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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진
  내가 본 숭례문 화재(장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지 정확히 하루가 지난 때다. 정확한 화재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방화로 추정되나 정작 방화범의 존재는 묘연하다. 물론 세상은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다. 복원해야 하는지, 한다면 과연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인터넷상에서 설문조사를 하기도 하고, 항상 그렇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에 저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상대를 공격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양쪽의 말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서 결국 모두가 다 잘못한 셈이다. 이럴 때 보면 세상에 정치가들처럼 비열하고 또 어리석은 존재들이 없다. 그들은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 같다.

나는 어젯밤 그 숭례문이 불타고 결국 무너지는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하나로서 가급적 감정이나 목적 없이, 다만 어떤 한 개인의 정확한 기록을 남기는 일이 지금 이런 상황에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에서 유난히 일이 손에 안 잡히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금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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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도 긴 구정 연휴가 다 지나서 슬슬 다음날부터 일할 준비를 하고 있던 일요일 저녁이었다. 9시가 조금 지나서 뉴스에서는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진화가 되었다’는 속보가 아직도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현장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다. 나는 천만 다행이지만 저 정도의 화재라도 아마 건물을 다시 손질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들겠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다. 불이 나면 직접 불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도 검댕이 들어붙어 그것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밤 11시 30분 정도에 내일을 위해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준비하면서 다시 티브이를 켰더니 또 다시 숭례문 화재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다른 말들은 모르겠고 유독 한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붕괴 위험’. 그제야 보통 상황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냥 잘 것인가, 아니면...... 다시 옷을 주워 입고 주머니에 디카를 하나 집어넣고는 나는 집을 나서 택시를 탔다. 경복궁 바로 옆의 우리 집에서 숭례문까지는 불과 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건, 그러니까 내 동네의 일이었다.

시청 앞 광장을 지나 태평로에 들어서자 연기가 피어오르는 숭례문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에 티비 화면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 느낌은 달랐다. 현실이었다. 이미지는 결코 실체를 대신할 수 없다! 이미 길이 막히고 있어서 나는 로뎅 갤러리 앞에서 택시를 내려 상공회의소 쪽으로 걸어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붕괴 위험’을 다급한 상황에 대한 아나운서의 수사학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그 모습은 훨씬 더 심각했다. 나는 숭례문 문루를 구성하고 있는 공포 사이사이로 뱀의 혀처럼 빨간 불길이 들락날락 하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2층 문루는 이미 그 내부가 불바다였다. ‘붕괴’는 현실로서 다가오고 있었다.

길 건너편 도큐 호텔 쪽을 보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서서 불타는 숭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이 건물의 정면이라 더 상황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길을 건넜다. 당시만 해도 이렇다할 폴리스 라인이 없이 그냥 시민들이 화재 현장으로부터 일정한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이후 경찰이 투입되면서 폴리스 라인은 점점 더 사람들을 뒤로 밀어냈다. 왜 그러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 혼잡한 상황 속에서 나는 대목장 신응수 선생을 만났다. 이번 구정 연휴 직전, 우리 사무실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경복궁 건천궁 답사를 갔었을 때 마침 인터뷰를 위해 와 계시던 신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선생은 처음에는 나를 몰라 보시다가 ‘지난 주 건청궁......’하니까 그제야 알아보셨다. 곧 와이티엔 기자들이 신 선생님께 카메라를 들고 몰려와서 나는 자리를 피했지만 그 잠깐 사이에 선생은 내게 ‘저 불을 끄려면 처음부터 지붕을 뜯어내고 건물 안에 물을 뿌렸어야 했는데’하며 아쉬워 하셨다. ‘결국 다 타야 꺼질 것’이라는 한숨 섞인 말씀도 하셨다. 나는 이전에 어떤 책을 통해 신응수 선생께서 처음 목수 일을 배울 때 바로 이 숭례문 중건 공사에 참여하셨다는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분께 이러쿵저러쿵 말씀을 건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 분이 과연 어떤 심정이겠는가. 이 와중에 어떤 사람이 와서 신 선생을 알아보고는 엉뚱하게도 싸인을 부탁했다. 물론 신 선생은 정중히 거절하셨다.

