은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이기는 하다. 아무리 작은 주택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건물을 짓는 일에는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거기에 땅 값, 특히 대한민국의 이 심각한 부동산 가격을 더하면 절대 녹녹치 않은 금액이 된다. 대체로 지금까지 내가 다뤄온 건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공사비 기준 몇 십 억 이내의 것이었다. 이것은 건축 분야 전체, 나아가 건설 분야 전체를 놓고 보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자본 규모가 갈수록 거대화되는 요즘, 단일 프로젝트로 몇 천억, 심지어 조 단위가 거론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결국 나는 건축계 전체로 보면 아주 작은 프로젝트를 다루는 사람이며, 나 같은 건축가를 우리 분야에서는 ‘독립군’이라고 부른다.
홍콩 교수들이 내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요지는 ‘당신 같은 독립군은 이미 홍콩에서는 멸종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의 집중이 워낙 심하게 진행되어 왔고 게다가 가용 토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홍콩인지라 건물을 지었다 하면 수 십층은 기본이다. 그러니 중소규모 건물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가끔 홍콩의 부자들이 자기 집이나 별장 같은 것들을 짓기는 하지만, 주로 외국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한다. 그래서 홍콩에서 건축을 전공한 학생들은 주로 다국적 대형 설계 사무소에 취업하거나, 아니면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교수들은 ‘당신 같은 독립군 건축가들은 자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하게 형성되어 온 유럽이나 미국, 아니면 일본 정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도 있다니 신기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들이 한 말이 한국에 대한 경탄인지 조롱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호기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확실히 홍콩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라는 것이다. 서울은 정말 거대한 도시지만 아주 작은 점들로 구성된, 즉 아직도 중소 규모 자본의 집합체로서의 성격이 강한 도시다. (이것을 대규모 자본에 의해 조성되는 시스템으로 치환하겠다는 것이 소위 말하는 재개발이다.) 그러나 홍콩은 그 반대다. 누구나 경탄해 마지않는 홍콩 중심가의 고층 빌딩 숲은 간단히 말하면 거대 자본의 극적인 자기 현시 그 자체다. 이 장엄한 무대에 독립군이 설 자리는 없다. 홍콩은 우리의 미래인가? 아니면 한국은 홍콩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갈 것인가? 결국 요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의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홍콩 영화에 대한 생각을 잠깐 했다. 한 때 홍콩 영화 배우들은 우리의 우상이었고 홍콩 영화는 아시아의 문화적 상징 중 하나였다. 이소룡은 이미 고전이 되었고 주윤발, 장만옥, 양조위, 주성치, 유덕화 등등 그 리스트는 끝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홍콩이 중국에 다시 편입된 이후 주윤발은 ‘위대한 중국’이라는 거대 이미지 프로젝트의 꼭둑각시가 된 듯하다. 헐리웃에 진출한 성룡도 이미 그 이전의, 싱싱하게 펄펄 날던 그 사람이 아니다. 물론 다른 홍콩 배우들도 ‘헐리웃 진출’이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작년인가 칸 영화제에서의 장만옥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결국 홍콩 영화계가 전세계에 고하는 우아한 작별 인사 같은 것이었다는 기사를 읽은 바 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선가,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서서히 자신들의 서식지로부터 멸종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이 소위 ‘천개의 고원’, ‘문화 다양성’, 그리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법적 장치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사회 엘리트일수록 외국 건축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농후한 자발적 문화식민지 한국의 건축가로서 무슨 사회로부터의 도움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해본 적도 없다. 다만 홍콩 여행 이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은 세상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지속적인 긴장을 보다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독립군으로서 씩씩하게 살아남기를 바란다. 세상이 더 이상 우리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혹은 독립의 그날까지.
2008-12-02 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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