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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9 27호 통권155) 계, 판, 바닥
  

얼마 전 어떤 영화인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한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분야들을 그 특성별로 분류하면 각각 계, 판, 그리고 바닥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많은 분야들이 거론되었으나 그 부분은 생략하고 계와 판, 그리고 바닥의 일반적 차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계란 가장 상위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문학계하면 문학판, 혹은 문학바닥에 비해 훨씬 고상한(?) 표현이다. 그만큼 그 분야에 깊이와 연륜이 있고 사회적인 인식도 긍정적임을 의미한다. 오래된 분야일수록 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물리적 나이 그 자체만으로는 계가 되기에 충분치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매춘은 매우 오래된 분야지만 매춘계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잘 정립된 분야인 계는 한편으로 그에 따른 경직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부적인 가치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신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던가, 심지어 내부인의 직접적인 추천에 의하지 않고는 아예 등장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멤버쉽이 잘 확립된 분야가 계다.
판은 좋게 말해서 이보다 자유롭고, 나쁘게 말해서 기준이 모호하다. 여기서의 멤버쉽이란 선행 조건의 충족 여부 못지않게 자발적 참여 의사가 중요하다. 즉 참여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으면 약간의 준비로 충분히 멤버쉽 획득이 가능하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고 기회도 많은, 그러나 그만큼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분야가 바로 판이다.
바닥은 단어의 느낌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멤버쉽이란 것이 아예 없어서 누구나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다. 분야내에서 누가 실력자인지 평가하는 기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최고일 수 있는 분야가 바닥이다. 결과적으로 바닥은 종종 아노미적 특성을 보인다.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영화인은 어떤 분야가 형성해온 자본의 역사가 계와 판, 그리고 바닥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분야의 역사가 아닌, 그 분야의 자본의 역사라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역사는 오래되었는데 전혀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람직한 의미에서 계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영화 분야는 과연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이미 바닥이라 부를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이제 판의 단계를 지나 계로 진입하는 단계가 아닌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한국 영화가 이루어온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첫째,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역사가 100년 남짓으로 그리 깊지 않고, 더구나 한국 내에서 형성되어온 영화 자본의 규모라는 것이 사실상 연륜이 깊지 않으며,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영화의 입지가 아직도 매우 취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대표적인 계의 한 예로 출판계를 꼽고 있었다. 그 정도 되면 기꺼이 계라고 할 수 있으나 아직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대체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건축설계란 분야는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라는 의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분야의 역사로만 따지만 절대 만만치 않다. ‘건축가란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무엇이 첫 번째인지는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런데 이 분야의 자본의 축적은 실로 취약하기 짝이 없다. 건설업 전체는 어마어마하지만 그중에서 건축설계 분야는 매우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분야에서는 지금 매우 심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비평의 부재라는 현상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작가와 비평가가 얼마나 건강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가 계와 판, 그리고 바닥을 나누는 또 다른 중요한 구분의 잣대라고 믿는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팽팽한 비평적 긴장이 느껴지는 분야는 계고, 그 긴장이 느슨해져 있는 분야가 판이며, 바닥은 아예 긴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긴장을 위해서는 창작과 비평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좋지 않다. 비평가가 본연의 자세를 잃고 자기도 창작에 손을 댄다던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현역 건축가인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그런 경우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글쓰기를 비평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시장의 가치와 비평적 가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양이 잘 되고 대중에게 잘 어필하는 건축이 비평적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건축이라는 식이 되는 요즘의 상황은 매우 걱정스럽다. 이 둘은 사고의 출발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혼란이 내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계를 떠나고 판을 지나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08-12-02 23: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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