점차로 건물의 붕괴가 임박하고 있었다. 나는 이전까지만 해도 화재 현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불을 끄는 물의 힘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건 그게 아니었다. 불은 물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이 갈수록 더 맹렬히 타 올랐다. 내가 가끔 인터넷상에서 아이디로 쓰는 ‘burningwater’, 즉 ‘타오르는 물’을 바로 이럴 때를 두고 만들었다 싶어 스스로도 기가 막혔다. 물이 오히려 연료가 되는가 싶을 정도였다. 붕괴의 과정은 이랬다. 먼저 서서히 지붕선에 변화가 왔다. 한옥의 지붕선은 유난히 날씬하고 그 끝이 경쾌하다. 그래서 입을 잘 여물어 닫았으되 살짝 미소 짓고 있는 표정과도 같다. 그런데 그 미소가 점점 흉하게 일그러지면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르게 변해갔다. 처마 깊은 집의 구조상 결국 지붕이 밖으로 뻐그러지면서 기와가 여러 차례에 걸쳐 무너져 내렸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아!’하고 탄식했다. 그러다가 점차로 중요한 목구조 부재들이 내려앉게 되면 결국 지붕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내 느낌은 생각보다 건물이 그 맹렬한 화재에 오래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관적인, 그냥 단순한 느낌이었을까? 나는 이전에 건축가 조남호와 함께 한옥과 같은 중목구조(重木構造: 서양식 경골목구조와 대별되는, 두터운 나무를 써서 만든 건물 구조) 건축의 내화성능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결론은 비록 외형적으로는 화염이 거세게 타오르지만 결국 그 두터운 외피로 인해 붕괴까지는 시간이 걸리며, 따라서 인간에게 상대적으로 대피할 시간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불에 노출되면 엿가락 휘어버리는 철골에 비해서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섬세하기만 한 공포들, 힘 있게 뻗어있는 기둥과 보, 도리들이 시뻘건 불속에서 의외로 오랫동안 견뎌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실로 어떤 감동 같을 것을 보았다. 만약에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이었다면 건물은 타서 없어질망정 그 안의 사람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 귀중한 문화재가 동원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기서 분명히 밝힐 것이 있다. 이 와중에 건물을 비추고 있는 조명(야간경관조명)이 아직도 커져 있었다. 건물의 한 쪽은 불에 타고 한 쪽은 조명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조명을 켜고 끄는 스위치는 누구 소관이며,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현실만큼 초현실적인 것이 없었다. 또 하나 더 밝힐 것이 있다. 그것은 당일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에게 퍼부어졌던 수많은 시민들의 절규와 원성이었다. 거의 쌍욕에 가까운 고성이 건물에 물을 퍼붓고 있던 소방대원들에게 가해졌다. 잔디밭에 서 있던 한 남자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 ‘물을 지붕에만 퍼 부으면 뭐해, 건물 안으로 넣어!’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는 이 날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해서야 소방복을 입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홍보영상에서의 그들은 한결 같이 금속봉을 타고 신속하게 내려와서는 달리는 자동차 위에서 옷과 장비를 챙겨 입고, 무전기로 상황을 미리 확인하면서 현장에 도착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날 그들의 모습은 뭔가 한 템포 느리고 그들 스스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했다. 시민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답답한 정도를 넘어 거의 화가 날 지경이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온 국민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던 그런 소방대원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날의 상황은 그랬다.

그런 원성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될 때나 가능하다.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침묵이 현장을 덮기 시작했다. 여전히 수많은 물줄기가 숭례문을 향해 뿜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숭례문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당일 현장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의 숫자는 경찰과 소방대원들을 제외하고 약 500명 정도? 어떤 사람들은 울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세상은 참 이렇게 항상 다양하기도 하다. 하긴 모두가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똑 같이 느끼라는 법은 없다. 기자 출신의 친구 오동진이 자기 부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자기도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부인과는 초면이어서 그 난리통에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뵙네요’라는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도대체 정부는 뭘 한 거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이야’. 비난의 대상이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서울이 봉헌되는구나......’

그리고 그 불에서 나는 냄새가 있었다. 일반적인 화재 현장에서는 정말 역한 냄새가 난다고 들었다. 각종 화학물질이 타면서 나는 냄새들이다. 그런데 숭례문 화재현장의 냄새는 그렇지 않았다. 표현이 잘못되었다면 미안하지만 그것은...... 향긋했다. 아, 순수한 목구조 건물은 이렇게 타는 냄새도 달랐다! 이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 사냥꾼들이 육식동물을 잡아 배를 가르면 그 냄새가 역하지만 초식 동물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 책의 한 구절을 다시 읽는 것 같았다. 숭례문은 마치 향불처럼 그 수백년 삶의 내역을 진한 목향에 담아 태워 보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는 사진을 몇 장, 그리고 동영상을 여러 개 찍었다. 한 손에 꼭 들어가고 이런저런 기능이 많은 내 디카를 보니 참으로 요술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참 좋아진 것이다. 그런데 그 잘난 세상이 숭례문을 불로부터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기 직전인 1960년대에 중건이 되어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배경 어딘가에 있어왔던, 너무나 많은 것이 나무나 빨리 변해버린 이 지긋지긋한 속도전의 나라에서 그나마 항상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주었던, 몇 안 되는 귀중한 내 삶의 동반자 같은 그런 존재가 이제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국보이기 이전에 그것은 치열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고정된 상수였다. 온통 변수들로만 만들어진 듯한 이 도시에서 그것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고,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큼 든든했다. 그런데 그것이 불에 타서 없어지다니. 그리고 내가 바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니.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티비를 통해 지붕의 맨 나머지 부분이 내려앉고 이윽고 불길이 잡히는 모습을 보았다. 새벽 2시가 이미 넘었고 나는 극도로 피곤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내일 아침에 정확히 출근하여 아침 회의를 하고, 오랜 연휴로 끊어졌던 회사의 업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나의 최선이다. 그것은 수백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제 막 사라진 숭례문에 대한 나의 경의의 표현이면서 내 마음 속의 숭례문을 다시 지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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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한 가지 더 한 일이 있기는 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써서 방금 찍어온 사진과 함께 내 홈페이지에 올렸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앞으로 정확한 원인규명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가슴 아프고 믿을 수 없을 따름입니다.

저는 오늘 저녁 집에 있다가 9시 경 뉴스에서 이 소식을 들었고 다행히 진화되었다는 말까지 들은 것 같은데 한참 후에 다시 뉴스를 들어보니 불길이 잡히지 않는다고 하여 결국 택시를 타고 현장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불과 5분 거리, 택시 안에서 보니 연기가 이미 건물 전체를 덮고 있었고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에 건물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습니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이렇게 국보 1호가 소실되고 말았다는 생각에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오늘 아침, 이미 정치권은 이번 숭례문 화재가 상대측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서로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라는 식의 비난을 시작했다. 변할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변해버린, 어느 슬픈 날의 기록을 이렇게 마친다.
2008-02-12 01:00:08 / 211.245.6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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