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

1/4평짜리 영화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공중전화박스다. 영어로는 ‘부스’인데 우리는 ‘박스’라 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사람이 하나 들어가서 겨우 서 있을 정도, 폐쇄공포증을 느끼게 할 만큼 작은 공간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비슷한 유형의 다른 작은 공간들이 꽤 여럿 있다. 공중 화장실이나 벽장, 엘리베이터, 그리고 자동차의 내부 등이 이것이다. 이 각각의 공간은 그 고유한 기능과 성격이 있으며 여러 영화나 소설 등의 소재를 제공한다. (자동차 내부 공간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중 엘리베이터는 공중전화박스와 더불어 전형적인 근대의 소산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아주 좁은 공간에 단 둘이 남겨진다. 한 마디로 수많은 긴장과 가능성을 내포하는 상황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연인들이 첫 만남을 하기도 하고, 살인이나 강간 등 범죄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에는 긴장이 있다. 평상시에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말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상대의 입김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의 체취를 느끼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다!) 이런 행동을 ‘엘리베이터 행동’(elevator behaviour)라고 하며, 어색한 정적을 덮기 위해 틀어주는 음악을 ‘엘리베이터 음악’(elevator music)이라고 굳이 구별해 부른다. 두 가지 모두 공간심리학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내용들이다.  

 

공중전화박스는 좀 다르다. 사람들은 상당한 목적성을 가지고 이 공간에 들어간다. 누구와 통화할지 알고 들어가며, 우연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작은 공간에 사방이 반사재인 유리로 되어 있어 자기 목소리의 텍스츄어가 그 어느 장소보다도 잘 느껴진다. 쉽게 목소리를 조절할 수 있고, 따라서 강약조절을 곁들인 연인과의 대화에 적격이다. 지극히 은밀한 공간인 것 같지만 그 시각적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공중전화박스는 일종의 무대와도 같다. 사방의 행인들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노출증과 관음증이 교차한다. 더구나 박스 옆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물론 먼저 온 사람이 임자지만, 적절한 시간 내에 용건만 간단히 하고 나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상당히 강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전화를 통해 거의 온 세계와 연결된다. 우주에서 지구로, 다시 뉴욕으로 무한히 좁혀 들어가는 이 영화의 인트로 장면은 공중전화박스의 이런 확장된 공간성을 잘 보여준다. 공중전화박스는 작지만 매우 복합적인 공간이다.

 

영화 ‘폰 부스’는 이런 공중전화박스의 공간적, 시각적, 사회적 성격을 극한으로 확장시켜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스튜는 연예계 주변인물의 하나로 소위 미디어 에이전트다. 그가 하는 일은 여기저기에 범법 수준까지 가지 않을 정도의 거짓말을 해대며 신인을 방송이나 언론에 출연시켜 준다거나, 유명 연예인의 파티를 어떤 레스토랑에 몰아준다거나 하는 것이다. 항상 허풍을 치고 살지만 극심한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일부러 근사한 양복을 빼입고 다니는 등, 특별히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이유도 딱히 없는 그런 남자다. 그는 결혼을 했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팸’이라는 이 여자 또한 그의 고객이지만, 그는 일 이외의 다른 생각을 갖고 이 여자에게 접근한다. 아내가 혹시 통화내역을 추적할까봐 핸드폰 대신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거는 것으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자세히 밝히지 않겠으나 다분히 도덕적인 분노 같은 것을 깔고 있다. 감독은 어쩌면 자기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킬러는 완벽하게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여유 있고 심지어 자비롭기조차 한 모습으로 화면에서 사라진다. 그는 살인자지만 어떤 의미에서 신적인 존재다. 따지고 보면 신도 자기 의지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죽인다.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으며, 몇 수 앞의 상황을 정확히 예견하고 이를 미리 준비하는 고수다. 무엇보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본적으로 선한 것이다. (스튜와 그의 아내와의 결합) 그가 저지르는 살인은 그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비로운 신은 때로는 잔인하다......

 

‘폰 부스’는 해석의 깊이를 달리하는 여러 레이어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매니아적 코드를 갖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표층적으로는 엽기살인 영화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종교적이며 실존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무대가 1/4평 남짓한 공중전화박스, 전형적인 근대의 소산이면서 이제 정보통신시대에 오히려 소멸되어 가고 있는 그 작은 공간이라는 것이 흥미롭다.