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의 글을 소개하는 게시판입니다. 상업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퍼가실 수는 있으나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황두진에게 있습니다.

  황두진
  (0710 29호 통권157) 창작과 표현의 자유
  

헌법에 보장된 수많은 권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창작과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권리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권리가 종종 우리의 자연스러운 감성이나 관습화된 상식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언어학자인 촘스키가 만든 ‘동의의 생산’(Manufacturing Consent)이란 비디오를 보면 프랑스의 어떤 역사학자가 홀로코스트는 없었다는 주장을 편 후 대학에서 파면당하는 사건이 소개된다. 촘스키는 역사학자를 이런 이유로 파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펴고 곧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신과 같은 지식인이 어떻게 그런 주장에 동조할 수 있는가라고 하지만 촘스키의 입장은 단호하다. 자기는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그러한 주장을 이유로 대학에서 파면당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그에게는 그런 주장을 펼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는 표현의 자유(freedon of expression)와 표현된 생각(idea expressed) 사이의 구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흥분한 청중은 그의 이런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곧 그의 강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내가 언뜻 보아 내 분야와 상관 없어 보이는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사실 그것이 알고 보면 아주 심층적으로 내 분야와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건축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란 그 실체가 무엇이며 과연 그것은 잘 보호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가 대부분의 문명 국가에서 그러한 것처럼 건축이 단순히 건설이 아닌 창작임을 인정한다면, 문학이나 영화, 회화, 음악 등 다른 종류의 창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본적인 자유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건축은 모든 창작 중에서 가장 법과 제도의 규제를 많이 받는다. 소설가가 소설을 구상할 때 문예창작에 관한 법률 규정을 참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축 관련 법규를 지키지 않은 건축가의 작업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적어도 성문화된 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그다지 문제는 없다. 그만큼 건축이 공공의 가치를 담아내야만 하는 일이라는 증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문화된 법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규제다. 심의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건축 이외의 많은 분야에서 심의 내지는 이에 준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영화의 경우도 가위질과 같은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심의에서 등급분류와 같은 비교적 온건한 방식까지 다채로운 규제가 있어왔다. 그런데 건축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심의로 인해 아예 창작 자체가 원초적으로 봉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면에 건축적인 창작의 내용은 다 들어있고 건물은 그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하는 관념적인 주장도 있을 수 있으나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면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지어져야 건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설계가 성문화된 법적 근거도 없이 그저 심의의원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대폭 수정되거나 심지어 건축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그 어떤 구성원들도 이것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지는 않는다. 건축은 원래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반대로 문학의 장정일, 가요의 서태지, 영화의 김기덕 같은 인물들은 오히려 이런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그만큼 진보시켰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그리고 그런 싸움에는 분야 구별 없이 여러 사람들이 다 합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건축의 그 무엇이 다른 창작과 그리 다르기에 이 분야의 심의는 거슬러서는 안 되는 사회적 선이고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담고자 하는 건축가는 아무런 동조자도 없이 항상 외로운 싸움을 혼자 벌여야 하는가? 만약 당신이 고색창연한 역사도시 파리의 한복판에 들어선 퐁피두 센터와 같은 건물의 한 시대를 활짝 열어제끼는 듯한 파격에 공감한다면, 그리고 왜 우리 도시에는 이렇게 생생한 사고가 전달되는 건축을 찾기 어려운가 의문스럽다면 이것은 결코 건축가들만의 문제가 아님 또한 깨달을 것이다. 혹시 지루하고 답답한 도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수 없이 들어서는 건물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인간의 자유로운 창작 의지가 부당하게 침해받고 있는 결과가 아닌지 의심하기 바란다.
2008-12-02 23:07:41


   

관리자로그인~~ 전체 113개 - 현재 2/8 쪽
98
황두진
2007-02-21
1871
97
황두진
2008-12-02
1305
96
황두진
2008-12-02
1188
95
황두진
2008-12-02
1251
94
황두진
2008-12-02
1696
93
황두진
2008-12-02
1261
92
황두진
2008-12-02
1197
황두진
2008-12-02
1171
90
황두진
2008-12-02
1357
89
황두진
2008-12-02
1162
88
황두진
2008-12-02
1274
87
황두진
2008-12-02
1221
86
황두진
2008-12-02
1224
85
황두진
2008-12-02
1334
84
황두진
2008-12-02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