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오는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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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건교부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의 공원면적 비율은 16.65%였다. 세계적으로는 몬트리올, 뉴욕, 파리 등이 20%가 넘고, 시카고, 런던의 경우는 10%내외이며, 도쿄, 고베, 베를린의 경우는 10%가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숫자로만 보면 우리는 썩 나쁘지 않은 도시에 사는 셈인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경험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이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에게 도시적인 의미에서의 공원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자랑스럽게 제시되는 통계숫자에는 5대 궁궐, 남산, 국립묘지, 심지어 그린벨트 등의 면적이 포함되어 있다. 궁궐은 담으로 둘러싸여 입장권을 사야 들어가며, 산은 산이기 때문에 또한 일부러 가야하는 곳이다. 도시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이 출근이나 퇴근길, 혹은 점심 시간에 훠이훠이 걸어가서 별도의 입장료 없이 산책하거나 쉬거나 놀 수 있는 곳, 그야말로 열린 공간을 도시의 공원이라고 다시 정의한다면 아까 그 통계숫자에서 얼마나 남을 것인가.  

 

차로 한 시간 거리에는 원시림이 우거져 있는데, 정작 내가 살고 일하는 주변에는 나무 몇 그루 변변히 없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 이것은 이미 도시공원이 아니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들어설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면적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측면 못지 않게 접근성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도시공원의 좋은 예가 있었다. 그것도 예나 지금이나 인파로 붐비는 명동 한 복판에 있었다. 현재의 유투존 자리, 비록 작았지만 그만큼 보석 같은 존재였던 이 공원은 재정부족에 시달리던 서울시가 백화점 부지로 매각하면서 지도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지금 그나마 명동에서 녹음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당혹스럽게도 중국 대사관이다. 그 주변으로는 작은 카페들이 밀집하여 큼직한 창들을 내고 우리 땅에서 외국 정부가 제공하는 이 희귀한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도시공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이다. 보통은 이 공원의 엄청난 규모가 화제로 떠오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소프트웨어의 성격에 있다.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이 공원은 무엇보다도 접근이 쉽다. 그야말로 점심 시간에 샌드위치 하나 들고 슬슬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기차를 내린 여행객은 우거진 숲

 

사이를 걸어 한참 북쪽에 있는 콜럼비아 대학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세계적인 대도시 한복판에서 이것은 분명 쇼킹한 경험이다. 넥타이 부대와 롤러 블레이드 족이 한데 어울리는 곳이 바로 여기다. 도시 외곽에 뚝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우리의 고궁들처럼 꼭 들어간 문으로 다시 나와야 하는 공원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처럼 도시공원은 주변의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접근이 쉬우면 쉬울수록, 드나들기가 자유로울수록 그 의미를 더한다.  

 

그런데 이런 곳일수록 공원 건립에 따르는 비용이 문제가 된다. 결국 어떤 독지가가 나타나거나, 정부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부는 대체적으로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우리의 도시는 그 살아있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무엇을 하건 민간주도 개발이 당연한 것이고, 정부는 투자 없이 규제만을 하겠다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도심지에 공원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명동의 경우에서처럼 있던 공원도 팔아버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다행스럽게도 근래에 들어서는 광화문 남동쪽 모서리가 공원이 되었다던가, 영등포의 공장 이전 부지에 공원이 들어선다거나, 아니면 서울시가 우정국 일대 토지를 매입하여 작은 공원을 조성한다거나 하는 긍정적인 현상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대구에서는 도심지의 관공서 건물들을 중심으로 담을 헐어 녹지를 공유하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도심에서 쫓겨났던 공원이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아도 서로 연계되며 일상적인 삶의 현장과 밀착되어 있는 공원, 아니 그런 공원들의 네트워크이다. 서울보다 공원의 면적비율이 낮지만 소공원들이 많아 전체적인 공원의 수는 7배 이상 높은 동경이 더 여유 있는 도시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통계 숫자가 아닌, 변화된 우리의 삶을 통해 공원의 존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내가 공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원이 내게 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