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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0709 28호 통권156) 쉽지 않은 전쟁영화 만들기
  

심형래 감독의 <디 워>와 관련된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교훈(?) 중의 하나는 세상에는 장르 영화라는 것이 있으며 그런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장르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인 듯하다. <스타워즈>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깊이있는 내면 연기를 기대하지 않듯이 <러브 엑츄얼리>를 보면서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의 등장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강변 모텔촌을 가지고 진지한 건축 비평을 쓰는 사람은 없다. (다만 키치적 이미지를 위주로 한 모텔촌의 창궐이라는 현상에 대한 좋은 글들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럴듯한 이미지로 손님만 많이 들면 그 건물들의 목적은 충족된다. 반대로 소위 세계 명품 건축들은 대부분 상업성이나 수익률, 혹은 실용성이라는 잣대 위주로 평가되지 않는다. 우연일까,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은 종종 비가 샌다.
그렇다면 전쟁영화는 과연 어떤 잣대로 평가될까? 물론 그 안에 또한 워낙 다양한 세부 카테고리가 있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전장의 리얼리티가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에 관심이 있다. 다행히도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최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짐작한다면 전쟁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즈>(티비 드라마이기는 했지만), 아니면 <에니미 엣 더 게이트> 정도의 반열과 그 나머지로 구별될 수 있을 듯하다. 거기에 독일에서 제작한 <스탈린그라드> 정도가 추가될 수 있겠다. 이런 영화를 보다가 다른 전쟁 영화를 보면 확실히 긴장감도 떨어지고 어떤 의미에서는 게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한가로운 구경거리. 그런 느낌을 <라파예트>를 보면서 가졌다. 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진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초창기 비행기들의 낭만적인 모습에 이끌려서 이들이 그 당시 최첨단의 기계였으며 게다가 그 존재의 이유가 처절한 파괴와 살상이라는 폭력적인 것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다. (나는 이전에 다른 매체에 영화 <청연>에 대해 글을 쓰면서 같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청연>의 여주인공이나 <라파예트>의 용병 파일럿들 모두 캠핑 떠난 스카우트 대원들처럼 행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털털거리고 아무데서나 뜨고 내리는 이 조잡한 기계들은 오늘로 치면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정도의 시대적 의미를 갖던 것이었다. 게다가 이 원시적인 기계들을 가지고 인간은 이미 하늘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과거도 그 시점에서는 현재였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을 듯하다. 다양한 훈련 장면이 나오고, 과중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주저앉고 마는 대원도 등장하며, 무엇보다 치열한 공중전 장면이 있지 않느냐고. 그렇다. 분명히 있어야 할 요소들은 다 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나하나 점검해보면 실로 완벽하리만큼 하늘에서의 싸움에 등장해야 할 것들은 다 등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모든 형식적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중요한 느낌, 그 상황이 주는 중압감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은 거의 미스테리에 가깝다. 나는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다른 설명은 다 무의미한 듯 하고, 오로지 감독 토니 빌의 역량부족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아무리 30년도 전에 공전의 명화 <스팅>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제작자였었다고 해도 이런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어쩌랴. 원래 창작의 세계가 이런 것을. 실적은 참고 자료일 뿐 보장은 아니라는 것을.
차라리 같은 항공 전쟁영화로서는 나는 <멤피스 벨>에 더 점수를 주겠다. 2차 대전 당시 폭격기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 역시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다소 낭만적인 정서였으나 적어도 폭격 임무가 주는 극도의 긴장감은 훨씬 더 잘 묘사되어 있고 등장 인물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당시 함께 이 영화를 본 내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어린 승무원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을 통해 오히려 이 영화가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반전영화가 아니냐는 의견을 가졌을 정도였다. 나름대로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였던 셈이다. <라파예트>를 통해 그 이상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까라는 나의 기대는 유감스럽게도 충족되지 않은 듯하다. 해서, 나는 또 기다린다. 다음 번 전쟁 영화를.
2008-12-02 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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