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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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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집(모 잡지에 실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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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집’은 ‘내가 설계하고 싶은 집’과 같을까. 다를 것이다. 내 집을 지을 때 건축주는 나일 것이므로 다른 사람 집을 짓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본격적인 의미에서 나 자신의 건축주가 되어 본 적이 없다. 내 집을 조금 고쳐본 적은 있지만, 마감재 교체 수준의 기본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건축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건축주로서의 내가 건축가로서의 나보다 훨씬 선이 굵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로서 일할 때 보다는 자분자분한 디테일이나 기계적인 품질 같은 것에 대해 다소 심드렁해질 것 같다. 생활을 해 보면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냥 일상의 한 부분으로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이런 시선으로 돌아보라. 어지간한 것은 우리가 참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벽지 마감선이 걸레받이를 조금 잘못 타고 있다고 해서 이를 두고두고 마음에 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남의 집을 설계할 때면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따지는 문제지만, 만약 내 집을 짓게 되면 그런 것 보다 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추구하려고 들 것이다. 신은 디테일에도 있지만 건축의 다른 부분에 훨씬 더 많다.
건축주로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집의 주제다. 집이란 주제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인생도 그렇다. 그냥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과 뭔가 이루고 가는 사람의 차이는 이 주제의 유무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이것저것 열심히 성실하게 주어지는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대응적(re-active)인 삶과 주도적(pro-active)인 삶의 차이다. 전체적인 삶의 노력은 전자가 높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삶의 진정성은 후자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집으로 옮기면 이렇다. 어떤 집들은 주변에 열심히 대응한다. 여기 좋은 경치가 있으니까 창을 내고, 여기 옆집이 보기 싫으니까 벽을 치고 등등. 우리나라는 구석구석 같은 곳이 없고 기본적으로 자연이 좋아서 이런 식으로만 집을 설계해도 어지간한 집은 나온다. 대응만 열심히 하는 것으로 대강의 설계가 되는 것이다. 꼭 지켜야 하는 법규 같은 것 까지 고려하면 과연 창작이란 어느 틈바구니를 비집고 이루어지는 것인가 싶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기만의 주장이 강한 집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상황논리가 아닌, 자기 생각을 가지고 만들어나가는 집, 주제가 있는 집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삶의 주제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 그냥 열심히 살 뿐이다. 그래서 주택을 설계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재미있지 않다. 그중에서도 아파트는 최악이다. 아파트에 살기로 했다는 것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이 생각하기로 결정했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안에서 자기 개성을 찾아달라고 하면 결국 지엽적인 취향의 문제로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봐야 비슷한 인생관 속에서 거기가 거기인 것이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문고리가 마음에 드네, 안 드네, 벽지가 좋네, 안 좋네, 목수 솜씨가 거치네, 아니네 등 시시콜콜할 문제로 서로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건축이 가장 저열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의 일을 할 때는 이런 문제에 결코 등한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의 경우 집의 주제는 ‘극단적인 경험’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을 둘러보다가 클릭 한 번으로 예를 들어 분자생물학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는 인터넷의 저 극단적인 경험을 좋아한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비현실적으로 성스럽고 그 반대쪽은 지독히 세속적인, 뉴욕 5번가의 성 패트릭 성당을 좋아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 즉 낮에는 육체노동자, 밤에는 정신적 귀족, 이런 것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집도 그랬으면 좋겠다. 큰 공간과 작은 공간이 섞여 있으면 좋겠고, 심지어 집의 앞뒤가 다르게 생겼으면 좋겠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극단적으로 다르게 생긴 두 집이 마주보고 있는 것도 좋다. (나는 지금 양옥에 살고 있는데 마당 한 구석에 기와 삼간을 짓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다.) 나는 침실은 관처럼 작았으면 좋겠고 거실은 운동장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체육관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방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마당에 나가 채소를 키웠으면 좋겠다. 나는 거실까지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고 싶고 방에서는 신발을 벗되, 신발 벗고 발을 씻고 하는 우리 식의 생활 패턴이 현관, 화장실 등에 구석구석 디자인적으로 침투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해서 화장실이 집의 구석, 가장 은밀한 곳에 있었으면 하지만 동시에 샤워를 마치면 벌거벗고 바깥 바람을 쐬고 싶다. 그래서 잠시 동안 만이라도 자연 그대로의 나 자신을 느껴보고 싶다. 물론 누가 보지 못하게 적절히 담장이 쳐져 있어야 하겠지만, 혹시 누가 본다 해도 결국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한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창을 닫거나 눈을 돌릴 것이다. 나는 우리 집에 밖에서는 잘 안보였으면 하고, 집 안에 들어오면 ‘뭐 이런 데가 있나’ 싶었으면 한다. 밖에서는 현대식 주택인데 마당에는, 예컨대 학이 한 마리 노닐었으면 좋겠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은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집에 관해서는 결코 나쁜 표현이 아니다. 나는 집이 아주 단순했으면 좋겠지만 어떤 부분은 분자생물학 수준의 정밀한 사고가 담겨있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각종 기계식 자동장치, 특히 자동 블라인드 같은 것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미생물을 통해 공기나 물을 정화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 사진작가로부터 제주도에 집을 짓고 싶은데 설계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놓은 상태다. 정식으로 의뢰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으나 하여간 말은 오고갔다. 나는 그 작가의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덜컥 설계비의 절반을 사진으로 달라고 해 버렸다. (작가는 아주 좋아했다.) 우리 사무실 식구들과 집사람의 눈치를 봐야겠지만, 내가 이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작가의 사진을 갖겠는가. 그 작가는 그 집이 두 동으로 구성되어 한 동은 나무, 또 다른 한 동은 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처럼 극단적인 대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한 쪽은 목조 가구식으로, 또 다른 한쪽은 거짓 없는 진짜 조적조로 쌓을까 생각중이다. 물론 이 집이 지어지려면 그 작가는 사진을 좀 더 열심히 찍어 팔아야 할 것이고, 나도 그 작가와 열심히 친분을 유지해야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를 기준으로 보면 그 집은 내 집을 삼고 싶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첫 대화에서 그 집이 극단적인 집이 될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극단적인 것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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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5 00:20:49 / 218.38.8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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